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글쓰기의 마지막 날이다. 약 한 달 전, 씽큐베이션 1기 그룹을 함께 했던 용마님이 30일 글쓰기에 참여하실 분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걸 씽큐베이션 2기 그룹원들에게 전하면서 성장에 목마른 아기엄마였던 한연님을 콕 찍어 도전해보라고 했다. 



매주 1서평을 써야하는 독서모임 자체로 이미 벅찼기 때문에 뭔가 다른 것을 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지목해서 해보라고 해놓고 생각해 보니, 내가 어렵다고 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해보라고 하는 게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래서 나도 하기로 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었다. 나도 글을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쓰고 싶었다. 이번 기회에 글쓰기 진입장벽을 낮출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매일 마감의 압박을 이겨내고 보니 어느새 30일 중 마지막 날이 되었다. 30일 동안 썼던 글을 돌아보니 초반의 글은 잘 써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힘이 많이 들어가 있었다. 그에 비해 최근 글들을 보면, 쉽고 가볍고 빨라졌다. 일필휘지로 5분 만에 쓴 날도 있었다. 물론 아무 말이나 쓴 것은 아니다. 아침 일찍 글감이 발표되면 하루동안 고민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빨리 쉽게 쓰게 되었다는 건 엄청난 발전이다. 씽큐베이션 서평을 쓰는 글의 속도도 함께 빨라졌다. 글쓰는 방식도 좀 더 체계화 되었다. 글쓰는 기술만 늘어난 것은 아니다. 함께한 모두가 각자의 방법에서 각자의 속도에 맞게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30일 동안 주어진 다양한 질문들이 나를 드러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도 몰랐던 나를 더 잘 알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면서 좀 더 당당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려워 했던 무엇인가가가 쉬워질 수 있었던 이유는? 매일 했기 때문이다. 


이번 주,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서평 중에서


이틀 전에 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도 적었듯이 무엇인가를 매일 해내는 것은 엄청난 힘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30일 글쓰기] 외에 [30일 그리기]를 또 시작했고, 또 [매일 달리기]에 도전장을 냈다. 하다보면 분명히 쉬워진다. 1분을 달리고 숨이 턱까지 차던 내가 가볍게 2키로를 12분동안 뛰고 오게 되었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매일 그리기] 16일차/ [매일 달리기] 6일차



하지만 또 다른 분명한 사실은, 매일 해낸다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내가 내년 봄에 10키로 달리기에 도전할 거라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리고 내가 10키로를 한 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을 때, 함께 있던 여러 명이 10키로는 걸어서 1시간에서 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중 누구도 10키로를 달려본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절대로 10키로는 1시간 안에 걸어서 완주할 수 있는 거리는 아니다. 그 말은 내가 달리기와 사투하며 보낸 지난 8개월을 무시하는 말이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욱할뻔 했다. 언젠가 내가 정말 잘 달리게 되었을 때, 누가 나에게 재능 어쩌고 이야기를 하면 나에게 좋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 누군가의 성장은 절대로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미국의 전설의 농구선수 레이 앨런의 말을 인용하고 30일 글쓰기를 마치려고 한다.


내가 점프슛을 잘하는 것이 신의 축복 덕분이라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화가 납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난 이렇게 말하죠. 내가 매일 들인 노력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며칠이 아니라 "매일"입니다.


나는 "매일"이 가진 힘을 믿는다.


[30일 글쓰기] #30. 자유주제입니다. 한 달 반 동안 글 쓴 소감도 좋고, 앞으로의 다짐, 평소 생각하던 주제, 오늘 써야할 주제 등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Posted by kimberly

나에게 화요일은 중요한 날이다.


우리 회사는 일주일에 한 번, 화요일에 출근를 한다. 이날은 재택근무를 하는 직원 모두가 모이는 날이다. 절대 늦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전날부터 긴장이 된다. 부랴부랴 아이들 등교 준비를 시키고, 아이들이 제 시간에 나갈 수 있도록 알람을 해두고 먼저 집을 나선다. 회의를 내가 진행하다보니 회의 안건 준비도 해야한다. 회의 내내 거의 나 혼자 말을 하는데, 다들 나를 쳐다보고 있기 때문에 나는 2시간 내내 긴장을 한다. 회의가 끝나면 다른 회의가 기다리고 있다. 이 날은 일주일에 한번 고정적으로 내가 집 밖으로 나오는 날이라 막내를 어린이집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가는 날이기도 하다. 도로에서 운전으로 보내는 시간도 많은데, 자칫하다 퇴근길 차에 막히기라도 하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두 아이 생각에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집으로 가면 나에게는 서평 마감이라는 압박이 기다리고 있다. 이 마감 시간도 절대 어기면 안되는 나의 약속이다. 벌써 7개월째 서평 마감날은 화요일로 고정되어 있는데, 미리 쓸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급하게 밥을 차려주고, 아이들에게 오늘은 엄마가 서평을 써야 하니 집중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당부를 하고 초조한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리고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초 집중상태로 글을 쓰고 싶지만 막내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책상 주변에서 얼쩡거리며 계속 뭘 해달라고 조르고, 의자 위로 올라오고 컴퓨터를 건드린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저리 좀 가 있으라며 큰 소리를 낸다. 


