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육아2017. 7. 26. 02:28

수민이 학교 1학년이 평균 38명씩 9반이다.

그래서 학교는 과밀학급을 해결하고자 건물 위로 한 층씩 증축공사를 하기로 했다. 여름방학 안에 공사를 최대한 끝내기 위해서 교장재량 휴일 등 모든 휴일을 여름방학으로 몰았다. 덕분에 수민이는 다른 학교보다 2주 일찍 방학을 시작했다. 안전을 이유로 돌봄교실도 문을 닫고 학교는 폐쇄되었다.


덕분에 나는 8월말까지 수민이와 함께 있어야 한다. 

다른 엄마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 그나마 나는 재택근무이고, 시간 활용이 가능하지만, 다른 맞벌이 엄마들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 할까? 


처음 시작은 좋았다. 수민이가  원했다고 하더라도 학교-방과후수업-돌봄교실-태권도와 바둑학원으로 하루 종일 밖에서 생활했던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이왕 이렇게 된거 방학동안 집에서 엄마랑 시간을 잘 지내보기로 했다. 그나마 2시에 태권도를 가니 오전 시간만 같이 보내고 학원에서 오면 동생들을 같이 데리러 가면 된다.


시원한 커피숍에 가서 같이 바둑도 두고,

(이제 바둑이론이 빠삭해진 수민이)

주중에 캐릭터 페어도 갔다왔고,


8월 국기원 승품심사를 앞두고 나랑 동영상을 보며 품새 연습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수민이 건강검진도 다녀왔다. 지루하면 수민이는 티비보고 싶다고 조르기 때문에 심심할 틈이 없게 하고는 싶지만, 사실 대부분의 시간은 평범하게 돌아간다. 돌아보니 아직 여름방학은 1/3만 지났을 뿐...ㅠ


수민이가 너무 심심해 해서 친구도 초대했다. 돌봄교실에서 베스트 프랜드라는 우림이를 초대하기 위해 한번도 본 적은 없는데 우림엄마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아이 방학을 어떻게 보내냐고 물었더니, 직장맘이라 오전에 할머니가 집에 오셔서 아이들을 데려가신다고 했다. 할머니 집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는 학원을 간다고... 우림이와 만나 방학동한 뭐했냐고 물었더니 하는 말, "집에서 갇혀서 지냈어요." 

그래.. 수민이는 그나마 나은 거구나...ㅋ


위층 사는 율이와 돌봄교실 베프 우림이


수민이 학원을 다녀오는 오후 시간에는 동생들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가야 한다. 광역버스를 타고 가느라 아이에게는 꽤 먼 길과 더운 날씨... 걱정했지만 역시 예상대로 가는 길 내내 목마르다고 짜증, 덥다고 짜증, 같이 뛰어가다 넘어졌는데 엄마 때문이라고 징징 거린다. 시간과 에너지가 배로 걸린다. 도저히 같이 다닐 수는 없겠구나... 수민이도 안 가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타협점을 찾은 것은, 바둑 학원을 가는 날(월,수)에는 돌아와서 혼자 집 앞 커피숍에 가서 샌드위치를 먹고 집에가서 티비보고 기다리기로. 바둑학원을 안 가는 날 (화,목)은 동생들 데리러 같이 가고, 금요일 오후에는 친구 집에 가서 놀기로 했다.


가장 문제는 내가 촬영이 있는 날이다. 이런 날은 하루 전 날, 미리 수민이를 외갓집이나 친가에 데려다 놓고 왔다.  벌써 세 번째... 외갓집은 자동차로 1시간, 친가는 2시간이 걸리는 거리지만 한편으로는 그나마 이렇게 맡길 데가 있으니 다행인거다. 정말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집은 그냥 아이 혼자 집에 있고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고 들었다.


엄마들이 개학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는 말로만 듣던 초등학교 방학을 실제로 겪어보니 정말 전쟁이다. 

그런데 충격적인 건 학교는 예산과 시공사 선정 문제로 아직 공사를 시작도 안했다는 사실... 이럴꺼면 돌봄교실을 초기 몇 주라도 운영을 했어야했다... 학부모들은 바로 착공하는 줄 알고 이런 감수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초등학교 학부모회에서는 하남교육지원청에 공문을 보냈다. 


"... 지난 증축준비 기간 동안 교육청에 협조하였고, 학교의 학사일정을 신뢰하고 따랐던 학부모들은 교육청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고 분노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돌봄 교실의 경우 긴 방학으로 인해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조부모와 친척집, 돌보미 등을 개인적으로 알아보며 증축공사에 협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증축 공사 지연은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나중에 세 아이들 다 초등학교 다닐 때가 문제다. 그때도 일할 수 있을까...? 


이 와중에 막내 수빈이는 구내염이 걸렸다. 직장어린이집이다 보니 전염병에 굉장히 예민하다. 

어제 오후 일찍부터 아이를 데려와 가정보육 중이다.ㅠ 특히 이번주에 어린이집에서 물놀이를 하는데, 혹시 (동생에게 옮아 잠복기일 지 모르는) 둘째가 다른 아이들에게 옮기는 재앙이 닥치지 않도록 수현이까지. 이번주 내내 세 아이를 데리고 있어야 한다.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현재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 모색 중이다. 



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7. 3. 21:13

수현이네 반에서 학부모 재능기부 신청을 받길래 6월에 신청했다. 

세 아이 최대한 공평하게 해주고 싶은데 나도 한계가 있어서 나름 기준을 세웠다. 재능기부 수업은 6살부터 하기로.. (그런데 수현이가 왜 수민이형만 엄마 선생님을 해주냐고 하길래 작년에 수현이도 한 번 하긴 했다)


수업 내용은 그동안 했던 장수풍뎅이로. 이미 세 번이나 수업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많이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나름 노하우도 생겨서 별로 긴장도 안됐다.


마침 같은 달에 수현이네 반 학습 주제가 곤충이라 아이들이 전 주에 곤충박물관도 다녀와서 타이밍도 좋았다.

선생님께 장수풍뎅이에 대해서 할껀데, 집에 키우던 장수풍뎅이들이 다 죽어서 보여주지 못해 아쉽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안그래도 장수풍뎅이를 살까 하고 있었다며 며리 한 쌍을 사서 준비해 주셨다. 너무 좋은 어린이집이다!


인사를 하고,

집에서 장수풍뎅이를 키우던 키우던 사진으로 장수풍뎅이 알->성충으로 변하는 실물사진 보여주기

장수풍뎅이 책 읽어주기


이번에는 시간이 길지 않아서 만들기나 그림그리기는 하지 않고 설명하고 관찰만 했다. 전 수업이랑 달라진 것은 이번에는 우리집에 새로 들인 사슴벌레를 가져갔다는 것!


장수풍뎅이 책을 보면 항상 장수풍뎅이가 곤충 중에서 가장 힘이 세다며 사슴벌레와 만나는 사진이 있는데, 그장면을 연출해보고 싶었다.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만남!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장수풍뎅이가 사슴벌레를 뿔로 번쩍 들어올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곤충도 성향이 있나보다. 장수풍뎅이는 자꾸 도망다녔고, 사슴벌레는 용감하게 장수풍뎅이의 배 밑으로 자꾸 들어가서 싸움을 걸었다.

장수풍뎅이가 스트레스 받을 것 같아 오래 하지는 않고 곧 분리를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정말 흥미로운 사건이었을 것 같다. 물론 나에게도.

 

40분가량의 수업을 마치고 가려는데, 수현이가 엄마 가지 말라며 닭똥같은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너무 슬퍼하는 그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렇다고 매번 수현이 말대로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슬퍼하는 수현이를 두고 돌아 나오는데 마음이 너무 미안했다. 이러려고 엄마선생님을 한 건 아닌데... ㅠㅠ

그래도 엄마랑 어린이집에서 함께한 시간이 너무 좋았으니 그랬겠지?

나중에는 엄마가 수업을 해줘서 정말 좋았다는 기억만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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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6. 12. 14:22

수민이는 지난 번  돌봄교실에서의 그 일 이후로 잘 지내고 있다. 잘 지내다가 또 잠깐 싸우기도 하는 것 같았지만, 문제가 있어 보일 때는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관찰을 부탁드렸다.

