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카콜라를 매일 같이 마시던 한 소비자가 코카콜라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콜라 때문에 치아가 상했고, 콜라를 그만 마시려고 했지만 중독되어 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외국에서도 '콜라 소송'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햄버거 소송', '담배 소송' 등 본인의 중독으로 인한 피해를 제조사에게 책임을 묻는 사례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콜라 소송'과 '햄버거 소송'은 치아와 비만의 원인을 각각 한 가지에서만 찾기 어렵기 때문에 원고가 패소하는 일이 많지만. 미국에서 '담배소송'은 원고가 승고 하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1953년 진행되었던 첫 소송은 폐암으로 사망한 사람의 유족들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담배의 유해성을 고지하지 않은 점을 인정받아 4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았고, 그 이후로 1990년대 말 미국의 모든 주 정부들이 담배 소송을 제기해 46개 주는 담배회사들과 2060억 달러에 최종 합의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과 달리 일본과 프랑스, 독일에서도 담배 회사의 책임이 없다는 판례를 고수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15년을 끌어온 국내 흡연자들의 담배 소송이 원고 패소한 적이 있다.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할까? 다시 말해서, 중독(= 반복되는 습관)의 원인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


미국에서는 지난 10년 동안, 습관과 자유의지에 대한 신경학 연구가 상당히 진척되었다. 그 연구 결과가 반영되면서 미국 법원에서는 (우리의 정상적인 선택 능력을 방해할 정도로) 강력한 습관에 대해 인정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범죄자가 몽유병 같은 '무의식적 행동'을 핑계로 무죄를 주장하는 경우, 그 습관에 따른 행동에 대한 면책권을 인정하기도 한다.


책, <습관의 힘>에서는 두 가지 사례를 보여주며 습관과 자유의지에 대해 설명한다. 


사랑하는 아내를 살해한 몽유병 환자(A) vs 도박에 빠져 수십만 달러를 잃은 평범한 주부(B)    


결론부터 말하면 몽유병 환자(A)는 무죄, 도박에 빠진 주부(B)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둘의 공통점은 둘 다 뿌리 깊은 습관을 따랐기 때문에 합리적인 의사 결정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둘 다 습관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차이점은 있다. 바로 의지의 문제다. (A는 수면상태였고 의식이 없었던 반면, B는 자율 규제 프로그램을 스스로 신청할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는 (아이언맨의 부모를 살해한) 버키반즈는 세뇌되어 있었기 때문에 무죄다.(출처: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어떤 습관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그 습관을 변화시킬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다.

- <습관의 힘>, p. 373


<습관의 힘>에서는 '변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또 그런 믿음을 습관화한다면 변화가 실제로 가능하다'라고 역설한다. 단, 이 습관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아낸다면 말이다. (어떤 습관이든 '습관 고리'가 있어서 이 습관 고리를 파악하면 된다)


*습관 고리: 신호 -> 반복행동 -> 보상 
*습관을 바꾸는 방법: 신호와 보상은 그대로 두고 반복 행동을 바꿔라!
나쁜 습관은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 된다. (출처: <습과의 힘>)


다시 처음의 물음으로 되돌아가 보자.

"중독(= 반복되는 습관)의 원인을 누구에게 돌려야 할까?"


(이 문제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지만) 습관 하나로만 판단한다면, 그것은 담배 회사 등의 원인 제공자가 아닌 나의 문제가 더 크다. 왜냐면, 습관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다. 어렵지만 통제는 가능하다. 


그러면 앞서 언급한 '나쁜' 습관들이 아닌 다른 습관들로 눈을 돌려보자. 우리는 하루에 핸드폰을 얼마나 많이 바라보고 있는지.


어쨌든 이런 장면이 비정상적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세상은 우리를 습관으로 길들이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기술이 발전한 현대 사회에서는 이 알고리즘은 갈수록 교묘하고 정교하게 계산되고 있다. 미국의 target은 임산부들에게 그들이 기분나빠할까봐 절대 사지 않을 것 처럼 보이는 광고도 섞어서 보낸 다는 사실! 광고가 무작위로 보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우리가 보고 있는 광고들은 우리의 구매 형태에 감추어진 습관을 찾아내는 전문가의 계산된 행동인 것처럼 말이다.


조깅을 시작한 이후로 내 sns 계정에 트레이닝 복과 각종 운동 앱들이 뜨기 시작했는데, 구글 알고리즘은 지금 내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어디서 지갑을 열게 할지 알고 있다. 이것은 우스갯소리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인터넷이 우리를 쉴 새 없이 산만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단순히 쇼핑에 중독되게 할 뿐 아니라 우리가 집중하고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리게 만든다. 그러면 sns에 중독된 우리는 각종 플랫폼을 고소 해야 하나? 물론 아니다.


인터넷을 하지 말고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니콜라스 카의 말처럼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위한 시간과 함께 비효율적인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고, 기계를 작동하는 시간과 함께 전원에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모두 필요하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균형을 맞출 능력을 찾을 수 있도록, 이미 길들여져 있는 습관이 우리를 먹어치우지 않도록 우리의 행동을 통제해야 한다. 


