공부하는 엄마2018. 1. 4. 16:25

나는 내 삶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복권당첨보다 어렵다는 덕업일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덕업일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이 일치할 때)


나는 올해로 37세가 된 평범한 가정의 주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들이 셋이 있고, 집에서 영상편집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정규직으로! 가끔 이렇게 내 소개를 하면 상대방은 나를 슈퍼맘이라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나는 슈퍼맘이 아니다.

아이들한테 화도 잘 내고, 요리에도 영 솜씨도 없다. 청소도 귀찮아 하고, 덜렁거린다. 깔끔하고 꼼꼼한 우리 남편은 자기가 살림을 하면 더 잘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ㅋㅋ 남들과 다른 점은 어쩌다보니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그 '어쩌다보니'에 관한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무난하면서도 나랑 잘 어울렸다. 크게 진로에 고민해본 적 없이 수능을 봤다. 나의 첫 수능은 '물수능'이었다. 난이도가 너무 낮아서 수능 점수가 변별력이 없었다. 지방에 있는 교대나 서울 소재 대학교 교육학과를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추가합격을 기다리던 중에 고등학교 베프가 재수학원을 등록하러 갈껀데, 같이 가달라고 했다. 엉겹결에 따라갔다가 엉겹결에 등록을 했다. 제비따라 강남 간 케이스... 어디든 추가합격만 되면 가려고 했는데, 아무 곳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고 ㅠ 어쩌다보니 이 친구랑 1년 동안 재수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재수를 하는 1년 동안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학원에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모의고사 전 날에는 지하철에서 토를 뿜은 적도 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해야하는 압박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나는 그 도피처로 학원 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선택했고, 매 달 개봉하는 영화 중에 안 본 것이 없었다. (이건 부모님이 모르는 이야기..ㅋ) 그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헀는데, 이 때 영상 제작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게 되었다.


작년 수능이 너무 쉬워서 그랬는지, 두 번째 수능은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그 와중에 나는 내가 제일 어려워했던 수학에서 3점짜리 3개를 찍어서 맞추는 기염을 토했다. 점수는 작년보다 30점 가량 낮아졌지만, 전체 성적은 상위 3% 안쪽으로 나쁘지 않았다. SKY는 못가도 이번엔 대학을 골라갈 수도 있었다.


집안에서 교육자가 생길 거라며 기대하던 아빠에게 나는 영상학과를 지원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날 저녁 풍경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빠는 베란다로 나가셔서 안 피던 담배를 뻑뻑 피셨다... 


가나다라 군 중에 영상학과를 제외한 나머지는 (또 교대를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고, 나는 그렇게 (내 뜻대로어쩔 수없이ㅋㅋ)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영상학과를 졸업한 것이 내가 지금 영상편집 일을 하게 된 단초가 되었다. 


여기까지 이야기 중에서 나의 실력과 노력은 얼마나 작용했을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수능의 난이도도, 첫 대학입시에서 모두 면접에서 떨어졌던 것도 (심지어 나와 점수가 같은 아이도 붙었는데...), 내가 재수학원에 등록하게 된 것도, 재수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목에 큰 영화관이 있었던 것도, 수능에서 찍었던 수학 문제 3개를 모두 맞혔던 것도... 심지어 나를 재수학원으로 인도한 공부 잘하던 고등학교 친구와 베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지금의 직장에 소속하게 된 것도!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한 순간에도 운은 항상 함께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부러워 할 수도 있다. 여자로서 집에서 일을 하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아이들도 직접 돌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가. (물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딸을 나처럼 키우기 위해 내가 자라온 환경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나처럼 될 확률은 거의 없다. 내가 어려서부터 '재택근무를 하는 영상편집자가 되어야지!' 하고 그 길을 차근차근 밟아 온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줘봤자 소용이 없다.


#출처: 네이버 뿜


책 <일취월장>의 1장에서는 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성공에 있어 운은 가장 우선순위로 다루어져야 할 핵심적 요소"

라고 강조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껏 우리가 성공은 "노~~~력" 이라고 믿어왔던 것과 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모든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잘못이나 실수로 치부했다면 그것도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특히 우리 부모는) 운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내 아이가 공부'' 잘하면 된다고,

공부'' 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믿는 엄청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일취월장>에서는 운과 동행하기 위해서 운의 영향력을 측정*하여 운을 받아들이고, 상황에 따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운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것이란?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이길 확률이 높을 때 (예: 야구) 운의 영향력이 크고,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이길 확률이 거의 없을 때 (예: 테니스) 운의 영향력이 적다.

운의 영향력을 측정해보자. 운의 영향력이 적은 영역에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된다. 


결국, 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1.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2. 계획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불안해서 더 정답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내 아이를 이 학원에 보내면 아이가 공부를 잘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도 크다.

시험 점수가 높으면 아이가 똑똑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도 크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도 크다.


물론, 그렇다고 노력이나 실력을 비하하거나 계획대로 살지 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가 방송국 시험에서 떨어지고, 임신을 하고 나서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것처럼.

일이 없었는 데도 사업자 등록을 하고 프리랜서로 일을 모색했던 것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했어도 일을 하나씩 맡아서 하면서 편집 실력을 키워왔던 것처럼...


내가 실력이 있으면 운은 반드시 나를 찾아온다.

실력이 없다면 엄청난 운이 찾아와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덕업일치를 이루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다.


"계획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하세요."


아... 얼마나 뻔한 조언인가...


하지만 알더라도, 매 순간 적용하기는 나도 어렵다.

특히 아이들 관련해서 나도 모르게 남의 기준을 따라가려고 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니까. 


모를 때 할 수 있는 건, 공부하는 것이다.


좋은 습관이 반복되다보면 뿌리가 깊어지고 흔들리지 않게 될거라고 믿는다. 


* 조언이 필요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부모님이시라면 특히, #7장 미래, #8장 성장 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하급수적 기술의 발달이 초래하고 있는 트랜드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에 관한 이야기)

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