달라진 건 그것보다 나와 수민이의 변화다. 나도 수민이와 시간을 더 보내려고 하고 있고, 수민이도 엄마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하루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내가 연락하는 유일한 반 친구 엄마 둘에게 미리 이야기를 하고- 모두 형제,남매가 셋이라는 공통점)



학교 친구들을 초대한 건 처음이었는데, 자기들끼리 잘 놀꺼라는 나의 예상은 조금 빗나갔다.

나는 보드게임을 다 좋아하겠거니 했는데, 한 명이 자기는 그런 거 싫어한다며... '그럼 뭘할까?' 하며 이것저것 제시했는데, "그거 시시해요" "그거 안 좋아해요" 하며 자꾸 퇴짜를 놓는다.ㅠ 둘이 하고 싶어도 한 명이 하기 싫다고 하면 다른 두 명도 못하게 되는 상황.. 특히 자꾸 시시하다고 하던 아이는 티비를 보고 싶다며 티비를 틀어달라고 했다. ㅋㅋㅋ 


처음에는 팽이를 하다가 나중에는 할리갈리라는 카드게임을 했다. 모두 재미있게 하기는 했지만, 끊임없이 나의 중재가 필요했다. 서로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속임수(카드를 미리 보는)를 쓰기도 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공평하게 해야 한다며 규칙을 강조했는데 그러다보니 서로 카드를 빼앗다가 수민이가 울고 다른 친구는 "너 그러면 나 집에 갈꺼야"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휴... 이러려고 내가 초대했나? 


아이들과 놀다보니 규칙을 칼같이 중요시하는 것보다 "그냥 좀 봐주자~"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 이렇게 넘어가는 게 훨씬 평화롭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도 그 상황을 이해했다.

3시간 정도 지나자 그제서야 서로에게 익숙해졌는지 평화롭게 잘 논다. 


늦게 발동이 걸린 게 아쉽긴 하지만, 수민이가 태권도에 갈 시간이 되서 (나도 수민이 동생들을 데리러 가야해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수민이가 장난감으로 친구들이랑 계속 장난을 치며 온다. 태권도 사범님이 픽업하실 시간은 점점 가까워고, 나는 빨리오라고 몇 걸음 앞서가며 재촉을 하다가 나중에는 사범님 오시는 길목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따라왔어야 할 아이들이 안 온다.. 다시 길을 되돌아가보니 아이들이 안 보인다. 그 주변을 뺑뺑 돌며 뛰어다녔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남자 아이들 셋 못봤냐고 물었는데도 아무도 못 봤다고 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그 와중에 사범님께 전화가 왔다. 수민이가 없어서 그냥 가셨다고, 기다리다가 이미 출발 하셨다고...ㅠㅠ

결국 수민이와 친구들을 찾았는데, 후문 앞 갈림길에서 아이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왜 뜬금없이 엉뚱한 길로 간거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결국 친구들 앞에서 수민이를 혼을 내고 말았다. 

이런...

이러려고 내가 친구들을 초대했나!!


수민이를 혼내고 있던 중에 마침 마중을 나온 수민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화와 민망함이 교체했다. 마침 태권도학원 앞에 있는 마트로 장을 보러가는 길이라며 수민이를 태권도장에 데려다 주시기로 했다. 수민이나 나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화가 쉽게 풀리지 않아 수민이를 얼마나 괴롭혔을지 모른다. 


늘 그렇지만 그래도 좀 참을껄... 후회가 된다. 당시에 내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괜찮았을까?

수민이를 위해서 했던 나의 호의가 오히려 나에겐 스트레스가 된 것 같다. 


이 일의 휴유증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는 건 당분간은 미루기로 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은 시간을 내서 수민이랑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보통은 돌봄교실에 일찍 데리러 가서 태권도 가기 전까지 한 시간정도 데이트를 한다. 수민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스무디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숙제를 하기도 하고, 바둑이나 체스를 둔다.


짧은 시간이지만, 동생들 없이 수민이랑 둘이 있는 시간은 참 평화롭다. 물론 수민이도 이 시간을 참 좋아한다. 본인도 그 일 이후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취학전에 어린이집이나 학기 초에 돌봄교실에 내가 일찍 데리러 갔을 때마다 '더 놀고싶은데 엄마가 일찍 데리러 왔다며' 울상을 짓던 수민이와는 많이 달라졌다. 


돌봄교실에서 뭔가 재밌는 활동을 하다가도 엄마가 오면 바로 가방을 챙겨 나오면서 "저건 매일 할 수 있지만, 엄마랑 데이트는 자주 하는게 아니니까" 하면서 엄마와의 시간이 소중한 걸 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맞벌이하던 엄마들도 회사를 그만둔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수민이 입학이후로 내 블로그에는 온통 수민이 이야기 뿐인 것 같다. 


언제쯤이면 나의 마음의 굴곡이 조금 평탄해질까? 아이의 뭘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뭐든지 잘 하고 싶은 나의 욕심이 문제인 것 같다.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태권도 차쯤이야, 놓쳐도 괜찮아~ 학원이야 하루쯤 안 가도 괜찮잖아~ 억지로라도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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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5. 31. 10:01

이 일의 아주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학원에서 돌아온 수민이를 샤워를 시키며 "오늘 하루 어땠어?" 라고 물었더니, 수민이가 오늘은 "슬픈 날"이었다고 대답했다. 왜~?!


이 날 돌봄교실에서 한 친구가 뒤에서 수민이를 배를 깍지낀 손으로 꽉 안았다고 했다. 수민이는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태권도 힘으로' 친구의 깍지낀 손가락을 풀었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싸우다가 그럴 수도 있고 장난 일 수도 있는데 왜 슬펐을까? 슬펐던 이유는 그것 보다 (돌봄교실 남자아이들 7명 중 6명) 친구들이 다 자기를 놀렸다고 했다. 혼자 있는 애, 바보 멍청이 등등...

나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고, 수민이가 두서없이 대답해서 순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대략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수민이가 마음에 들지 않은 친구A가 친구B에게 수민이랑 싸워달라고 했다. 그래서 친구B가 수민이에게 다가와서 뒤에서 배를 움켜잡았고 수민이가 그 친구의 손가락을 풀자 둘은 아무 말 없이 갔다고 했다. 

2. 놀이를 하는데 친구A팀과 수민이 팀으로 나눠서 수민이 팀 할 사람 손들으라고 했더니 아무도 손을 안 들고, 친구A팀 할 사람? 했더니 나머지가 손을 다 들었다는 것.. 그래서 그랬는지(?) 수민이가 울고 있었는데 친구 한 명이 다가와 '혼자있는 애'라고 놀렸다고 했다. 

3. 또 친구A는 돌봄교실 친구들에게 "이수민 싫지?"라고 물어봤고, 두 명은 친구니까 '친구니까 싫은 건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나중에는 다 같이 놀렸다고 했다. 또 친구A는 수민이에게 다가와 "지긋지긋해"라고 이야기 했다고 했다...


문제가 조금 심각한 것 같아서 다음 날 돌봄교실을 찾아갔다. 선생님께 어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평소 A군과 B군은 수민이 외에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과 어머니와도 이야기 하고 있다고... 특히 B라는 친구는 학기 초에 친구들을 자주 때렸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까지 하셨다...


나는 수민이만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니겠거니 그냥 하루 있었던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날은 아이들 이모가 집에 놀러와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한 날인데, 이모가 와서 어제 내가 적어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어제 내가 수민이와 이야기하며 친구들 이름이 헷갈려 종이에 적으면서 정리를 했었던 메모... 이모가 이게 뭐냐며 진지하게 수민이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내가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심각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A군의 이름이 자주 들렸다.  A는 무슨 이유인지 수민이를 예전부터 싫어하고 놀리며 괴롭혀 왔다고 했다. 특히 수민이에게 "바보 멍청이"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수민이가 듣기 싫어서 양 손으로 두 귀를 막고 있으면 옆에서 손을 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바보멍청이 바보멍청이 바보 멍청이 바보멍청이..." 하며 계속 놀렸다고 했다. 하필 수민이는 A와 (보드게임을 하는) 방과후 교실도 같이 했는데, 거기에서도 수민이더러 게임을 못 한다고 짜증을 내고 놀렸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친구의 이름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방과후교실에서 수민이가 필통을 안 가져와서 연필을 빌리려고 했는데 싫어하며 굉장히 화를 냈다고... 그 때 나는 그 친구는 빌려주기 싫었나보지 그러니까 다음엔 필통을 잘 챙기라고 이야기 하고 지나갔었다. 또 예전에 B가 수민이 배를 주먹으로 때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A와 같이 그랬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친구랑 사이가 안 좋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친구를 시켜 때리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수민이가 싫지 않냐고 분위기를 몰아가고 다 같이 수민이를 놀리고, 지나가면서 발로 차고 가고... 이건 선을 넘은 게 아닌가. 이게 집단 따돌림의 시작!?