구글을 탓할 것이 아니라 결국 스스로 습관을 바꿔야 한다.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앞에서 언급한 습관 고리(신호-반복행동-보상)에서 반복행동을 바꾸면 된다. 핸드폰을 보는 시간을 책을 보는 시간으로, 사색하는 시간으로!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의식적으로 몰입해야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였던 고 윌리엄 제임스는 습관을 이렇게 정의했다. "처음에는 어렵게 하던 일을 점점 쉽게 해내고, 충분히 연습한 후에는 거의 기계적으로 혹은 거의 의식하지 않은 채 해낼 수 있게 해주는 힘."이라고. 그가 습관을 종이나 코트가 일단 구겨지거나 접히면 그 후로는 항상 똑같은 곳이 접혀지는 것과 같다고 표현한 것이 좋은 비유인 것 같다. 습관을 유지할 것인지 바꿀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그리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훈련한다면 반드시 연습한 방향으로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일주일에 한 권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30분 조깅을 한다. 어렵게 하던 일이 조금씩 쉬워지고 있다.



덧. 혼자 힘으로 책 읽는 습관을 만들기 어렵다면, '빡독'과 '씽큐베이션'에 참여하여 최고의 환경 설정을 의식적으로 할 수 있다. (*씽큐베이션: 1주일 1권 서평 쓰고 토론하는 12주 무료 독서모임)

 

'빡독' (*빡세게 독서하자: 하루 종일 핸드폰을 끄고 책을 읽는 1일 무료 독서모임)

Posted by kimberly


먼 시골마을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아담하고 튼튼하게 잘 지어진 이 집은 밤에는 수많은 별을 볼 수 있었고, 계절을 관찰할 수 있었다. 빨갛게 익어 가는 사과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근처 웅덩이에서 헤엄치는 꼬마들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 마을은 개발이 시작된다. 




도로가 만들어졌고, 도시로 드나드는 트럭과 자동차들이 들락거렸다. 온 세상이 그 전보다 훨씬 바쁘게 움직였다. 집들은 더 커졌고, 높아졌다. 짚 앞으로 전차가 그리고 전철이 다니기 시작했다. 언제가 여름이고 겨울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들 바빠 보였고, 허둥대는 것처럼 보였다... 


버지니아 리 버튼의 동화책, <작은 집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다. 세상이 좀 더 좋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정말 더 좋아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책,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는 그 발전 속에서 우리가 얻는 것과 잃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특히 인터넷이 주는 풍요로움과 교환한 우리의 구식 사고방식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헤친다. 정보 과부하를 처리하려고 정보처리기술이 더 발달함에 따라 우리가 기술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2003년 한 네덜란드의 임상 심리학자, 반 님베겐은 컴퓨터를 이용한 학습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두 그룹의 자발적 실험 참가자들로 하여금 컴퓨터를 통해 까다로운 논리 퍼즐을 풀도록 했다. 


 A 그룹 :  최대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소프트웨어를 제공했다.
 B 그룹 :  힌트나 조언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간단한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예상한 대로 퍼즐을 푸는 초기 단계에서는 A그룹이 더 빨랐다. 하지만 실험이 계속되면서 B그룹의 숙련도가 더 빨리 증가했고, 결국 '더 빨리' 그리고 '잘못된 이동을 하는 횟수를 줄이면서' 퍼즐을 풀어냈다. 실험을 주도한 심리학자는 B그룹은 미리 계획과 전략을 짜는 데 더 월등한 반면 A그룹은 단순한 시행착오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보고했다. 특히 A그룹은 퍼즐을 푸는 동안에도 "목적 없이 그저 클릭하고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우리가 지금 웹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는 방식도 이 A그룹과 비슷해 보인다. 사람들은 웹을 통해 이리저리 건너뛰며 관심 있는 정보만 훑는다. 문서에 대한 집중력은 더욱 약해졌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조차도 이메일을 확인하고, 링크를 클릭하고, 무언가를 검색한다. 디지털 기기에 대해 의존하면서 뇌도 함께 변하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세상에 들어갈 때 우리는 겉핥기 식 읽기, 허둥지둥하고 산만한 생각, 그리고 피상적인 학습을 종용하는 환경 속으로 입장하는 셈이다... (중략)... 인터넷은 뇌의 회로와 기능에 강력하고 빠른 변화를 낳는 감각적, 인지적 자극, 즉 반복적이고 집중적이고 쌍방향적이고 중독적인 자극을 전달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p.174


사실 체인지 그라운드에서도 집중력을 유지하지 못하는 구독자들의 댓글을 심심찮게 발견한다. 유튜브 영상 10분이 너무 길어서 집중하기 힘들다고 불평하거나 길이를 줄여달라는 요청도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제목만 보고 들어와서 영상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댓글만 훑고 내용을 판단한다. 인스타그램에서는 10장의 카드 뉴스를 마지막 장까지 보는 사람들이 10%가 되지 않았다.


