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특별한 날2014. 5. 3. 23:57

5월 첫 주인 예정일 두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TO DO LIST를 하나씩 지워 나가기 시작했다.

(수민, 수현 유아 건강검진/ 구강검진/ 치과치료, 불소도포/ 배넷저고리, 속싸개 빨래/ 서랍장 구입/ 아이들 옷 정리/ 겨울 옷 정리, 여름 옷 꺼내기/ 아기 용품 준비 (젖병 등)/ 수민, 수현 어린이집 생일 답례품 준비/ 노트북 구입..)


하나 하나 지워가면서 '준비가 아직 안됐을 때 태어나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역시 기우였다. 

어느날 갑자기 진통이 찾아오는 위급한 상황은 이번에도 일어나지 않았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우리는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4월 28일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한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1. 남편이 하루만 휴가를 쓰면 11일 연속으로 쉴 수 있고, (주말 4일+ 출산휴가 3일+ 근로자의날+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2. 37주때 벌써 3.8kg라 예정일까지 기다리다간 4kg가 훌쩍 넘어서 자연분만이 힘들어 질 수도 있다.

3. 새로 일을 하게 됐는데 담당자분이 28일부터 금요일까지 출장이라 갔다오시는 동안 나는 아기를 낳고 쉬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우린 왠만하면 이 날 유도분만을 하자며 병원에 갔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병원 가는 길에 갑자기 펑크난 타이어도 고치고 여유롭게(?) 점심시간 다되서 병원에 갔더니 유도분만할 사람들이 왜 이렇게 늦게 오고 금식도 안 하고 왔다며..ㅋ 꼭 오늘 해야겠냐고 묻길래 안그러면 남편 회사가야 한다고 했더니 결국 유도분만하기로 결정... 다행히 자궁은 3센치 열렸다고 했다.


분만실로 올라가 12시 반부터 촉진제를 맞기 시작했다. 침대에 누워서 기다리고 있으니 슬슬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옆 방에서는 아기를 낳느라 소리를 지르고 한쪽에서는 신음소리가 들리고... 무서웠다. 아... 나 정말 오늘 낳는건가?


2시 반... 진통을 기다리면서 왔다갔다 운동을 하고 있었더니 슬슬 허리가 아파왔다.

3시 반.. 간호사는 진행이 느리다며 양수를 일부러 터뜨려 주심.. 양수가 터지고 슬슬 진통이 시작됐다.. 

4시 반부터는 폭풍진통 시작.. 

5시 40분.. 초코 태어남.. 


진통 2시간만에 아기가 태어났으니 진짜 빨리 분만한 편이다.

하지만 마지막 한 시간은 정말 죽음의 고통이었으니.. 누가 셋째는 쉽게 낳는다고 했어.. ㅠㅠ


하긴 그건 내가 무통주사도 안 맞고 회음부절개도 안 한다고 했던 탓이기도 하다.

안 그래도 머리가 크다는 아기를 회음부 절개도 안하고 무통주사도 안 맞고 낳았으니...


산부인과 간호사가 우리 교회, 우리구역 식구였는데 내가 분만하러 온 걸 보고 이쪽 근무가 아닌데도 내내 옆에 붙어서 도와주셨다. 그런데 무통주사 맞지 말라고.. 맞으면 아기한테도 다 전해지고 회복도 느리고, 어차피 아픈건 똑같이 아프다고... 집에서 출산할 생각도 한 사람이 왜 그러냐며 나를 설득했다. 


그러고보면 수민이는 진통을 오래하느라 무통주사를 네 번이나 맞았었고 수현이는 안 맞고 낳았는데, 수현이가 너무나 순하고 착한 아기였던데 비해 수민이는 정말 날 힘들게 했던 까칠한 아가였다. 그래서 그 차이가 무통주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실제로 자연주의 분만을 한 아가들이 잘 자고 잘 울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안 맞기로 했는데... 마지막 진통 한 시간동안은 정말 엄청 후회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한 번만 더 힘주면 된다고 하는데 정말 한번 더 진통을 겪다가는 죽을꺼 같았다. "못하겠어요..." 

1초도 견디기 힘들었을 때,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렸다... 이번에 처음으로 소리지르면서 낳은 것 같다.ㅋ 


이번에는 아기 쉽게 낳는 요령을 전수받았었다. 세 딸의 엄마인 한 교회 집사님이 침대 난간을 잡고 상체를 일으켰더니 아기가 쉽게 나왔다고 하길래 남편한테도 내가 상체를 일으키면 내 등을 받치라고 신신당부를 해놨었다. 그래서 그걸 적용해보려고 했는데, 이 침대는 난간이 없었다... 그래도 다리를 붙잡고 상체를 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간호사 두분은 동시에 소리쳤다. "상체 들지마세요!".. 순간 완전 카오스... 요령같은 건 없는 것 같다.ㅋㅋ  


아기 태어나고도 30분을 처치했다.. 태반이 자궁에 유착되어있다고 태반을 떼어내느라 아기가 나왔는데도 한참 더 아팠다. 탯줄 안 자른채로 아기를 안고 있던 그 신비한 느낌을 느낄 새도 없었다. 아기 얼굴 볼 정신도 없었다...


하지만 고통의 순간이 지나가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렇게 작은 아기가 내 옆에 누워있더라..

 


지나갔으니 하는 얘기지만 무통주사도 안 맞고, 회음부 절개도 안 하길 잘 한 것 같다. 회복속도도 빠르고 아기도 너무 순하다. 우는 소리 없이 먹고 자고 또 먹고 잔다. 젖도 잘 돌고 아기도 잘 빤다.


초코 분만을 함께했던 간호사 집사님은 남편더러 

'끝까지 마사지하고 손잡아주고 애낳고 기운없어하니 밥도 떠먹여주시고... 남편이 성심껏 마사지하느라 땀나고 헐떡거리니까 아내는 남편 힘들까봐 괜찮다 해주고 그런 아내를 말없이 손잡아주고 걱정해주는 사랑... ' (<- 요렇게 구역모임 카톡에 올리심..ㅎㅎ) 출산하면서 서로가 더 돈독해지는 느낌을 우릴 보면서 느꼈다고 하셨다. 


그러고보니 나만 고생한 게 아니라 남편도 너무 고생했다. 


세 아이들 출산하는 순간 모두 함께해준 남편한테도 고맙다.


우리집 네 남자...


새로운 아가 탄생에 형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말 궁금했는데, 두 형들은 (아직은) 질투하는 마음 없이 너무 좋아한다. 

수현이는 아직 어려서 내가 젖을 먹이는 모습을 보면 분명 싫어할꺼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젖꼭지를 아기 입에 억지로 집어 넣으려고 한다. 수민이는 아기가 깬다며 조용히 얘기하라고 난리다. 하루는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아가 얼굴을 못 보고 갔다며 울고불고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고... 


다행히 아이들은 엄마 없이도 평소처럼 잘 지낸다. 수민이가 첫 며칠 조금 불안하긴 했는데, 아빠가 계속 같이 있어주고 잘 놀아줘서 그런지 마음이 많이 풀린 것 같다. 이제 전화하면 엄마 푹 쉬라고 의젓하게 이야기 한다.


너무 귀엽고 예쁜 아이들... 

아들 셋이라고 하면 다들 셋이라는 숫자에 그리고 모두 아들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지만 난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지 그렇게 걱정되진 않는다. 키워보면 안다. 쳐다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