그냥 무시하라고 했더니 "그럼 물 마시러 가거나 식당에서 자주 만나는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 한다. 그럴 때도 너를 괴롭히냐고 했더니 그런 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이나보다...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친구들 놀림을 쉽게 무시하기는 힘들겠지. 어른도 힘든데...


그 때 내 머리를 탁 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다... 수민이는 약 한달 전쯤 부터 자꾸 머리가 어지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태권도에서도 운동을 하다가 어지러워서 태권도에 안 가고 싶다고 하길래, 그럼 사범님께 말씀드릴테니 운동하다가 어지러우면 옆에 앉아서 쉬라고 했었다. 최근 병원에 가서 피를 뽑아 정밀검사까지 했는데 문제는 없다고 했었던 상황... 그런데 자꾸 어지럽다,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해서 도대체 왜 그런걸까 걱정만 했었다. 혹시 그 원인이 이 친구의 괴롭힘 때문은 아니었을까?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처음 하신 이야기가 아이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냐고 물었었다. 내가 없다고 했더니 혹시 엄마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냐고, 학원은 몇 개를 다니고 있냐고... 수민이에게 직접 태권도 재미있냐고 묻기까지 하셨었는데... 

수민이의 어지러움이나 두통의 느낌은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었고 이게 지속적인 괴롭힘 떄문이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돌봄교실 선생님도 이 상황에 대해서 아실까? 당장 선생님께 전화하고 싶었지만 밤이 늦어 꾹 참았다. 당장 내일 찾아가서 상담을 해야겠는데, 하필 촬영이 있었다. "어떻게 하지?" 내가 고민하는 소리에 수민이가 "엄마는 내가 중요해? 일이 중요해?"라고 묻는다.

"당연히 니가 더 중요하지! 알았어. 촬영 취소할께." 급작스럽게 밤 11시에 다음날 촬영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친구들 좋아하고, 잘 사귀고 적응 잘하고, 자기 밥그릇 잘 챙겨먹을 거라고 믿은 수민이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이가 두통이 생길 정도로 괴롭힘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잠을 자려는데 자꾸 수민이의 말이 자꾸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엄마는 내가 중요해? 일이 중요해?" 

내가 그동한 일한답시고 아이를 돌봄교실과 학원으로 너무 방치한 게 아닐까 자책했다. 계속 눈물이 나서 새벽 5시쯤 겨우 잠에 든 것 같다. 


내 일이고 뭐고 안해도 좋으니 당장 돌봄교실 가지말고 엄마랑 있자고 했더니 수민이는 그건 싫다고 했다. 책읽는 친구랑 책 읽는게 너무 좋다고 했다. 돌봄교실에서 남자아이들 중 수민이를 놀리지 않은 유일한 남자친구 한 명은 하루종일 책만 읽는 친구였는데, 수민이가 그 친구랑 책을 읽으면 너무 재밌다고 했다. 책 읽는데 집중하면 나쁜 생각(바보멍청이)이 사라진다고 했다.... 

하긴 초등학교 6년을 같은 학교에서 보낼지도 모르는데, 피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돌봄선생님과 상담약속을 잡아서 12시까지 학교에 갔다.
첫 마디를 하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선생님은 이 정도까지 상황인지는 못하신 것 같았지만, 그래도 다행히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고, 일단은 내가 A군의 엄마를 만나기 전에 선생님 선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시겠다고 하셨다.

돌봄선생님과의 상담 뒤에 수민이 담임선생님께도 찾아갔다. 만약 수민이가 문제라면 수민이 반에서도 어떤 문제가 있을까 싶어서... 무슨 일이시냐고 물으시는데 또 왜 눈물이 나는걸까. 담임선생님이 수민이의 고칠점(그림그리기에 약하다거나 팔을 휘두르다 여자친구들 신체에 접촉해서 여자아이들이 선생님께 이르던 일 등)에 대해서 이야기는 해주셨지만, 큰 문제점은 없다고 하셨다. A의 담임선생님과도 이야기보고 지켜보겠다고 하셨다.

다시 돌봄교실로 내려와 조금 지켜보는데 A군도 없고 해서(수민이와 같은 방과후교실을 하는 날이었는데, 이 날 수민이는 A군 때문에 방과후교실을 안 가겠다고 했다) 수민이에게 나는 집으로 가겠다고 했더니, 이따가 방과후 끝나고 와서 또 괴롭히면 어떻게 하냐며 가지말라고 했다. 


그래서 간단히 밥만 먹고 다시 돌봄교실로 왔다. 밖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A와 같은 교실에 있는 수민이의 모습은 어쩐지 주눅이 들어 보였다. 한마디도 안 하고 책 좋아한다는 친구와 책을 읽고 있는데, A군과 친구들이 활동적으로 로보트 놀이를 하는 모습을 자꾸 힐끔힐끔 쳐다봤다. 
수민이도 내심 끼고 싶었는지 나중에 자기가 조립한 로봇을 가지고 와서 (같이 놀자는 뜻으로) A의 장난감을 쳤는데, A가 화를 내며 왜 자기 장난감을 부시냐며 "난 이수민이 싫다고!!!" 하면서 방방 뛰며 소리를 지른다.
그 때 선생님이 A군을 불러 주의를 주었는데, 밖에 수민이 엄마도 있다고 하신 것 같다. 고개를 홱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 뒤로 A는 얌전해졌고, 수민이도 로보트 놀이를 그만두고 선생님이 나눠주신 숨은그림찾기(?)를 시작했다. 수민이가 집중해서 하자 친구들이 몰려들어 같이 했고, A는 혼자서 로보트 놀이를 했다.

3시가 조금 넘어서 태권도 사범님이 A를 데리러 오셨다. 신발장에서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는데 그냥 모른 척 하려다가 A군에게 다가가 '아주 다정히' "수민이랑 친하게 지내~" 라고 이야기 했는데 "네"라고 대답하고 갔다. 심성이 나쁜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오후에 돌봄선생님이 A군의 엄마와 전화하셨다고 전화를 주셨다. 그 엄마는 A와 먼저 이야기해보고 맞으면 크게 혼내주겠다고 하셨다고 했다. 내가 직접 전화하거나 만났으면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을 것 같다. 그 아이도 그 집에서는 귀한 아들일테니까... 이게 2주 전 금요일 이야기.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왜 수민이를 싫어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는데, 방과후교실에서 수민이가 연필을 빌려달라고 하는 게 싫었고, 수업중에 자꾸 밖으로 나가서 게임을 못 하게 되어서 그랬다고 (수민이에게 물어보니 1~2번 밖으로 나갔다고 근데 왜 나갔지?) 그리고 수민이가 장난감을 정리하는데 장남감통으로 던지면서 정리를 하다가 A군 손에 맞은 적이 있었다고... 내 생각에는 둘의 강한 성격이 자꾸 부딪혔던 것 같다.

다행히 월요일에 A이가 수민이에게 사과를 했고, 수민이도 잘못한 것에 대해 사과하며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로 했다고 했다. 그 뒤로 일주일이 좀 지났는데, 그 뒤로는 특별한 괴롭힘 없이 잘 지내는 것 같다. 살짝 돌봄교실에 가서 지켜보았는데 예전의 쾌활한 수민이로 돌아온 것 같았다.

1학년이라 아직 어려서 행동 교정이 그나마 수월한 것 같다. 수민이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성격이고... 
그 뒤로 틈만나면 수민이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했는데, 수민이가 "엄마 걱정하지 마" 라고 나를 안심시킨다.


이 사건은 무엇보다 내가 아이들에게 좀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각성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생들 데리러 가기 전에 조금 일찍 나서서 수민이랑 커피숍에서 스무디&체스 데이트도 하고, 
어느 날은 운동장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며 숙제도 하고...



휴... 아이들 키우는데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든다.

이제 셋 중 하나 겨우 시작인데, 앞으로 얼마나 험난한 일을 헤쳐가야 할지 생각만해도 앞길이 천리 가시밭길 같다. 