인터넷이 사람들의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정말로? 

문제 1) 사람들의 집중력은 떨어뜨리거나 올릴 수 있는 것인가?

문제 2) 문제는 정말 인터넷인가?


많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 뇌가 굳어진다고 생각한다. 유년기에 어떤 틀에 맞춰진 모형이 만들어지면 최종적인 모양으로 재빨리 굳어버린다는 식이다. 하지만, 신경가소성에 다한 최근의 발견들에서 '뇌는 변한다'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아래 저명한 신경과학자들의 결론을 정리해 보았다.


제임스 울즈 : 성인의 뇌는 단순히 변하는 정도가 아니라 매우 잘 변한다. 

머제니치: 뇌는 대대적으로 변한다. 

올즈: 뇌는 그때그때 상황을 봐가며 과거 방식을 바꿔 스스로를 새롭게 정비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알바로 파스쿠알 레온 : 뇌의 가소성은 일생을 거쳐 신경조직에서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상태이다.


사람의 뇌가 죽을 때까지 변한다는 뇌의 가소성은 우리에게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준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실명을 할 경우, 시각 자극을 처리하던 뇌의 부분은 즉각 청각 처리를 위한 회로로 채워진다. 또한 이 사람이 점자를 배울 경우 시각 피질은 촉각을 통해 전달되는 정보를 처리하는 새로운 임무를 띠게 된다. 하지만, 운전자들도 머릿 속의 지도보다 네비게이션을 의지하게 되면서 공간 표현에 필요한 해마의 감소를 경험하게 된다. 운전자들은 시내 도로 지리를 알아두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되지만, 동시에 "학습"이 주는 흥미도 잃게 된다.


특히 뇌의 특정 회로가 반복을 통해 강해질수록 회로는 해당 행동을 습관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는데, 무서운 것은 우리의 신경 회로가 고무줄처럼 이전 단계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 신경들은 변화된 상태를 유지한다. 나쁜 습관은 좋은 습관만큼이나 빨리 우리의 뉴런을 파고들고, 반복된 경험은 그것이 좋든 나쁘든 시냅스에 영향을 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쉽고 빠른 검색을 가능케 한 링크 덕분에 사람들은 디지털 문서 사이를 건너뛰어다닌다. 그에 따라 우리의 뇌도 집중하고 사색하는 능력보다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더 향상시키게 되었다. 멀티태스킹 능력은 사실상 깊이,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저해하고 있다. 


연구진은 활발하게 멀티태스킹을 하는 이들은 더욱 쉽게 관련 없는 주변 자극에 의해 산만해지고 작업 기억 속에 담긴 내용물에 대한 제어 측면에서도 눈에 띄게 뒤떨어졌으며, 보편적으로 볼 때 특정 업무에 집중력을 유지하는 능력에 있어서도 뒤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p.211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현대에서는 이렇게 변했다... (출처: giphy.com)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많아질수록 의식적으로 몰입해야 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 니콜라스 카는 균형을 맞출 능력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효율적인 정보 수집을 위한 시간과 함께 비효율적인 사색의 시간도 필요하다고, 기계를 작동하는 시간과 함께 전원에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도 모두 필요하다고 말이다. 


결국 해답은 독서에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정적인 대상에 대한 지속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집중을 요하는 일이다. 독서에 능숙해지면 집중력도 더 좋아졌고, 깊이 읽을수록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가 지금껏 교육이나 성장의 도구가 되어 왔던 이유다. 


당장 집중해서 책 읽기가 어렵다면, 환경설정이 최고다. 하루종일 함께 모여 책을 읽게 해주는 독서모임, 빡독에서는 참여자 약 120명이 동시에 핸드폰을 끄고 하루종일 책을 읽는다. 집중력을 잃더라도 눈을 들어 주위를 보면 다 책을 읽고 있으니 나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을 수밖에 없다. 정말 보기 어려운 명장면이다.


2019년 3월 빡독의 현장


핸드폰에 중독되어있는 나의 뇌를 쉬게하자. 집중하는 능력을 잃었다면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


5월 18일 빡독 신청하러 가기>>  https://forms.gle/kaAG8DbKC9TBpHgY9


*이 글은 대교가 후원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에 참여하면서 작성된 5번째 서평입니다.


#무료독서모임 #씽큐베이션 #갓대교 #1주1책1서평 #빡세지만중독된다 #더불어배우다 #생각하지않는사람들 #체인지그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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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오후,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듣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위대한 법칙을 발견해 낸 천재들이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그 법칙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결론은 이것이었다.  


"다른 것은 모르겠지만,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잠을 푹 자야 한다는 것이죠."


엥~!? 이게 무슨 말이지? 


이 글은 이 라디오의 이상한 결론에 대한 반론이자, 우리가 왜 어떤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지에 관한 내용이다.


