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락실 안.
서로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오락실 안에서 어떤 여자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다. 왜 저 여자는 하필 이 곳에서 책을 읽고 있을까? 신기하게도 집중을 잘 한다. 페이지가 몇 장 넘어간다. 한 남자가 다가가 둘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다시 간다. 남자는 남자 아이들과 게임을 하고 여자는 다시 책에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2. 주말의 어느 쇼핑몰 푸드코트.
주말이라 사람이 많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한 가족이 테이블을 어렵게 잡고 앉는다. 남편은 음식을 주문하러 간 것 같고, 세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엄마는 책을 꺼내서 뭔가를 살핀다. 살피는가 싶더니 책을 넘긴다. 아이들은 아빠가 갖다준 진동벨을 가지고 서로 갖겠다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리고 엄마에게 그만 좀 보라며 눈치를 주고 간다.
#3. 어느 키즈카페
아이들이 뛰어 노는 키즈카페 안, 모든 엄마 아빠들이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대화를 하면서도 자꾸 핸드폰을 본다. 그 중에 한 엄마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책을 보는 모습이 보인다. 혼자 책에 집중한 무표정한 모습이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워 보인다.
이것은 실제 내 모습이다. 가끔 나를 저런 시선으로 사람들이 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업무와 육아에 치여 책을 볼 시간이 없는 나는 쪼개진 시간을 활용하여 책을 본다. 전쟁같아 보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일상이고 평온한 모습의 한 장면이다. 나의 일을 이해해주는 남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꾸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들에게 '딱 여기까지만 읽고 갈께~'라고 하는 엄마를 봐주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틈새시간을 이렇게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읽지 않으면 시간이 없다... 고 하지만 사실 시간은 더 낼 수 있다. 집중하면 더 많이 읽을 수 있는데 자꾸 울리는 알람에 신경을 빼앗기거나, 아니면 핸드폰 확인이 습관이 되어서 더 빨리 읽지 못하는 것도 있다.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지만 내 맘 같지는 않다.
마음이 급하긴 해도 책을 읽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읽고 난 책들이 한권 두권 쌓이다보니 이제 글을 쓸 때도 어느 책 어느 곳에 어떤 부분이 있는지도 쉽게 찾아서 글감으로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예전에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의문으로 가득하던 일들이 하나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변했지만 남편도 많이 변했다.
읽은 책을 차에서 운전하는 남편에게 신나게 설명을 하면 남편은 재미있게 듣는다. 나를 보며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던 남편이 최근에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젯 밤에는 남편이 밤 12시가 넘어서 <포뮬러>를 읽는데,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과하게 동의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그러더니 새벽에 일어나 또 책을 읽는다 (남편은 나와 다르게 아침형 인간이다) 그러더니 아침에 내게 말한다. 사흘이면 책 한 권은 읽을 수 있겠다고. 집안에 동지가 생기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불현듯 드는 생각...
남편까지 책을 읽으면 오락실에서 애들은 누가 보지? 음식 주문은 누가 하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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