수민이 입학식 다음날에 (선생님이 여자 이수민과 착각하는 바람에) 돌봄교실에 못 가고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한시간 울고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때 울고있던 수민이를 도와주셨던 한 엄마가 '앞으로 놀랄 일 많을 거라고' 하신 문자가 마치 예언같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소외되고 괴롭힘당했을 때의 감정을 통해서 나중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면 이것도 좋은 경험이다. 좋은 예방접종 맞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4. 18. 23:01

잔소리 헐크.. 아이들이 부르는 내 별명이다. 

나는 삼형제 엄마처럼 안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럼 내가 항상 하는 말..

집에서는 애들이 저한테 헐크라고 불러요.


나는 목소리가 작은 편이다.  말 수도 적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육아는 나의 이런 성격과 취향을 전혀 반영해 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재울 때까지의 약 일곱 시간동안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 해야한다. 아이들 셋이 요구사항을 동시에 이야기 하기 때문에 시장 바닥같은 우리집에서 내 목소리를 듣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


일단 집에 들어오면 신발 정리, 옷 정리, 손씻기 발닦기, TV 40분 보고 스스로끄기, 밥먹기, 양치하기, 세수하기, 눈감고 잠자는 것 까지(불을 끄고 누워도 쉬지 않고 떠들고 장난을 치고, 싸운다)... 

책을 읽어주려고 해도 일단 셋이 들고 오는 책이 다르고, 서로 먼저 읽어달라고 실랑이를 한다. 읽어주는 도중에도 수현이는 질문이 많고, 수민이는 마음이 급해 빨리 뒷장으로 넘기려고 하고, 수빈이는 자꾸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소리친다. 나는 노래를 부르다가 책을 읽다가 수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한다.


집에 돌아오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간섭하려다 보면 밤이 되면 멘탈이 탈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아직 스스로 행동을 절제할 수 없는 아이들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가끔 너무 힘든 순간들이 있다.  

몇 번을 이야기 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가끔은 나도 모르게 작은 일에도 소리부터 지른다. 내가 너무 자주 화를 내다보니 아이들도 이제 면역이 되어서 놀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킬킬거리며 "으악 엄마 또 헐크로 변신했다!"며 도망간다...


문제는 나의 이런 화내는 모습을 수민이가 닮았다는 거다. 나의 잔소리의 대부분은 큰 아들 수민이에게로 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동생들은 어리다고 허용이 되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기만, 초등학생 씩이나 된 수민이는 왜 이리도 잔소리할 것이 많은지...


아침마다 제일 늦게 일어나서 천천히 아침을 먹고, 천천히 옷을 입고, 천천히 세수와 양치를 한다. 중간중간 멍하게 있거나 딴 짓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의 재촉과 성화에 9시 10분 전에야 간신히 집을 나선다. 빨리 하라고!! 지각이라고!!!!!

(그나마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왔으니 다행이다...) 

그 상황에서 수민이는 꼬박꼬박 말대답하며 (엄마는 왜 그러는데!) 나를 더 분노하게 한다.


행동이 느린 건 날 닮았는데, 나의 급한 성격과 달리 수민이는 너무나 느긋하다. 그래서 자꾸 부딪히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수민이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었다.


수민이가 맨 뒷자리에 앉아있어서 나는 수민이 바로 뒤에 서 있었는데, 왜 이렇게 자세가 바르지 않고, 딴 짓을 하고, 머리를 꼬고 발표는 안 하는지!? 

참관수업이니 간섭을 안하려고 애를 써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결국 나는 1시간 수업을 참지 못하고 중간 중간 수민이를 건드렸다. "똑바로 앉아" "네임펜을 지우개로 지우면 어떻게 해?" "사물함에 가서 물티슈 가지고 와." "종이 구기지 마"


수업이 끝나고 수업데 대한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내가 대부분 중, 하에 체크한 것에 비해 다른 엄마들은 대부분 중과 상에 체크가 되어 있었다. 내 옆에서 자기 아들 산만하다며 한탄했던 엄마마저!

교실을 나와서 다른 엄마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괜찮아요. 학교만 재밌게 다니면 되죠~" 한다. 아니! 이건 내가 하던 말인데!? 나는 겉으로 쿨한 엄마인 척 하다가 내 아들이 그런 모습을 보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나보다. 막 입학한 1학년 남자아이들이야 산만한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나를 반성한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고 해 줘야지.


하지만 이렇게 다짐한 날 저녁, 수민이 친구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수민이가 친구 옷 앞뒤에 싸인펜으로 낙서를 잔뜩 해놨다고, 또 수민이가 말하길 오늘 친구랑 싸워서 보건실에 갔다 왔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수업시간에 짝꿍이랑 장난쳐서 수민이만 자리가 바뀌었다고 했고, 또 며칠 전에는 선생님한테 뛰었다고 혼났다고 했고...

모든 것에 나름 이유는 있다고 하더라도, 하아.... 아들은 내 마음이랑 너무 다르구나.

요즘 수민이를 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 녀석으로 인해서 속상해 하고 있하면 다른 녀석이 예쁜 짓을 하며 나를 힐링해 준다는 것.

막내 수빈이는 자기가 잘못을 하면 "미안해요"하며 나를 쓰다듬으며 사과를 한다. 웃긴 표정으로 나를 웃기려고 애를 쓰고, "하트 뿅! 하트뿅!"하며 하트를 발사한다.

둘째 수현이는 워낙에 바른생활 사나이라 혼날 일이 별로 없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이랑 발을 얼마나 야무지고 꼼꼼하게 잘 닦는지... 혼자 목에 수건을 두르고는 왼손으로 야무지게 잡은 채 오른 손으로 세수도 잘 한다. 말은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 "엄마 짱 예뻐! 엄마 지구에서 제일 좋아! 제일 사랑해!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커피 맨날맨날 사줄꺼야" 하는데, 수현이를 보면 매일 나를 어떻게 기분 좋게 해줄까 연구하는 것 같다.


지난 주말, 현충일 (2017-04-15)

웃기고 싶은 수빈이, 사랑받고 싶은 수현이

같은 형제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셋이라 힘들면서도 셋이라 참 다행인 이 아이러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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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3. 31. 12:58

 수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한동안 마음이 바빴다.



예전에는 남편이 출근길에 아이들 셋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내가 오후 4시쯤 광역버스를 타고 코엑스로 가서 차로 셋을 한꺼번에 데리고 오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수민이의 하교 시간과 동생들의 하원 시간이 겹치면서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했다.

특히, 문제는 수민이가 돌봄교실에서 집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다들 4~5시에는 집에 가는데도 그 시간에 데리러 가면 수민이는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울먹거린다.

수민이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그랬다. 5~6시에 데리러 가도 (그 시간이 이른 시간은 아닌데도) 어린이집에 더 있겠다고 "항상" 떼를 썼다. 내가 데리러 가면 동생들은 반색을 하면서 나에게 와서 안기는데, 수민이는 나를 보면 그 즉시 얼굴이 울상이 된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매일 반복되는 수민이의 그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힝~" 하면서 눈을 아래로 깔며 입꼬리 양쪽이 아래로 내려가는 그 얼굴...


그래서 아빠가 야근을 안 하는 날에는 내가 먼저 동생들을 데리고 가고 혼자 어린이집에 8시까지 있다가 아빠랑 같이 버스를 타고 오곤 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수민이가 돌봄교실에서 웃으면서 집으로 올 수 있을까. 집에  빨리 오고 싶어하는 수현이와 수빈이를 적당한 시간에 데리고 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 잘 때도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일단 첫 일 주일에는 생각나는 여러 방법을 실험해봤다

<방법1> 4시반쯤 수민이를 돌봄교실에서 픽업-> 수민이랑 광역버스를 타고 코엑스로 가서-> 다같이 차를 타고 집으로 온다.


첫 며칠은 수민이를 어르고 혼내면서 억지로 데려 갔는데,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가는 것도 서로 스트레스였고, 
나 혼자 가는 것보다 느린 수민이를 데리고 갔더니 시간이 배로 걸렸고, 
매일 코엑스까지 왕복 시간이도 수민이에게는 소모적이었다.


<방법2> 수민이 소원대로 돌봄교실에 남아 있으라고 하고-> 혼자 동생들을 데리고 와서-> 동생들과 학교에 가서 수민이를 데리고 온다.