어떤 아이디어가 갑자기 의식 위로 떠오르는 영감의 순간! 이 순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영감의 순간이라고 하면 뉴턴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이야기나 목욕을 하다가 밀도를 측정하는 법을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장면이 생각나지 않는가? 이렇게 영감 이론은 수많은 일화를 통해 신화가 되어왔다. 



영감 이론은 두 가지 중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1) 천재의 번뜩임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잠을 푹 자면 누구나 이런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라디오의 결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

2) 평소에 다듬어 놓은 재능이나 타고난 천재성이 없다면 이러한 순간을 결코 만날 수 없다.


책,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에서는 영감의 순간을 겪은 비틀즈의 폴 메카트니의 일화를 소개한다. 잠에서 깼지만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방 한 구석에 놓인 작은 피아노로 다가가 기억을 더듬어 선율을 찾는다. 이렇게 그가 꿈속에서 들은 멜로디는 세계 음악 역사상 가장 많이 녹음되고 3,000개 이상의 다른 버전으로 편곡된 곡이 되었다. '예스터데이'의 탄생 순간이다. 



하지만 이 이론은 틀렸다. 많은 연구와 책들은 '창의력'에 관한 영감 이론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성공을 가능하게 해주는 과학과 방법*은 반드시 있고, 누구나 노력하면 그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맞을까? 과연 좋은 아이디어는 딱! 하면 떠오르는 것인가? 


책, <오리지널스> 에서는 이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을 '미루기의 효과'로 설명한다. 할 일을 미루면 (생산성은 떨어질지 몰라도) 창의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과학 영재들은 "미루기를 과학적인 문제나 해결책을 너무 서둘러 선택하지 않고, 생각이 무르익도록 해주는 방편으로 삼았다"라고 설명했다. 어떤 사람들은 "시간을 끄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상 뭔가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찬찬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때 그렇게 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과학적인 작업을 할 때는 아이디어가 숙성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간 끌기는 "설익은 해결책을 내리려는 충동을 억제하는 하나의 방편이다"라고 말했다. 

-<오리지널스>, p.173


다시 말하면 '머릿속에 담아둔 채로' 할 일을 미루다보면 생각이 무르익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미루는 행위가 독창성을 발휘하는 데 정말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오리지널스>에서는 한 실험을 소개한다. 이 실험에서는 대학생들에게 대학 교정에 편의점이 있던 빈자리를 채울 사업계획을 써보게 했는데, 실험자들은 1) 즉시 사업계획을 하도록 작업에 착수하거나 2)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사업 계획을 작성하는 작업을 미루게 했다. 그랬더니 미루는 경우 28% 더 창의적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혹시 미루는 행위가 아니라 컴퓨터 게임을 한 것이 그들을 창의적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하지만 또 다른 실험을 해보니, 단순히 게임을 하거나 휴식을 취한다고 창의성이 향상되지는 않았다. (이 글 위의 라디오 결론을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다...) "제안을 머릿속에 담아둔 채로" 게임을 하면서 할 일을 미루는 경우에만 창의성이 향상되었다. 


폴 매카트니에게 신성한 영감처럼 보였던 "예스터데이"도 실제로 그가 좋아하는 음악의 잠재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다. 오랜 세월 '나'라는 컴퓨터에 모든 것들을 입력해 두었다가 어느 날 아침, 내 컴퓨터가 아주 괜찮은 곡이라고 생각한 걸 출력해 내는 것이다. 


이런 영감 이론처럼 잘못된 정보를 믿음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남다른 열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작활동이 천재에게만 허용된 섭리라고 믿는 바람에 창작을 포기하거나, 혹은 창의적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꿈을 포기하고 창작자가 아닌 소비자가 되고 만다. 천재들을 찬양하거나 자신의 능력 부족을 비관한다. 


(출처: 명견만리)


많은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창의력 교육을 받는다. 그런데 결국 그 아이들의 꿈이 공무원이 된다는 사실은 무엇을 암시할까? 성취욕에서 오는 압박감은 독창성을 억누른다. 성공하겠다는 욕구가 강하면 강할 수록 나만의 독특한 무엇을 달성하기보다는 성공이 보장된 길을 택하고 싶어진다. 우리가 재능이나 야망은 충분히 지녔지만 독창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성취욕 때문이다.


결국 독창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오랫동안 그들을 연구하고 접촉해온 끝에, 나는 놀랍게도 그들이 내적으로 겪는 경험은 우리가 겪는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독창적인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려움을 느끼고 회의를 품는다.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용기를 내서 행동에 옮긴다는 점이다. 독창적인 사람들은 하다가 실패하더라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는 시도하는 것이 후회를 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리지널스>, p.61


결국 독창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용기를 내서 시도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다. 행동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한다. 내가 무엇을 잘못 알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의 고정관념과 확증편향만 바로 잡아도 독창성은 높아질 수 있다. 

 

*참고로 위의 성공을 가능하게 해주는 과학과 방법*은 <생각이 돈이 되는 순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네가지 방법: 소비, 모방 창의적 공동체, 반복)


-<오리지널스> 핵심 문장-

어떻게 하면 독창적인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독창성은 고정불변의 기질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선택이다.

