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라고 생각했었다. 특히 이건 가정주부로서는 당연한 의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아끼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모범적인 살림꾼'이 아니다. 요즘의 나는 자잘한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장을 보러 가서는 가격을 보지 않고 산다. 가격 비교를 하고 할인을 받는 것은 나에게 너무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아껴서 집안 살림에 보태야 한다는 의무감에 나는 항상 죄책감을 느꼈다. 반면 나는 큰 것은 잘 못 산다. 내가 조금 고생하면 된다며 첫째 둘째도 산후조리원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명품도 좋아하지 않고 (브랜드 명도 잘 모른다) 화장품도 거의 사지 않는다. 가전 제품에도 욕심이 없다.
나의 소비패턴이 극단적으로 나뉘게 된 뿌리는 30년을 함께 산 부모님의 생활습관에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없는 방에 불이 켜져있으면 "전기절약!!" 소리을 들으면서 자랐다. 아직도 그 잔소리가 따갑다. 엄마는 물가에서 물을 아껴쓰라던 외증조할아버지의 말씀을 아직도 내게 하신다. 없던 시절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것도 중요했지만, 물건을 아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부모님께는 정말 중요했다.
예를 들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슈퍼에 갈 때 집에 있는 비닐봉지를 챙겨 갔다. 비닐봉지도 아껴야 한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슈퍼에서 계산을 할 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비닐봉지를 꺼내면 슈퍼 아주머니가 이 집 애들은 참 교육을 잘 받았다며 칭찬하신 기억도 있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는 새교복을 산 기억이 별로 없다. 항상 물려받은 교복을 입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덩치가 큰 언니의 옷을 물려받아서 내 몸에 딱 맞지 않았다. (나도 딱 맞는 옷을 예쁘게 입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엄마한테 사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뭔가를 풍족하게 누려보고 살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아껴서인가.. 우리 부모님은 반지하에서 아파트로, 지금은 일곱 집이 모여사는 다가구 주택의 건물주가 되셨다. (부모님 세대는 그렇게 아낀 돈으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부모님의 근검절약 정신은 나에게 아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었다. 어떤 부분에는 긍정적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부정적이다. 나는 지금 내 아이들에게 비닐봉지를 들려보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작은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 초반에 매일 밖에서 사 마시는 커피 한 잔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림을 잘 못하는 주부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정당성이 생긴 것은 내가 일을 하면서부터다. 경제적 자유를 맛보게 되면서+ 특히 시간과의 싸움이 무엇보다 더 중요해지면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은 무엇이든지 한다. 일과 육아 모두를 하루 동안 해 내기 위해 모든 분초가 소중해졌다. 장을 볼 때 가격을 비교하는 시간도 아깝고 택시를 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도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걷기를 마다하시는 부모님과는 대조적이다.
우리 집에 오시면 늘 새는 돈이 많다며 잔소리를 하시지만 그래도 엄마는 나의 상황을 이해하신다. 요리하는 것보다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게 낫다는 나의 말에 뭐라고 하시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고 나름의 가치관에 맞게 돈을 쓴다는 것을 안다. 나도 부모님께 돈 좀 팍팍 쓰고 살라고 하지만 나도 엄마를 이해한다. 어린 시절, 그렇게 돈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남들에게 큰 돈으로 도와주셨던 부모님의 이면도 커서야 알았다...
'공부하는 엄마 > 30일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미래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껴줄 가구 브랜드 (1) | 2019.09.11 |
---|---|
투 플러스 원의 유혹 (2) | 2019.09.10 |
출산이 재능인 여자 (0) | 2019.09.06 |
의식적으로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나의 물건 (2) | 2019.09.05 |
왜 저렇게까지 책을 읽을까? (4) | 2019.09.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