간신히 서평을 제출하고 집을 돌아보면 난장판이다. 밥 차려 놓은 것,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장난감들과 옷가지들 때문에 집안이 어지럽다. 내 마음도 어지럽다. 집을 정리하고 아이들을 재우고도 할 일이 남았다. 30일 글쓰기와 30일 그리기를 마감하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 달리기를 하러 트레이닝 복을 입고 집을 나선다. 모든 미션을 마무리하고 침대에 누우면 맥이 풀린다. 이런 날은 너무 피곤하지만 긴장 완화를 위해 넷플릭스를 하나 보고 자야 한다.


압박으로 가득찬 화요일을 보내고 나면 수요일이 나를 기다린다. 이날은 일주일 중에 쉬어가는 날이다. 웬만하면 이 날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더구나 일 할 시간이 이틀이나 더 있으니 마음도 여유롭다.


남들은 수요일이 제일 힘들다고 하는데, 나는 수요일이 제일 좋다. 


[30일 글쓰기] #29. 일주일 중 가장 컨디션이 좋은 날은 언제입니까.

Posted by kimberly

큰 아들과 버스를 타러 가는 길. 4차로 길에 횡단보도가 있었다. 자주 오지 않는 그 버스를 눈앞에서 놓쳐버릴까봐 아이를 재촉해서 가는데 횡단보도에서 초록색 불이 깜박이는 것이 보였다. "빨리 뛰어!" 하면서 달려갔지만 우리가 건너기 시작할 때, 빨간 불로 바뀌고 말았다. 아들은 건너 가면 안된다고 하고, 급한 나는 가자고 하고.. 실랑이 끝에 내가 억지로 잡아 끌어 빨간 불인데 끝내 건너고 말았다. 지나가는 차는 없었지만, 건너고 나서 아이가 부은 얼굴이 나를 질책했다. 


"빨간 불인데 건너면 어떻게 해!"


입장이 바뀌어야 하는데... 내 잘못이다. 아무리 급했어도 건너지 말았어야 했다. 아들은 나에게 다음에는 빨간 불에 건너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 일 이후 2년이 지났는데, 나는 아이와 약속을 지키고 있다. 내가 아이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행동은 나도 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가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의 행동은 안티프레질해진다. 


[30일 글쓰기] #28. 신호등 빨간 불에 차가 보이지 않을 때 무단횡단을 하시나요. 당신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Posted by kimberly

나는 영화광이다. 주말과 새벽에 시간을 내어 틈틈히 영화를 본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보는 것은 아니다. 나의 시간은 소중하니 킬링타임용 영화는 사절이고, 최소한 한 가지는 충족해야 한다. 재미가 있거나, 메세지가 있거나, 배우를 좋아하거나, 연기가 훌륭하거나, 감독을 좋아하거나, 너무 인기가 많아서 궁금증을 유발하거나. 뭐든지 하나는 걸릴 것 같지만, 은근히 이런 영화를 찾기가 쉽지는 않다. 이미 본 영화가 많고,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는 그런 이유로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영화를 고르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생각해보니 독서법의 계독과도 비슷하다. 하나의 테마를 잡아서 그 분야의 영화를 최대한 많이 보는 것이다. 한 때는 홀로코스트 영화에 빠져서 관련 영화는 거의 다 찾아봤다. <피아니스트>, <쉰들러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사울의 아들>, <리멤버>, <블랙북>, <버스터즈: 거친녀석들>, <어둠속의 빛: 디테일스>... 믿고 보는 제시카 차스테인이 주연한 영화들을 탐독하다가, 제임스 맥어보이에 빠져서 그가 나온 영화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보다보면 연결이 되는 배우들이 있는데, 그 뒷 배경을 찾아보며 재미있다. 가끔 이렇게 영화들을 연결하며 공통점을 찾아서 정리도 한다.