(https://bit.ly/2IrhxQm)


Posted by kimberly

남편은 내가 나무늘보를 닮았다고 했다. 나도 그 별명에 거부감이 없었는데, 나 스스로도 내가 지독히도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건 너무 잘 알았지만 내 인생은 운동과는 접점이 없었다. 특히 달리기는 내 인생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5km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달리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책, <순간의 힘>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이다. 클라크와 동질감이 느껴지면서 한편으로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꿈틀거렸다안 그래도 체인지그라운드의 팀장으로서 (운동을 하라는 자체 동기부여 영상들을 보면서한편으로는 죄책감도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1996년, 25세의 조시 클라크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크게 상심한 그는 한동안 우울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조깅을 시작했다. 클라크는 원래 조깅을 싫어했다. 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달리기는 지겹고 따분하고 힘들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그의 말에 따르면 “선을 넘는 데” 성공했다. 달리기가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편안하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거의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클라크는 자신이 조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될 거라고는 평생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순간의 힘>, p.182

조깅의 매력에 빠졌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조깅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던 클라크는 소파에서 뒹굴거리는 게으름뱅이들이 5킬로미터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5킬로미터 달리기‘ 목표는 아주 매력적이었다. 거리는 짧지만 공식 마라톤이고, ‘건강한 성인이라면 5km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또 프로그램은 어떠한가! 5킬로미터를 한 번에 뛰는 건 어려워 보이지만 60초 뛰는 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되돌아보면 이것은 완벽한 목표 설정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8주 차에 접어든 나는 5km를 쉬지 않고 다섯 번째 완주했다. 나와 함께 5km 마라톤에 도전한 두 명의 동료들은 약 2달이 넘는 기간 동안 놀랍도록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우리는 어떻게 성공했을까?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책, <완벽한 공부법>에 나온 내용으로 설명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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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실현 가능한 목표

목표가 너무 거대하고 도전적이면 사람들은 쉽게 포기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위대한 꿈을 꾸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완벽한 공부법>에서는 위험하고 대담한 목표를 가지되 그 목표를 분해해야 한다고 말하며 ‘SMART 목표’를 제시한다.


-SMART 목표-

구체적이고 (specific), 측정 가능하며 (measurable),

성취할 수 있고 (attainable),

현실적이며 (realistic), 시간 계획 (timeline)이 가능한 목표


다시 말하면 장기 목표를 실현 가능한 목표로 세분화해보고 오늘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만들어 보라는 것이다. 왜 실현 가능해야 하는가? 기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그렇다면 기대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작은 성공’이었다.


앞서 언급했던 클라크가 개발한 ‘소파에서 5K로’라는 프로그램은 9주일 간 매주 3번의 조깅을 한다. 첫 주에는 총 20분에 걸쳐 60초 뛰고 90초 걷는 운동을 반복하는데, 이것은 나에게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하며, 성취할 수 있고, 현실적이며, 시간 계획이 가능한 목표였다. 5km는 나에게 너무 큰 목표였지만, 하루하루의 목표만 해내자는 마음으로 버텼고, 하루하루의 작은 성공은 계속 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진 일들도 실현 가능한 목표로 세분화하여 하나씩 해 나간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완벽한 공부법>, p.136


2. 완벽한 환경설정

첫 주에는 1분 달리기도 힘들었다. 1주 3일 차, 90초 달리기는 달리다 쉬기를 반복했음에도 불구하고 10분 만에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운동장 구석에 앉아서 쉬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내 머릿속은 회의와 부정으로 가득했다'내가 과연 5킬로미터 달리기를 할 수 있을까?' ㅠㅠ 

나는 스스로를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실제 내 마음속은 고정형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따라잡기 힘들다고 믿는다. ‘난 재능이 없어.’ 라며 회피하고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며 열등의식을 느끼거나 성공한 사람의 재능을 찬양한다

(*고정형 사고방식: 모든 사람은 타고난 대로 고정된다고 생각하는 것/ *성장형 사고방식: 지능과 성격은 변하며 노력만 한다면 모든 사람은 변한다고 믿는 것)

운동에는 소질이 없으며앞으로도 잘 달릴 가능성은 없다고 믿어왔던 내가 그럼에도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완벽한 환경설정 때문이었다. 달리는 것이 힘들다는 난관에 부딪히기도 전에 이미 1) 4월 13일 5km 마라톤 대회에 등록을 했고, 2) '체인지 그라운드' 구독자들에게 우리가 5km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했다고 선포했다. 3) 함께 달리기로 한 동료가 있었고, 4) 매주 달리는 모습을 찍어서 체인지 그라운드 유튜브에 영상을 올려야 했다. 

'우리는 할 수 있다!'