이 방법은 6시까지 시간을 맞춰 오는데 늦을까봐 내가 너무나 조급했다. 그 시간까지 남아있는 수민이 하나 때문에 퇴근을 못 하시는 돌봄선생님께도 죄송했다. 
또 동생들을 데리고 또 형을 데리러 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는 아이들을 데리고 형을 데리러 가는데 집과 가까운 학교 쪽문과 후문이 모두 잠겨 있어서 멀리 돌아가야 했고, 
다음 날에는 학교 정문 근처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려니 주차도 문제였고, 정문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이틀 동안 혼자 얼마나 불안해 하며 시간에 쫒기겼는지, 아이들은 동시에 왜 이리 찡찡대는지..., 

특히! 그렇게까지 수민이에게 맞춰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에도 안가겠다는 수민이는 나를 너무 짜증나게 했다. 


계속 이렇게 노심초사 하며 지낼 순 없었다. 
실험 4일 차 저녁, 나는 진절머리를 내며 바로 태권도 학원에 전화를 했다.

돌봄교실에서 픽업을 해준다는 태권도장으로! 


결론적으로 우리는 세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동생들을 데리고 올 동안,
돌봄교실에 있는 수민이는 태권도에서 4시 40분쯤 픽업-> 태권도 한 시간 수업-> 차량을 타고 집 근처에서 하원을 한다.

나는 6시 15분쯤까지만 집으로 오면 되니 너무나 여유로웠고, 깔끔했다.


큰 형이 돌아올 시간에 나와 동생들는 미리 나와서 집 앞에서 30분정도 씽씽카를 타며 산책을 한다. 하루 대부분을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수현, 수빈이에게도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더 있었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촬영을 있는 날은 판교에서 6시에 끝나서기 수민이의 태권도 하원시간에 맞춰서 가기에 불가능했다. 주위에 부탁할만한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것도 역시 학원의 힘을 빌려야 했다.


마침 동네에 *세돌 바둑학원이 있어서 지난 주말 태권도 학원을 둘러보며 바둑학원도 들러 상담을 받았다.

태권도 끝나고 바둑학원에 갔다오면 7시...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 아이를 너무 학원으로 돌리는 게 아릴까 싶은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촬영이 있는 날은 내가 빨라야 7시에 도착하므로 어쩔 수이 둘째 주 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바둑학원도 보내게 되었다.


그나마 매일 가는 건 아니고, 무엇보다 수민이가 원하고, 바둑학원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은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수민이는 전에 다니던 태권도에서 형들이 장난으로 하는 바둑을 등 넘어 배워와서 나랑 초등 바둑책으로 공부하기도 했고, 친가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바둑을 두기도 했었는데, 집에서는 바둑을 두고 싶어도 상대가 없었다. 그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던 상황에 수민이에게는 너무나 좋은 시간이 되고 있다.


이 와중에 또 다행인 것은 태권도 학원과 바둑학원 사이에 작은 찻길을 건너야 하는데, 태권도 사범님이 길을 건너 건물까지 데려다 준다는 고마운 사실....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서 나는 이러한 학원 시스템에 대해 찬양하게 되었다. 특히 엄마가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아이를 어딘가에 맡길 곳이 없는 상황에서는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학원이란 존재는 너무나 친절하게 엄마들의 필요를 알아서 해결해준다. 필수불가결한 공생관계로 자리잡았달까... (전에 내가 그랬듯이) 사교육에 대해 무조건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교육을 찬성하는 건 아니다. 공부와 관련된 학원은 보내지 않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노는 게 최고인데 너무 학교와 학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어쨌든 심심한 것 싫어하는 수민이에게는 딱 맞는 스케줄이라 위로한다. 


어쨌든 한 달이 지나가니 이제 이런 시스템도 안정이 되어간다. 

이제 수민이도 학교에 혼자서 등교하고, 태권도 사범님이 돌봄교실로 수민이를 데리러 가니 수민이가 군소리 없이 가고, 동생들은 여유롭게 집에 돌아오고, 매일 이렇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하다.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우리에게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 같다! ^^


                                                                      ↑ 내 뒤에 수현이 표정이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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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3. 4. 01:30

수민이가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한 반에 37명이 9반이나 됐다...! 우리가족 처럼 생각하고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이사온 집들이 많았나 보다. 교실 부족으로 교장실도 교실로 개조했다고 했다. 


수민이한테 입학식 소감을 물어보니, 담임선생님이 할머니라 시험이 쉽게 나올 것 같다고... (이사 오기 전에 다니던 태권도장에서 형들에게 너는 어린이집 다녀서 좋겠다. 시험 안 봐서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등교 첫 날!

수업은 12시 20분에 끝나는데, 수민이는 돌봄교실을 신청했기 때문에 돌봄교실에 있으면 내가 3시쯤 데리러 갈 계획이었다. 첫 날이니까 일찍 데리러 갈까 싶기도 했지만, 첫 주는 담임선생님이 돌봄교실로 데려다 주신다고 했으니 크게 걱정은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1시 반쯤 콜렉트콜이 걸려 오더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끊어진다. 그 뒤로 또, 또 전화가 왔다가 그냥 끊어진다. 

'이건 수민이다' 

수민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 직감하고, 담임선생님께 전화했더니 전화를 안 받으셨다. 선생님께 "수민이 돌봄교실 잘 갔나요?" 문자를 남기고 급하게 채비해서 학교로 가보려는데 다시 콜렉트콜이 걸려 왔다. 이번엔 안 끊어지고 제대로 연결됐다. 수민이다.

"엄마 왜이렇게 안와.." 흐느끼는 수민이의 목소리...


왜 돌봄교실에 안 갔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기는 아니라고 했단다. 이게 무슨 일이지?

미친듯이 학교로 뛰어가는데 다리가 풀렸다. 아직 학교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수민이가 자기가 어디있는지 설명을 못해서 나는 정문으로 후문으로... 전화기가 있는 곳을 찾아서 뛰어다녔다. 그 와중에 어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애가 잠바도 안입고 밖에서 울고 있길래 같이 반에 올라가 옷과 가방을 챙겨서 같이 내려온다고...

교실로 올라갔는데, 길이 엇갈려 정문에서 겨우 수민이를 겨우 만났다. 눈물은 그치고 멍한 수민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옷도 안입고 밖에서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1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가슴이 너무 아팠다. 

 
돌봄교실로 가서 확인을 해보니 담당 선생님이 이수민은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하고 성별을 여자라고 적어서 담임선생님께 전달했던 것이다. 하필 같은반에 여자 이수민이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여자 이수민을 데리고 가다가 엄마를 만나서 보냈다는 것.. 


약 1시간 10분동안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아들은 교실에 혼자 남아 기다리다가 아무도 없으니 무서워서 밖으로 나와서 엄마를 기다렸다고 했다. 엄마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고... 그 와중에 학교 안에 비치되어있는 전화기를 발견했는데, 어떤 형이 콜렉트콜로 전화하는 것을 등 너머 보고는 따라서 전화한 거다. 

그런데 콜렉트콜은 상대방이 목소리를 확인하고 아무 버튼이나 눌러야 하는데, 수민이는 자꾸 뭐라고 뭐라고 하니까 그냥 중간에 끊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울고 있었는데, 어떤 형 둘이 와서 "왜 울고있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형들이랑 콜렉트콜을 시도했는데, 수민이가 또 중간에 끊으려고 하니 형들이 계속 들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떤 엄마를 만났고, 같이 교실에 가서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서 나오다 나를 만난 거다.


나는 너무 속이 상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울면서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돌봄교실 담당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했다. 담당선생님은 뭐라 드릴 말이 없다고 너무 죄송하다고 하셨다... 원망은 됐지만 이미 일어난일인데 어쩌겠나.. 
 
내가 돌봄교실앞에서 울면서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는 돌봄교실에 아이를 데리러 온 1학년 다른 엄마가 나보다 더 눈물을 흘렸다. 다 같은 입장이라 감정이입이 잘 되나보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 공감해준다는 게 어쩐지 고마웠다.

 
 
상황이 정리가 되고, 충격을 받았을 수민이를 데리고 집에 가려고 했더니, 이 상황에 수민이는 이미 돌봄교실 들어가더니 놀고 있었다. 이미 조금 전에 상황은 다 잊어버린 듯, 자기는 더 놀다 가겠다며 이따 오라고 했다. 3시에 다시 데리러 갔더니 더 이따 오라고.. 