<어톤먼트>와 <비커밍 제인>의 공통점은?

1. 누군가의 개입으로 비극적인 사랑으로 끝남

2. 슬픔을 소설로 승화함

3. 남주가 제임스 맥어보이 


무슨 영화를 볼지 고르는 데 가끔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숨겨진 보물같은 영화를 찾으면 만족도가 너무 높다. 그래서 계속 이 방법을 고수할 것 같다. 아직 오늘 밤의 고민이 해결되지 않았다. 오늘 밤에는 무슨 영화를 볼까?


[30일 글쓰기] #26. 나는 어떤 분야의 덕후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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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인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있다. "기도하면 해결이 될꺼야."

공부를 하지 않고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

노력하지 않으면서 내 삶이 평탄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하는 기도.

그렇게 기도만 열심히 하다가 결과가 원하는대로 나오지 않았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싫다. 기도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가 내 손을 떠났을 때 하면 된다. 바라는 것을 바라기만 해서는 절대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나는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대표하는 <시크릿>이나 <꿈꾸는 다락방> 같은 책이 싫다.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이런 책들을 읽을까봐 걱정이 된다. 특히 꿈꾸는 다락방은 20대 후반이었던 내가 취준생일 때 읽었는데, 그때 혹해서 그가 권하는 많은 책들을 샀던 것이 후회된다. 출간 후 12년이 지났다. 그렇게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세상을 변화시킬 것처럼 말했는데, 무엇이 변했나? 아무것도 없다. 믿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30일 글쓰기] #25. 이 책만큼은 남들이 읽지 않았으면 하는 책은? (정말 좋아서 나만 갖고 싶거나, 정말 별로라서 모두가 읽지 않았으면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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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무슨 보물단지가 된 듯 중학교 때 친구들과 주고 받은 종이 쪽지까지 보관하고 있다. 내가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쪽지를 펼쳐보면 그 때 그 시절 생생한 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에 맹점이 있다. 내가 그 모든 쪽지를 중학교 이후 펴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집 베란다에서 상자 깊숙히 잠자고 있는 오래된 종이들은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지금도 섣불리 버리지는 못하지만 사실 이것은 추억, 그 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적는 것이 소중한 나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은 올해 4월, 내가 씽큐베이션이라는 독서모임을 시작하면부터다.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 속에 얽혀있던 생각들이 차곡차곡 정리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쓴 서평들이 상자 속 쪽지와 비교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1) (깊던지 얉던지) 그 때 내가 느꼈던 생각의 흐름을 언제든지 읽을 수 있다. 귀찮지만 마음 먹고 상자를 뒤져야만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 장난으로 주고받은 쪽지처럼 아무말이나 적어놓은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썼기 때문에 다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3) 시간 별로 정렬되어 있어서 나의 성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매주 1권의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긴지 26주차. 오늘도 서평하나를 무사히 제출했다. 이 글들은 분명히 아주 빠르게 나를 더 성장시키고 있다. 지난 역사이지만 나는 나의 미래를 본다.


[30일 글쓰기] 24일차. 각 개인은 모두 자신의 역사가입니다. 자신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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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10주년 결혼기념일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외식도 하지 않고 지나갔다. 결혼 10주년도 이런데 다른 기념일 뿐이랴. 나는 기념일을 거의 챙기지 않는다.


우리 부부 사이가 안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싸운 적이 거의 없다. 다만 둔감할 뿐이다. 결혼 10주년이라고 아이를 맡기고 해외여행을 간 친구 부부도 부럽지 않았다. 나는... 다 귀찮다... 다행히 남편도 기념일에 예민한 편은 아니다. 가끔 서운해할 때는 있다. 발렌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 같은 시시콜콜한(?) 기념일에 가끔 초콜렛을 사오는데 내가 너무 시큰둥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꽃을 사오면 나한테 욕을 먹을 수도 있다)


그래도 챙기는 기념일은 있다. 바로 세 아이들 생일이다. 생일이 연달아 있는데다 (4월 13, 14, 28일)  아이들이 며칠 전부터 기대하고 수시로 상기를 시켜주기 때문에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거대한 상차림을 해주거나 친구들을 초대하는 것을 상상하지 마시길... 케이크와 선물이 전부다.