내가 싫든 말든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팀장으로서 그리고 내가 하자고 일을 벌인 장본인으로서 이 프로젝트는 반드시 '잘' 해내야만 했다. 첫 주의 90초가 2주 차에는 3분으로, 3주차에는 5분으로 늘어났다. 달리던 매일이 도전이었다그때마다 내 등을 떠밀었던 것은 이런 환경설정이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어느 정도의 임계점 돌파가 필요하다. 초반에 좀 힘들지만, 어느 정도 수준만 올라서면 그 일에 능숙해지고 더 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속도가 좀 더뎌도 최고까지 갈 가능성은 충분하다. 재능 결정론에 빠져 있다면 초반의 어려움을 넘지 못하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 <완벽한 공부법> 중에서


3. 구체적인 피드백 (+메타인지)

피드백을 통해 현재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알고 있어야 더 명확한 계획과 실행이 가능하며 효과적인 전략도 다시 세울 수 있다. 즉, 의식적인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빡독' 행사를 통해 알게 된 마라토너 분을 섭외해서 코치님으로 모셨다. 훈련일지를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았으며, 어느 일요일에는 함께 모여 달리기 연습을 하며 자세 교정도 받았다. (13분 달리기가 한계 였던 나는 이 날 처음으로 5km를 달렸으며 45분 연속으로 달렸다=나의 임계점 돌파의 순간)

고유승님의 구체적인 피드백


코치님의 피드백뿐 아니라 달릴 때 기록하는 앱을 통해 나의 달리는 속도를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 나의 목표는 5km를 30분 내에 완주하는 것이었으나, 나의 기록을 보면 그 목표가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 30분 내에 완주하려면 평균 페이스가 6분/km 이내여야 하는데, 지금 나의 최고 속도는 7분/km, 평균 페이스가 7분 30초다. (운동선수들이 1분, 1초를 단축하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의 능력에 대한 메타인지를 상승시키면서 목표는 37분으로 잡을 수 있었다. (현재 38분 47초)

(조정경기장 둘레가 딱 5km- 직선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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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했던 마라톤 대회는 앞으로 4일 남았다. 지금 이 시점에서 <완벽한 공부법>을 다시 읽어보니 모든 문장들이 몸으로 이해가 된다. '완벽한 공부법'은 우리 삶 모든 부분에서 적용할 수 있다. 

물론 제대로 된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아인슈타인, 마이클 조던, 메시, 우사인 볼트처럼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이번 <노력> 장을 읽은 독자라면 훌륭한 방법론으로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구나 전문가, 프로의 반열에는 오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것이다. -<완벽한 공부법> 211p


달리는 매 킬로미터가 험난하지만, 그래도 2달이 넘는 이 과정을 통해서 5km 완주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실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정직한 교훈을 얻었다. 

내가 5km 마라톤 완주에 성공한 데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지 클라크를 보고 내가 뛰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달리는 것이 두렵던 누군가가 우리를 보고 달릴 수 있기를... 내가 가장 못 하던 분야에 도전장을 내민 것 처럼, 누군가가 미숙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참고로 위에 하이라이트 한 '임계점'의 순간만 넘는다면 도전은 갑자기 훨씬 쉬워지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완벽한 공부법> 핵심 문장-

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꼼수는 없다.

제대로 된 노력은 결코 당신을 배반하지 않는다.

(https://bit.ly/2Iab2RW)

Posted by kimberly
공부하는 엄마2019. 2. 20. 15:25

자꾸 일을 벌리는 나에게 엄마가 묻는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그런데 그건 나도 궁금했다. 아이들을 재우느라 침대에 누웠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다보면 이런 생각은 꼭 든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왜' 에 대한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매번 동기를 생각해 보곤 했는데, 요즘 들어서 명료해진 것 같다. 내가 경험했던 몇 가지 일들을 돌아보며 설명을 해보려고 한다. 왜 사서 고생을 해야하는지.


무슨 일이었든지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패턴은 항상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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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은 자발적이다.

작년에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두 아이들의 어린이집 재능기부 수업을 했다.

재능기부 수업이란, 학부모가 아이의 반 선생님이 되서 30분~1시간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물론 의무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세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역량 안에서 최대한 공평하게 해주겠다고 결심했고, 이미 큰 아이의 재능기부 수업은 모두 다 참여했기 때문에 동생들도 당연하게 신청을 했다. 


2. 스트레스를 받으며 준비를 한다. 

신청한 날짜가 가까워지면서 압박을 받는다. 안 그래도 바쁜데... 하지만 이왕에 하기로 한 이상 대충은 없다. 수빈이는 낙엽에 대해서 수업을 했는데, 새벽 2시에 색종이를 자르며 생각한다. "내가 왜 이걸 한다고 했지??" ㅠㅠ 


(이렇게 종이에 구멍을내서 불어불어펜으로 물감을 칠하하면 나만의 단풍잎이 완성된다)



3. 어쨌든 해낸다.

항상 아이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다. 조그마한 아이들의 눈동자가 다 나를 주목하고 있는 그 느낌은 꽤 생동감이 있다. 이게 뭐라고 긴장도 되지만, 서툴러도 괜찮다. (심지어 이제 8번째다보니 꽤 잘 하기까지 한다. ㅋㅋ) 가장 좋은 것은 내 아이의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수빈이 어깨에 들어간 뽕이 말하는 것 같다. '저 사람이 우리 엄마야!!'