결국 4시에 다시 갔는데 선생님이 2학년 형, 누나들에게 준 곱셈 문제를 다 풀고, 기어이 3학년 문제까지 받아와 동생들 데리러 가는 길 버스정류장에서 쪼그려 앉아 풀고 있다.. 내 아들이지만 참 연구 대상이다. 


이 사건으로 학교에 가기 싫어하면 어쩌나 했던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 뒤로도 수민이는 학교와 돌봄교실을 모두 좋아했다. 오히려 데리러 가면 안 가고 더 놀겠다고 하는 특이한 상황이 매번 연출되었다. 


 
어쨌든, 등교 첫날 우리는 여러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호된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이제 겨우 첫째 초등학교 입학식인데, 앞으로 얼마나 사건 사고가 많을 것인가!

다음 날, 수민이를 도와주었던 엄마한테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앞으로 놀랄 일 많을 거라는 말이 인상에 남는다.


걱정은 한아름 되지만 한편으로는, 수민이가 가르쳐 주지 않았던 콜렉트콜을 스스로 걸었던 것을 보고 아이가 상황을 스스로 헤쳐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움을 주었던 형들과 엄마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도움을 주는 선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그날 저녁만해도 속상해서 눈물이 났는데, 보름 정도 지나고 나니 그 감정도 희미해져서 별 일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울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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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3. 4. 01:20

아들 셋을 키우는 건 역시 만만치는 않다.

제일 힘든 건,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지독하게 계속 할 때, 그리고 아이들 본인이 하지 말아야 되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할 때...  예를 들면 싸움 놀이가 점점 과격해질 때, 주차장에서 뛰어갈 때 "이제 그만 해, 천천히 가, 엄마랑 같이 가, 멈춰!!!!"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내 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다.

이건 남자아이들이라서 더 그런걸까? 셋 중에 수현이는 또 수민이랑 정반대의 성격을 보이니 이게 모두 남자라서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나를 자꾸 화가 나게 하는 주인공은 주로 큰 아들 수민이이다. 


하이라이트 사건 몇 가지...

1. 친정집에서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아래로 1000ml 우유팩을 던져 계단 전체가 우유 폭탄을 맞았던 사건 (계단을 내려가던 수빈이에게 전달한다고 던졌는데, 터지지 않자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올라가 더 세게 던짐)


2. 코*스 가족화장실에서 수현이와 내가 용변을 보고 있던 중, 혼자 남자 화장실로 갔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민이가 화장실 밖에서 문 열림 버튼을 자꾸 누르다 기어코 화장실 문을 열었던... 나의 치욕스러웠던 사건... (하지말라고 하면서도 속으로 설마 열릴까 했는데 계속 누르니 열렸다... 너무 짜증이 나도 눈물이 나더라)


3. 발렌타인데이날 아빠가 회사에서 받아온 초콜렛을 발견하고 자기꺼라고 찜해놨는데, 동생이 먹어버리자, 어린이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다 아빠 양복 단추를 뜯어버린 사건...  

이 날 아빠는 화를 집까지 참고 돌아와 수민이를 한참을 훈육했다. (20분동안 손들기+반성문)

<반성문>

"아빠 죄송함니다. 외 죄송하냐면 단추도 뜯고 그리고 짜증내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안 그러겠슴니다. 죄송합니다."

2017년 2월 14일 이수민 드림


일련의 사건들을 옆에서 목격 하면서 발견한 수민이의 공통점은 뭔가 끝까지 하려는 기질이 있다는 거다. 그만 하라고 해도 계속 하는 이 모습이 나를 화가 나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는 없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목적의식이 굉장히 뚜렷해서 뭐든지 끝까지 열심히 한다는 것.


세계여행을 하는 보드게임을 몇 주동안 매일 몇 시간씩 매달려서 했고, 한동안은 체스에 빠져 밤마다 아빠를 붙잡고 했고, 어린이집 친구들이 한자를 공부했다며 자기 전에 꼭 한자사전을 엄마 아빠에게 들고 와서 혹은 혼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한다. 바둑에 관심을 보여 어린이 바둑책을 사줬더니, 한동안 저녁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둑 문제를 풀었다.


어린이집에서 체육 시간마다 하던 줄넘기를 잘 하기 위해서 밤마다 나가서 줄넘기를 연습을 한다. 내가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기 힘드니까 같이 못 나간다고 했더니 혼자 기어코 나가서 줄넘기 500번을 채우고서 들어온다.


혼자 나가서 줄넘기 하는 수민이


외할아버지가 구구단을 틀리지 않고 다 외우면 돈을 준다고 했더니 며칠만에 9단까지 다 외웠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 구구단 못 외운다고 칠판에 이른도 적혔었는데... 내 아들이지만 너무 신기하다. 


이렇게 이것 저것 열심히 하는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몰입을 잘하는 수민이가 좋아하는 최고봉이 게임이라, 나는 수민이가 커가면서 게임에 너무 빠질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지난 설 연휴 때 친척들과 놀다가 알게된 포켓몬고 게임을 지금까지 하는데, 집에서는 아예 게임을 못하니 이모를 아바타 삼아 포켓몬을 잡고 매일 수시로 보고를 받는다. 

어린이집에서 쓴 일기장을 봤더니, 내용이 포켓몬 잡는 내용이 많아서 나를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그림일기 주인공이 포켓몬을 잡고 있는 이모의 모습...


2007년 2월 8일 - "어제는 버스 타고 집 에 갔는데 이모 랑 카카오톡 했다. 그리고 이모 가 포켓몬 나왔다 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잡았어? 했는데 이모가가 겨우겨우 잡았다 고 했따. 그리고 지금 잡은 숫자 는 240 이였다. 그리고 골덕을강화했다. 그리고 골덕 이 504 가 됫다. 그리고 나중에 외할머니 집에서 만나자 고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줄넘기 했다. 끝~"

2007년 2월 9일 - "어제는 내가 카카오톡 했는데 이모가 카카오톡 문자를 안보내서 그냥 삭제 했다. 그래서 또보네 서 기다 렸다. 그리고 근데 또 안보냇다. 근데 왜 안보냇냐 면 포켓몬 1마리 잡느라 그런 것이었다. 근데 이름 은 몰르는데 불새 다. 그리고 흰색 인데 다 발이 날카 롭 고 사나운 녀석 이였다. 그런데 이모 가 겨우겨우 잡았다 고 했다. 그리고 숫자는 369 였다. 이모 가 엄청 힘들다 고 했다. 그리고 도 잡았는데 걔는 316 이였다. 걔 이름은 네루미 였다. 이모 가 힘들다고 했다. 재미있었다. 끝~"

(수민이 맞춤법, 띄어쓰기 그대로 옮겨 적음)


별 이야기 아닌 것으로 이렇게 길게 쓰는 것도 참 신기하고 재밌으면서도 걱정이 된다. 

이제 초등학교에 가면 핸드폰이 있는 친구들이 생길텐데 어떻게 막아야 하나? 사실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남편과 나는 수민이가 초등학생일 떄는 절대로 핸드폰을 사주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엄마의 관점에서 교육적으로) 좋은 일은, 이모랑 매일 카카오톡을 게임처럼 하더니 띄어쓰기, 맞춤법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수민이는 포켓몬 이름 외우면서 한글도 쉽게 떼었는데 이제는 포켓몬이 맞춤법까지 가르쳐 준다. ㅋㅋㅋ


카카오톡 할 시간 10분 줬는데 이모가 답장이 없자....

수민이 톡에서 극도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런 수민이가 이제 막 어린이집 졸업을 했다. 


'당찬 자신감상'                   어린이집 같은반 친구들 14명 중에 이수민 세명...

                                    (우리집 수민이는 남수민으로 불렸다)

졸업식 날, 친구가 선물로 준 과자를 동생들에게 하나도 양보 안하고 혼자 다 먹은 수민이...

동생들을 울리면서도 끝까지 혼자 다 먹은 의지의 사나이....


초등학교를 가면 이런 수민이 기질이 어떻게 발전될까? 

부디 (엄마의 관점에서) 바람직하게 자라주기를... 하지만 지금도 안 듣는데 크면 얼마나 말을 안 들을지...ㅠㅠ 차라리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을 수도 있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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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6. 12. 17. 10:19

우리 동네(지금은 아니지만) 나의 단골 커피숍에서는 미술품 전시와 판매를 함께 했다. 