내가 기념일을 챙기지 않는 이유는 신경쓸 일이 많다보니 본능적으로 집중과 포기 전략을 쓰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모르게 에너지 소모를 최소화 해서 생존 방법을 찾는 것이다. 어쨌거나,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기념일을 챙기지 않아도 우리 가족은 무던하게 잘 지낸다. 이런 아내이자 엄마에게 불평하지 않는 가족에게 감사하다. ^^


[30일 글쓰기] #23일차. 기념하지 않는 기념일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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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방에는 항상 작은 핀마이크가 있다. 사실 거의 쓰는 일은 없다. 그래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이유는, 촬영이 필요한 상황이 갑작스럽게 생기기 때문이다. 내가 (믿기 어렵겠지만) 유튜버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여줘야 하는 삶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독서모임 모임에서 재밌는 상황이 연출되었을 때, 여행을 갔다가 배경이 좋거나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장소를 만났을 때. 일단 찍는다. 



카메라는 어느 핸드폰으로 찍어도 기본 사양이 다 좋아져서 문제 없지만, 마이크는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나다. 찍을 때는 잘 모르지만 마이크 없이 찍었다가 나중에 확인하면 주변 소음이 너무 시끄러워 사실상 활용하기가 어렵다. 아주 작은 장비 하나가 영상 퀄리티를 결정한다. 



가벼워서 가지고 다니지 않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활용도다. 확실히 영상 품질을 높이긴 하지만 마이크만 연결하면 자연스러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찍을 수 있을까? 이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30일 글쓰기] #22. 매일 들고다니는 물건 중 안 쓰는 물건. 그럼에도 들고 다녀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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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초등학교 2학년이던 큰아들이 학교에서 학교신문을 가지고 왔다. 거기에는 상을 받은 아이들의 그림이 실려있었는데, 딱 봐도 너무 잘 그렸다. 누가 그렸나 봤더니 아들과 같은 2학년! 


"수민아, 얘도 2학년이래! 그런데 왜 너는 아직도 사람을 막대기로 그리냐?"


그러자 아들이 한숨을 쉬며 답했다. "엄마, 모두가 그림을 잘 그리는 건 아니야."


우문현답이 따로 없다. 

물론 아이는 딱 저 한마디로 끝나지 않았다. 좋은 꼬투리를 잡은 큰아들은 자기는 뭐도 잘하고 뭐도 잘하고~ 한참동안 나를 놀렸다. 조잘거리는 아이의 말을 듣는데 은근히 논리적이고 하나도 틀린 말이 없없다. 그렇게 개개인성을 강조하는 <평균의 종말>을 나는 두번이나 읽었는데...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지다니. 괜히 비교하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가끔은 아이들의 한 마디가 책보다 뜨끔하다. 


[30일 글쓰기] #21. 당신의 자녀들에게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Posted by kimberly

나는 밤마다 미드를 봤다.


로스트, 그레이아나토미, 덱스터, 미디엄, 슈퍼내추럴, 배틀스타갤랙티카, 빅뱅이론, 트루블러드, 스파르타쿠스, 위기의 주부들, 튜더스, 24시, 히어로즈, 굿와이프, 닙턱, 데드셋, 워킹데드, The 4400... 셀 수 없이 많은 시리즈 중에 몇 개를 고르라면, 덱스터, 미디엄, 오피스, 로스트, 배틀스타갤랙티카, 소프라노스, 오피스... (최근 본 미드는 제외)


2005년 부터 미드에 빠져 2006-7년에 정점을 찍었다. 특히 20대 대학생 시절 영화학도였던 나는 이것이 공부의 일환이라는 아주 좋은 핑계를 가지고 있었다. 가끔 새벽에 일어나 내 방문을 열어보고 아직도 안 자냐고 엄마가 타박을 하면 나는 '이것이 바로 공부'라는 논리로 엄마를 설득했다. 


나에게는 미드는 신세계였다. 보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새벽 4시가 넘어서 잠들기 일쑤였다. 학교 수업을 끝내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는 그렇게 꾸벅거리며 졸았다. 내가 미드에 쏟아부은 시간들은 낭비였을까 투자였을까?


아주 다행인 것은 내가 영상제작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상 내가 엄마에게 설득한 논리가 맞았다.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에 나오는 '소비'를 했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이 아깝지 않다. 장르를 넘나들며 매니아를 양산했던 미드들을 찾아서 봤던 그 기억들은 내 취향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소비를 좀 더 전문가답게 기록해놓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결국 쓸모있는 실제 자산이 아니라 희미한 기억으로 남겨두었다는 것은 문제다. 


내 시간을 자산으로 만드는 방법은 결국 인풋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웃풋으로 끝내야 한다. 무엇이든 써야한다. 그러면 이 시간 도둑을 완전하게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30일 글쓰기] #20. 이걸 하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