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글쓰기] 05일차. 오늘의 주제는 이것이다.
"그건 또 내가 전문이지!
남들이 궁금하지 않아도 오지라퍼처럼 당당히 참견할 수 있는 재능을 자랑해주세요."
아침에 슬쩍 보고 '오지랖 어디까지 부려봤니'에 대한 글인 줄 알고 오지랖에 대해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쓰려고 보니 '재능'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전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의 재능이 뭘까. 내 직업을 재능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영상편집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너무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물어본다고 하지만 사실 만들어달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나는 어렵게 거절을 하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당당히 참견할 수 있는 재능이 이렇게 없었나... 죄다 관심사나 취미밖에 떠오르지 않던 와중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편에게 물어봤다. "내가 뭘 잘하는 거 같아?"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올까봐 살짝 걱정했으나, 돌아온 대답을 듣고 나는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출.산."
출산이라니.. ㅋㅋㅋ 이건 진짜 내가 오지라퍼처럼 당당히 참견할 수 있는 나의 재능이 아닌가... 남자들이 군대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까지 장황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엄마들에게도 그런 소재가 있다. 어느 날 한번은 길가 신호등 앞에서 세 엄마가 모여 각자 출산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30분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모든 엄마들의 출산 과정은 모두가 힘들고 특별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가 세개나.
나는 아이들을 기계처럼 낳았다. "기계처럼"이라는 것은 정확한 텀을 두고 아이를 낳았다는 뜻이다. 아이를 낳고 수유 1년 후 다음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그래서 우리 세 아들은 생일이 모두 4월이다. (특히 첫째, 둘째 아들은 생일이 하루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하긴 했지만, 남편이 나의 재능을 출산이라고 한 것은 사실 세 아들의 출산(+육아)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백전노장의 느낌이랄까?
우리 부부는 아이가 다쳐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우리가 늘상 하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누군가를 탓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예전에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넘어져서 턱이 심하게 찢어졌다다고 선생님이 놀라서 전화가 왔다. 응급실에 가서 꽤 많이 꼬맸는데 나는 선생님을 질책하지 못한다. 왜냐면 바로 전 주말, 내 앞에서 놀던 막내가 갑자기 달려가더니 그네에 부딪혀서 뒷통수가 살짝 찢어지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발상황은 엄마가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도 생긴다. 누군가를 탓하면 그 화살을 나에게도 돌려야 한다.
남자아이 셋이 함께 있다보니 별별 일이 다 생긴다. 식탁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육중한 현관문에 막내 손가락이 끼어서 피가 범벅이 된 걸 보고 손가락이 잘린 줄 알고 놀란 적도 있다. (막내가 문을 열고 나가는데, 둘째가 못 보고 달려와 반대방향으로 열다가 일어난 사태) 폐렴으로 열성경련으로 입원해보기도, 눈가가 찢어져서 열 바늘이 넘게 꿰멘 적도 있다. 팔이 빠진 정도는 아주 가벼운 사건. 이제 아이 울음 소리만 들어도 사건의 경중을 판단하고 응급실에 갈 때는 책을 챙겨 가는 여유도 생겼다.
이런 사고뿐일까? 아이들이 없었다면 겪어보지 못했을 극도의 화와 놀람과 속상한 순간들을 경험하고 나니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된 것 같다. 너무 극단적인 상황들만 나열하다보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가져다 주는 행복은 내가 겪는 어려움보다 훨~~~씬 상단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여러 경험을 통해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괜찮다는 내가 지금 가지게 된 이 마음의 여유로움은 아이에게도 좋다. 부모가 의연하니 아이들도 그렇게 된다. 넘어지고 다쳐도 거의 울지 않는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게 되니 (정말 너무 다르다) 아이가 못해도 괜찮고 잘해도 괜찮다. 못하는 일을 잘 해내라고 다그치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이런 나의 여유로움은 바깥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내가 아이를 잘 낳고 키우는 체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전부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들과 매일 매일 반복된 10년이 어리버리한 여자아이였던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 이 정도면 오지랖을 부리며 훈수를 둘 정도는 된 것 같다. 사실 훈수랄 것도 없다. 내 답이야 항상 똑같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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