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3. 3. 9. 22:12

지난 일요일 밤에 남편이 갑자기 아팠다.

새벽 3시쯤 잠을 자다가 목에 담이 와서 몸을 꼼짝도 못하고 나를 불렀다는데, 나는 죽은듯이 자고 있었다..  마침 우리 집에서 친척동생이 자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둘이 이야기 하는 소리에 깼더니 새벽 6시.. 친척동생이 오빠가 부르는 소리에 깨서 새벽내내 오빠가 몸을 돌릴 수 있게 도와줬다고 했다.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하는데 출근이 왠 말이냐.. 오늘 휴가를 내고, 아침일찍 친정 아빠 도움을 받아 근처 정형외과에 갔다. (수민이는 수민이 할아버지가 데려다 주심) 나는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애들 소아과도 가려고 겸사겸사 정형외과로 따라가봤다. 병원에 가보니 치료실에서 충격요법을 받던 오빠의 비명소리가 계속 들렸다.. 아파도 아프단 소리를 잘 안 하는 사람인데.. ㅠ 나중에 나와서 이야기하기를 고문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과로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했다. 최근 2주 내내 자정이 넘어 퇴근하던 남편더러 하루만 쉬면 안되냐고.. 아니면 이번 주는 조금 늦게 출근하면 안되냐고 했었는데, 정말 월요일 하루는 휴가에 일주일 내내 물리치료를 받아야 해서 늦게 출근하게 됐다. 정말 신기하게 내 말이 그대로 실현됐다. 하나님이 내 말을 이렇게 들어주시나..

물론 아프라고 기도한 건 아니다. ㅋ

 

 

남편은 친정아빠가 집에 데려다 주기로 하고, 나는 수현이 소아과에 갔다가 죽을 사서 집으로 왔다.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남편.. 누워서 할 일이 없으니 VOD로 <아르고>를 같이 봤다. 이 날 좋았던 건 이거..

 

처음에는 남편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수현이도 아빠가 있어서인지 더 안정적으로 잘 놀았다.

그런데 병원에서 받은 충격요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남편 몸이 점점 회복되는 걸 보며 나는 불만이 조금씩 쌓이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하루동안 세끼 식사를 차리고, 아프다고 밥도 입에 떠 먹여주며 수발하고, 수현이를 돌보고 재우고, 수민이를 데리고 시장에서 장을 봐오고 빨래하고 빨래를 개고, 설거지 하고.. 아이들 밥을 먹이고 간식을 챙기고 놀아주는 동안 남편은 컴퓨터로 일을 하고 티비를 보고... 누워서 계속 쉬려고만 했다.

 

그동안 피곤했으니.. 게다가 오늘은 아프니까 휴식이 꼭 필요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나는? 나는 평소에 쉴 시간도 없이 일도 하고.. 주말에는 두 아이들을 보느라 힘들었는데.. 그런 식으로 부정적인 생각만 자꾸 커지면서 우울했다.

평소에는 혼자서 다 잘하던 일이었는데, 나는 엉덩이 붙일 틈도 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는데 남편은 왜 날 안 도와줄까..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와중에 시댁에서 어머니만 하루종일 일하시는 모습이 떠오르면서 나의 미래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괜히 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목구멍까지 불만이 쌓였다. 남편한테 화를 내고 싶었지만 그래도 아프니까 꾹~ 참았다.

대신 아이들한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꼭 내가 이런 상태일 때 아이들은 더 사고를 친다.

 

 

애들을 재우고 다음 날 오전에 있는 성경공부모임 예습을 해야하는데, 수현이를 재우려고 누웠더니 몸도 마음도 지치고 그냥 다 팽개치고 자고 싶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너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우리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이정도도 못해주나? 더한 것도 해 줄 수 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짜증을 내고 화를 냈을까. 마음이 심란해서 자고싶은 몸을 일으켜 성경공부 예습을 하려고 책을 폈는데,

마침 책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자아의 소리를 멈추고 가만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

자아의 소리를 멈추고...

이 한 문장을 보며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집이 조금 지저분하면 어때? 설거지가 쌓여있으면 어때? 나는 지금 너무 내가 해야 할 일들 때문에.. 나의 강박증 때문에 더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구나.

 

다음날, 또 비슷한 메세지가 있었다. 아침 수민이가 잠깐 보던 애니메이션에서 'Stop and think' 라고 한다. 꼭 나에게 하는 말 처럼 만화 캐릭터가 "그럴 때는 잠깐 멈춰서 생각해봐" 라고 했다.

 

정말 멈춰서 어제의 나를 생각해보면 어제는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내가 편하고 싶었던 마음. 쉬고 싶었던 마음..

괜히 애꿋은 아이들한테 불똥이 튀고..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이렇게 우리한테 신경질내는 게 정말 무섭고 싫었는데... 정말 반성했다.

 

자아의 소리를 멈추고 나를 비워보자. 우선은... 힘들 때는 일단 멈추고 생각해보기로..

하룻 밤에 얻은 교훈.. 하지만 알아도 쉽지는 않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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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