4. 뿌듯해한다. "역시 하기를 잘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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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걸 하고 있을까?'에서 '역시 하기를 잘했어!'로. 이 패턴은 계속 반복된다.


작년에는 서울시에서 공모한 UCC에 지원을 했다. 

이 공모전의 주제는 "아이와 나, 가정과 직장이 행복한 서울" 이었는데, 우연히 발견한 이 주제에 대해 나보다 더 잘 만들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고, 내가 꼭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강한 동기가 있더라도... 이 UCC를 만들기 위해 휴가를 내고, 휴가 날에도 컴퓨터 앞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보며 내 반대쪽 머릿 속에서는 이런 생각이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나는 왜 이걸 하고 있을까?"


최근 읽은 책, <순간의 힘>에서는 이 반대편 본능에 대해서 설명한다.

우리의 반대쪽 본능은 어떤 순간을 축소하거나 보잘것없게 만들고 싶어 한다. 감각적 매력을 박탈해버리거나 판돈을 낮추는 것이다. 

(중략)

사람들의 열정과 활력을 좀먹는 '적당히'를 조심하라. '적당히'의 위험성을 경계하지 않으면 절정의 순간이 송두리째 산산조각 날 수 있다.

과속방지턱은 적당하다. 에베레스트산은 적당하지 않다.


-<순간의 힘> (칩히스,댄히스)


대충 만들거면 시작하지 않았다. 만들면서 이미 상을 받은 것 처럼 만들었고, 결국 장려상과 상금 50만원을 받았다. 


<2018 "아이와 나, 가정과 직장이 행복한 서울">


시상식이 회사 회의날과 겹쳐서 부모님이 대신 참석해 주셨는데, 부모님은 이 날 좋은 시간을 보내셨다고 했다. 시청 나들이도 하시고 데이트도 하셨다고. 부모님께 특별한 순간을 선물했다는 것만 생각해도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역시 하길 잘 했다.



이 반복되는 경험의 하이라이트는 작년 교회에서 있었던 크리스마스 연례 행사였다. 


우리 교회에서는 조별 장기자랑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독려하는데, 우리 모임에서 내가 무심코 냈던 아이디어가 바로 채택되었고, 자연스럽게 우리 그룹 발표를 내가 맡아서 하게 되었다. 주중에는 다들 바빴고, 주일에 모이면 어떻게 하냐며 고민만 하고 헤어졌다. 결국 아이디어를 낸 내가 책임을 져야 했다. 


행사 전 날 금요일.. 이미 밤 12시가 넘은 시간, 한 주 업무를 마무리 하고 무거운 눈꺼풀을 부릅뜨며 행사 영상을 편집하면서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미리 약속을 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무 피곤했다ㅠ) 나 혼자 하고 끝내는 개인적인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의상과 준비물을 준비하는 것도 우리 부부 담당이었는데, 급기야 등장인물인 모세가 쓸 '지팡이'를 구하는 일로 남편이랑 말다툼도 했다.

빨리 지팡이를 구해야 영상에 넣을 소스를 찍고 편집을 할 수 있는데, 산에 가서 쉽게 구해올 수 있다는 남편의 호언장담과는 다르게 남편은 행사 당일까지도 산에가서 나무 막대기를 구해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잔머리를 써서 집에 안 쓰는 커텐 봉을 찾아냈고, 당일 아침 집 앞에서 급하게 영상을 찍었다. 


당일 조별 모여 연습과 촬영, 편집+리허설까지 마쳤는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우리 조는 압도적인 1등을 했고, 우리 조는 특별한 순간을 함께 경험할 수 있었다. 교회 '탤런트 쇼'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말한다.

"하길 잘 했다고."



책, <순간의 힘>에서는 이런 순간을 "가끔 아주 감동적인" 순간들 이라고 표현한다.


'가끔 아주 감동적'인 순간들은 단순히 운에 맡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순간들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계획하고 투자해야 한다. 그것들은 기획하고 설계된 절정의 순간이며,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우리에게 남는 것은 대체로 잊어버리기 쉬운 것들 뿐이다.

(중략)

절정을 창조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반드시 해야할 일이나 의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의 힘>(칩히스,댄히스)


결정적인 순간은 그냥 자연스럽게 우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사서 고생을 하면서 나는 특별한 순간들을 만들었고, 그 순간들을 통해 작은 성공과 성취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성공의 경험들은 지금의 나- 무엇이든 하면 될 거라는- 자신감이 넘치는 나를 만들었다. 

이런 순간의 경험이 나 혼자하는 개인의 경험이 아닌 단체의 경험일 때에는 (더 어렵지만) 더 폭발적이다. 