여름에는 커피숍과 같은 건물에 있던 미술학원의 아이들 작품을 전시했는데, 내가 미술학원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고정관념과 많이 달랐다. 하나하나의 작품들이 모두 재밌고 개성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곳은 아이들의 작품이 모두 달랐다. 


왼쪽 아래는 아이들이 자기만의 이야기와 그림으로 만든 동화책~

 인상깊었던 곤충 만들기

협동작품으로 만들었다는 환상의 섬~ 


나는 이 아이들 작품만 보고는 우리 아이들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특히, 형에게 늘 스스로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감성적이고 예민한 수현이와 그림을 그리거나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수민이 둘다 미술학원에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있던 터였다. 

일단은 수현이만 보내고 싶었는데 (수민이는 태권도를 다니니)  수민이가 이 미술학원에 다니는 어린이집 친구 둘이 재밌게 무언가를 만드는 사진을 보고는 본인도 다니겠다고 졸랐다. 


원장님과 상담을 받아보았더니 내가 느꼈던 것 처럼 획일화된 미술학원과는 달랐다. 

특이한 점은 한 반이 최대 4명으로 소규모로 진행이 되고,  (수민이네 반은 세 명, 수현이네 반은 네 명)

1년에 네 학기로 나뉘어 학기 별로 주제를 정해서 운영된다는 것. 


9~11월 마침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우리 이사 예정일 전에 끝나는 일정이라 바로 그 주부터 시작했다.  


<식재료 탐색 후 과일/채소 얼굴 만들기-수현>



<상자로 우리 집 만들기-수현>



<내가 상상하는 자동차 아이디어 스케치 후 만들어 보기-수민>


<우주를 그려보고, 로케트 만들기 -수민>


<우드락으로 도장을 만들어 거북이 등딱지 표현하기 -수현>


<정글의 소리를 들으며 친구들과 탐험지도를 그려보고, 나만의 뱀을 만들어 보물찾기 놀이> 


<친구들과 구슬길 만들기-수민>

선생님 feedback : 

"수민이는 이번 시간에 친구들과 협동하는 구슬길을 만들었답니다. 아이디어스케치 단계에서 치훈이와 같이 고민을 하면서 여러 트랙이 있는 재미있는 구슬길을 그려냈답니다. 박스를 색칠하는 과정에서는 붓도 써보고 손도 써보면서 여러모로 다양한 기법을 스스로 찾아내어 실행하였답니다. 구슬을 굴리면서 뭐가 더 필요한지 고민도 해보고, 친구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선뜻나서서 해주는 수민의 배려심이 잘보였던 수업이었답니다"


<도시소리를 들어보며 다양한 재료로 나의 길 만들기-수현>

선생님 feedback: 

"수현이는 다양한재료를 탐구하면서 내가 다니는 길을 찬찬히 기억해내며 도입부에 들려준 도시소리를 연상하며 도화지에 수현이만에 재미있는 길이 완성되었답니다. 

덥고 차가운 목욕탕을 잘 표현해주었으며, 거북이 친구를 나의 작품에 더함으로 한층 더 재미있는 길이 되었으며, 크레파스로 거북이가 사는 환경을 조성해준점이 인상 깊었고, 부드러운 천의 촉감으로 거북이가 살고있는 바다의 이름을 부드러운 바다라고 칭해준 점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글씨가 적힌 리본끈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연상시켜 '중국' 이라는 나라 또한 만들낸점이 훌륭했답니다.

그외에도 기찻길 및 표지판등 주어진 재료를 이용하여 수현이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세상이 멋지게 표현되었답니다."


<보호색을 띄고 있는 자료사진들을 보고, 수민이는 부엉이를 선택해 부엉이와 망토 만들기-수민>



<방패와 검을 만들어 보고, 탐험놀이-수민>


<사랑하는 대상(호랑이!)을 위한 케이크를 그려보고 실제로 만들기-수현>


<내가 살고싶은 나라-수민>


선생님 feedback:

수민이는 이번수업시간에 내가 만들고싶은 나라라던가 살고싶은 나라에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는과정에서는 용암이 아래에 흐르고 착한사람과 나쁜사람이 싸워 착한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이어 수민이의 착한사람과 나쁜사람이 싸워가는 세상을 클레이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클레이의 여러가지 색을 이용하여 착한사람이 나쁜사람을 물리치러 가는 길 즉 '용사의 길'을 표현한 점이 너무 인상깊었으며, 수민이의 작품중 갈색종이컵이 붙어있었는데 빨간클레이로 나의 모습을 만들어내어 갈색종이컵이 텐트라 힘들면 이곳에와서 쉬어도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작품내에 불어넣어줬습니다.

마지막에 수민이가 만든 길의 끝에 마치 포탈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동그란 원을 만들어주었는데 이는 곳

최종보스한테로 가는길이라는 얘기를 덧붙임으로써 훨씬 더 멋진 수민이만의 클레이 세상이 완성된것같습니다.


<도자기 찰흙으로 만들고 싶은 것(오토바이)을 만들어 보고, 가마에서 구워낸 작품 확인-수현>


<도자기 찰흙으로 만든 수민이의 개구리 컵-수민>


<흙으로 재밌는 세상 만들기-수현>


선생님 feedback:

이번 흙 놀이 수업에서 수현이가 생각하는 재밌는 세상들을 꾸려나가 보았습니다. 

수현이가 지난시간 도자기 수업에서 물을 많이 묻혀 묽어진 흙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는지

"이번엔 물 안 묻힐거예요!" 이러는 모습에 너무 사랑스럽고 지난 시간에 힘든 와중에 열심히 한 모습이 더더욱 대견해 보였습니다^^ 넓은 작업 공간에서 지렁이 굴이 있는 지렁이 섬으로 시작한 수연이는 다리를 이어주기도 하고, 친구들이 만든 응가 나무에 열매를 맺어주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마늘 다지기 기구를 이용하며 날아다니는 파스타와 듬성 등섬 수풀을 만들고 넓은 공간에 자유롭게 활동함에 즐겁게 수업하였습니다.


<나무를 만들고 단풍잎을 물감에 물들여서 붙여보기-수현>


<비오는 날 물감과 크레파스로 그림그리기- 수현>


<카멜레온의 보호색 표현하기- 수민>


수현이는 처음 미술학원 가던 날에는 자신이 잘 못할 것 같다며 자신감이 없더니, 나중에는 미술학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수업을 한 다음날에는 선생님이 사진과 장문의 피드백을 카톡으로 보내주셨는데, 이런 부분도 참 좋았다. 


다만 두 아이들이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나의 스케줄은 바쁘고 복잡해졌다. 

수민이가 미술학원가는 화요일에는 태권도를 한 시간 당겨 3시반 타임으로 보내야 했는데, 그 시간에는 태권도장에서 픽업이 안되서 내가 직접 데려다 줘야했다. 3시10분에 수민이를 데리고 태권도에 데려다주고, 4시 반에 수민이와 수민이 친구를 미술학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어린이집으로 가서 수현, 수빈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미술학원이 끝나는 7시에는 친구 엄마나 형이 수민이를 데려다 주었는데, 가끔 동생들을 집에 두고 내가 뛰어갔다 올 때도 있었다. 

수현이가 미술학원에 가는 목요일에는 3시10분에 미술학원에 데려다주고, 4시반에 다시 미술학원으로 데리러 갔다가 5시 전에 수빈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내가 설마, 벌써 애들 학원 픽업하느라 이렇게 바빠질 줄이야... 

마음 한 구석으로 비판하고 있던 헬리콥터맘이 된 기분이다. 특히 사교육을 지양하자던 내가 어느새 아이들 사교육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시키고 있다니 내 마음에 양 극단이 교차했다. 이상과 현실이 부딪히는 느낌.


사실 싼 편이 아닌 학원비 두 명 분 삼개월치를 한꺼번에 내야했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좋다고 생각하니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영어유치원을 반대하는데, 그 곳에 아이들을 보내는 엄마들도 나의 마음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이번 일로 한 가지 느낀 것은 사교육에 노출되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과 실제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사교육을 반대하는 것보다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준은 아이들이 좋아해서 다니는 건지, 아니면 부모의 의지로 억지로 다니게 하는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학원비이나 등,하원의 어려움 외에도 미술학원은 나에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수민이가 미술학원을 같이 다니는 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길래 한 번 초대하게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날 이후로 미술학원 끝나고 두 친구들이 우리집으로 오는 것이 코스가 되었다. 수민이 친구들은 미술학원보다 끝나고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더 좋아하고 기대하게 되었다.


