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가 어린이집에 다닌 지 한 달이 지났다.
좀 더 내가 데리고 있어야 되는데 일찍 보내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안 좋았는데, 이렇게 수민이가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고 대견스럽다. 요즘은 아침마다 빨리 나가자고 야단이고,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빠이빠이하고 의젖하게 선생님 손을 잡고 올라간다. ㅋ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생활습관도 좋아졌다.
혼자 세면대에서 비누를 가지고 손도 씻고, 양치질을 하고 나서는 물도 잘 뱉고.. 정말 놀라운 건 감기약을 먹일 때마다 안 먹겠다고 발버둥 치던 수민이가 요즘은 약 먹자고 하면 가만히 서서 꿀꺽꿀꺽 너무 잘 먹는다는 거다.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생활패턴도 일정해졌다.
8시쯤 책을 챙겨서 수민이한테 침대로 가자고 하면 알아서 내 옆에 눕는다. 평소 자정이 넘어 잠이 들던 거에 비하면 정말 비약적인 발전이다.
안 좋은 건 감기가 금방 안 떨어진다는 거.. 그리고 친구랑 싸우다가 얼굴에 상처를 남기고 온다는 거다.
처음에는 수민이가 집에 돌아와서는 자꾸 나를 때리고 자기를 때리고 나서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키길래,
"어린이집에서 싸웠어?" 했더니 "응응!" 한다.
첨엔 얼굴에 할퀸 자국도 있고, 누구랑 싸운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애가 말을 못하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답답했었다.
혹시 맞고 다니는 건 아닌 지 자꾸 신경이 쓰였었는데, 오늘 선생님이 써주신 글에서.. 반전이 있었다.
"요즘은 친구들 때리는 모습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어요."
가해자는 수민이었던 거다.ㅋ
어린이집 대화수첩
뭐 친구들이랑 부딪히고 싸우면서 자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제 뜻대로 안되면 때리거나 무는 습관이 어린이집 다니면서 더 심해진 것 같고, 어른한테도 똑같이 하려고 해서 요즘은 혼을 내기도 하고 설명해 주기도 했더니 그래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심하게 떼를 쓰던 것도 한 번 맘 먹고 혼냈더니 확 좋아졌다. 티비 원하는 거 안 틀어준다고 나를 발로 차고 얼굴을 때리길래 팔을 꽉 잡고 힘으로 제압했더니, 금방 승복했다. ㅋ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더 그랬던 것 같긴 한데, 정말 훈육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그래도 수민이 웃는 걸 보면 나도 웃음이...
나도 한 달 적응기를 마쳤더니 이제 좀 살만하다. 처음엔 수민이를 혼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게 너무 힘들었었다.
부른 배로 유모차 끌고 언덕 올라오고 수민이 안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면 숨이 턱까지 차올랐는데, 이것도 이제 요령이 생겼다. 계단을 내려갈 때는 업으면 편하고, 계단 올라가는 연습을 하다보니 이제 수민이도 혼자 올라가려고 해서 나는 뒤에서 중심을 잘 잡아주기만 하면 된다.
역시 인간은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기 마련인가 보다.
수민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의 최대 수혜자는 나다.
어린이집에 가있는 낮 시간과 수민이가 일찍 잠이 들면 남은 저녁 시간.. 완벽한 내 자유시간..
지난 주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재우기로 한 날은 그동안 맘 먹었던대로 혼자 영화를 보러갔는데, 내 정신은 온통 어린이집에 가 있었다. 안 자겠다고 울고불고 하는 건 아닌지.. 나 편하자고 애를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지금 내가 뭐하는 건지..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끝나자마자 달려갔더니, 낮잠자는 첫 날치고는 잘 자고 잘 놀았다고 했다.
내가 없으면 잠도 잘 못 잘 줄 알았더니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
이제야 나도 마음이 편해졌는데, 동굴 속으로 들어가기 전 이렇게 어렵게 얻은 내 자유시간은 약 일주일 남았다.
(하루도 안 남았을 지도.. ㅠ)
틱톡틱톡.. 시간이 가고 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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