처음엔 아이들끼리 잘 노니 좋고, 밥 먹이는 건 어차피 밥상 차리는 거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남편도 항상 늦을 때라 저녁 9시 반쯤 가는 것도 괜찮았지만... 

하루는 수민이에게 샤워를 하는 날이라고 했는데, 친구들도 하겠다고 해서 하루에 남자 아이들 다섯을 씻긴 적도 있었다. 아이들 다섯이 발가벗고 뛰어다니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었다. ㅋㅋ 밥도 은근히 신경써서 차려야 하고, 아이들 놀거리도 제공해줘야하고, 간식도 챙겨줘야 하고 점차 마음의 짐이 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사가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ㅠ


그래도 수업 자체는 참 좋았다. 어쨌든 이래저래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이사하는 곳에도 이런 미술학원이 있으면 보내고 싶지만,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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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6. 12. 3. 01:25

수민이가 태권도를 다닌 지 1년 하고도 4달이 지났다. 

처음 수민이는 어린이집의 같은 반 친구와 다녔는데, 그 친구는 몇 달 뒤에 그만두었다. 그런데도 수민이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참 잘 다녔다. 


학부모 참관수업 (2016년 6월)


몇몇 조그만 사건들은 있었다. 

친구가 자기 손을 손톱으로 꾹 눌렀다며 속상해하던 일도 있었고,

한 번은 태권도 시작 전에 초등학생 형에게 "야"라고 잘못 말했는데, 상대방 아이가 왜 형한테 '야'라고 하냐고 따지자 수민이는 순간적으로 안 했다고 했다가 거짓말쟁이로 몰렸다고 했다. 그 형과 친구에게 말로 공격당하고 (돼지가 등장하는 어떤 말이었는데 잊어버림), 그래서 구석에서 혼자 쪼그려 앉아 울었다던 이야기... ㅋ (관장님은 아이들 픽업에서 돌아오시는 중이라 못 보신 듯) 

이 일이 있던 날, 집에 돌아와 내 품에 안겨 울었다. 이 일은 수민이에게 상처였는지, 이제 태권도를 안 가겠다고하더니,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풀어져서 또 잘 다녔다. 


이런 일들이 초반에는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다툼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맛있는 것도 나눠먹고, 형들이 게임이나 바둑하는 걸 구경하면서 친해진 것 같다. 바둑 두는 걸 등 너머 배워오더니 이제는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바둑도 둔다. 소풍도 매 달 꼭 신청을 해서 신나게 놀다온다. 


태권도 소풍~

(놀이기구 재밌었다고 하더니 혼자 얼었음)


수민이가 여섯 살이던 작년 어느 날에는, 하원할 때 태권도 차량을 놓쳐서 혼자 집을 찾아온 적도 있다. 도장에서 형들이 게임하는 걸 구경하다 늦게 내려왔더니 태권도 차가 없어서 혼자 집까지 걸어왔다고... 씩씩하게 집에 와서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그 자리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짠하면서도 다행이었던 사건이었지만... 무엇보다 혼자 집에 찾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그 뒤로 나와 길이 엊갈려서 허겁지겁 달려왔을 때도 혼자 태연하게 집에 용변을 보고 있었고,

가끔 친정집에 동생들을 먼저 데려다 주고 수민이를 데리러 오는 길이 늦었을 때는 혼자 집에 들어와 손 씻고, 발 닦고, 옷도 갈아입고, TV를 보고 있다. 이렇게 하라고 (그러면 TV를 볼 수 있다고ㅋㅋ) 미리 일러 주긴 했지만 너무나 기특하다. 내가 없으면 더 잘하는 것 같다.


태권도를 다니면서 (의도치 않게) 수민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신체 능력도 좋아지다보니 자신감이 많이 커졌다. 

예를 들면 어린이집 같은 반에 친구를 신체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많은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어린이집 상담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그 아이와 싸울 수 있는 아이는 21명 아이들 중에 수민이밖에 없다고 하셨다. 어디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다.


이사를 간다고 했더니, '이렇게 좋은 태권도가 어디에 있냐며' 어린이집에 대한 애착보다 태권도 때문에 이사를 가기 싫어할 정도...

그런데, 수민이가 태권도와 멀어지는 한 가지 사건이 생겼다. 이유는 국기원!


빨간띠 이후에는 국기원에 가서 승급심사를 통과해야 품띠를 딸 수 있다. 문제는 품띠를 따려면 1장부터 8장까지 모두 외워야 한다는 것. 내 눈에는 너무 복잡해 보이는 이 동작들을 7살 아이가 정확하게 외워야 한다고?  

띠를 따기 위해 태권도에 다니는 것이 아닌데 이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승급심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사가 결정되고 생각해보니, 새로운 태권도장에 가게 되면 공인 인증된 품띠가 있어야 될 것 같았다. 1년 넘게 태권도를 배웠는데, 새로운 태권도장에서 흰띠가 될 수는 없다!

지난 7월에 신청을 했는데 수민이가 부담이 컸는지 미루고 싶다고 했다. 관장님은 할 수 있다고 시켜보자고 했지만, 내가 억지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관장님한테는 내가 너무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것처럼 비춰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 때 나는 아이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뒤가 문제였다. 

보통 3개월마다 한번씩 국기원에 가고, 국기원에 갈 친구들은 한 달 전에 신청을 받는데, 수민이는 3개월 전에 신청한 셈이라 관장님이 수민이를 유독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 같다. 틀리면 혼을 자주 내고 엄하게 가르치신 듯... 이번에는 잘해서 꼭 통과하자고 하는 마음이셨겠지만, 수민이는 정말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그 사이에 국기원의 승급심사를 하는 주체가 바뀌어서 심사가 까다로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토요일에 품새특강을 하는 걸 가서 보면 한 동작 한 동작 까다롭게 훈련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승급심사 날이 가까워질수록... 품새를 하는 화, 목요일에는 (특히 관장님이 수업하시는 목요일에는) 전 날 밤부터 태권도에 가기 싫다며 울었다. 잘 못해도 괜찮다고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태권도 가기 전에 태권도에 가기 싫다고 너무 운다고 선생님이 놀라서 전화를 한 적도 있다. 그 날은 결국 태권도에 안 가기도.


이렇게까지 품띠를 따야하나? 

여기가 갈등의 포인트였다. 관장님 말씀대로 푸시를 해야하나? 그냥 또 순순히 취소를 해줘야 하나?

여러 날의 고민 끝에... 해보기로 했다. 


삼개월 동안 수민이는 토요일마다 품새특강도 갔고, 이제 품새도 거의 완성됐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미 한 번 안 하겠다고 해서 들어줬는데 이런 상황이 다시 반복되다 보면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쉽게 포기하는 것이 습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힘들게 노력해서 얻는 성취에 대해서 느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10월 16일, 대망의 심사 날!!


(좀 좋은 카메라 가지고 가서 찍었으면 좋으련만. 흔들리고 너무 작고...ㅋ)

이 날 심사로 선택된 품새 1장... 8장까지 힘들게 외웠는데 1장.. ㅋ

(대련 심사하러 이동 중)

대련을 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두 번 찬 사람한테 관장님이 체크 20점을 준다고 했는데,

상품에 눈이 먼 수민이는 필사적으로 두번을 차는 데 성공했다. 


작년과 비교하면 얼마나 의젓해졌는가!

불과 1년 전의 꼬마 수민이.. ㅋㅋ (2005년 8월)


이번에 나는 육아에서 중심을 잡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아이의 말을 들어줘야 하나, 아니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여야 하나? 양 극단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탔다. 어떻게 해야하나? 한번 경험으로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일단은 아쉬움이 덜 남는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수민이 말대로 국기원을 안 가고 이번에도 포기했으면 너무 아쉬웠을 것 같다. 시도해 보지도 않고 실패한 기어으로 남았을 듯. 품띠를 받은 수민이도 자긍심이 대단하다.


그리고 태권도 1장부터 8장까지의 연속시범은 수민이의 최고 장기가 되었다. 이제 각이 딱 잡혔다. ㅎㅎ

(잊어버리기 전에 동영상으로 찍어놔야겠다)



(코엑스에 놀러갔다가 공짜로 찍어준 잡지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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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