최근 나는 회사 동료 둘과 특별한 순간을 계획했다. 이 순간이 지금껏 언급한 경험들과 완전히 다른데, 그 이유는 8주 간의 시간과 의식적인 노력이 들고,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순간은 5km 마라톤에 참가하여 결승점을 끊는 순간이다.


나처럼 움직이는 걸 싫어하고 운동과 거리가 먼 사람에게는 숨이 끊어질 것처럼 힘든 순간이 있겠지만, 나에겐 확실한 믿음과 (육아와 일을 둘다 잘하고자 하는) 강렬한 동기가 있다.


결국 일단 하면, 무조건 좋을 것이다.


Posted by kimberly
공부하는 엄마2019. 1. 16. 12:12

나는 홀러코스트 영화를 좋아한다. 잔인하고 무섭지만 그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의 감정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 <쉰들러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사울의 아들>, <리멤버>, <블랙북>, <버스터즈: 거친녀석들> ... 그 시대를 담아낸 훌륭한 영화들을 보며 짐작해보긴 했지만, 영화이기 때문에 권선징악 혹은 기승전결에 맞춰 아름답게 포장된 이 이야기들 보다 더 날 것 그대로인 인간 감정을 알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유대인이었던 정신과 의사가 이 미친 상황을 버텨내며 깨달은 점을 집필한 이 책, <죽음의 수용소>는 최고의 책이었다. 이 책의 저자인 빅터프랭클 박사도 말한다. 자신이 정신과 의사로서 직업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감정 상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그 때의 일을 기억해내지도 못했을 거라고.

 

책을 읽으면서 가장 깊이 공감한 것은 인간의 자유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유롭게 사는 인생을 떠올리면 아무런 규제 없이 내 마음대로 하고 사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함께 사는 세상에서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나에겐 자유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된다면, 그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막연한 자유의 정의에 대한 고민을 프랭클 박사는 자유의 최소’ 범위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나의 고민을 간단하게 풀어주었다.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는 있다는 것이다.

 

자유란?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

 

실제로 수용소에 남아있던 사람들에게는 갇혀 있어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는 인생의 진정한 기회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그런데, 프랭클 박사는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그런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들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中

 

주어진 상황에 대해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진정한 자유의 핵심이었다.

 

그럼 이렇게 자신의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은 어떤 특징이 있었을까?

 

프랭클 박사는 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어떤 가치를 붙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 가치의 핵심은 바로 삶의 의미.

 

체인지그라운드 영상 중에 전기사고로 눈, , 입이 다 녹아 얼굴이 사라진 남성이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사고에도 이 남성은 자신이 살아야 할 강력한 한 가지 이유를 붙들고 있었다.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딸을 위해 17차례나 얼굴이식수술을 받았고, 그는 사고 전 보다 현재의 삶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 남성의 삶이 우리에게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재확인 시켜주는 것 같다.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각자가 스스로 알아서 이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며,

그와 동시에 요구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한다.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계속 성숙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죽음의 수용소> 중에서

 

삶의 자유에 대한 정의는 삶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시련을 감당하고 책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삶의 태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사람이 일단 의미를 찾는데 성공하면,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에 대한 책임도 감내할 수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인생의 의미를 찾는 일은 자연스럽게 시련을 감당하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시련을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대인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그 곳만 나오면 행복할 것 같았지만, 마침내 자유가 실현되었을 때, 모든 것이 스스로 꿈꾸어 오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 때 사람들이 느꼈던 것은? 절망감이었다.

몇 년 동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시련과 고난의 절대적인 한계까지 가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하게 된 것이다.

 

프랭클 박사가 이야기하는 것도 이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프랭클은 수용소에서 탈출하느냐 마느냐와 같은 우연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는 삶이라면 그건 전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라고 말이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라는 것은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어떤 시험의 단계를 지나면 행복이 찾아올 것 같지만 사실 삶에서 시련은 끝이 없다. 수능만 보면, 대학만 붙으면, 취업만 하면, 결혼만 하면, 집만 사면... 각각의 순간적인 성취에 초첨을 맞춘다면 그 유뮤에 따라서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 되었다는 것과 같다.

 

두 번째, 시련은 시련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어려운 상황 속에는 반드시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있다.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하고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진다면 (의미를 찾고 나의 태도를 결정한다면) 그 전의 삶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거라고 확신한다.

내가 세 아이들을 키우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말이다.

 

프랭클 박사는 이후 정신과 의사로 일하면서 크고 작은 고통으로 힘들어 하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자살하지 않습니까?”

환자들이 어렵게 이유를 이야기하면, 프랭클 박사는 그 이유를 묶어서 하나의 확고한 형태를 갖춘 의미와 책임을 만들어 내어 치료를 하는데, 이 방법이 아주 효과적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사람이 일단 의미를 찾는데 성공하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주기 때문이다.

 

내가 세 아들이 있다고 하면사람들은 자주 어떻게 셋이나 낳아서 키웠냐고 묻는다그것은 고통에 주목했을 때의 시선이다아이들을 양육하는 의미에 집중하면육아의 어려움은 감당할 만한 것으로책임은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원망하고 비난할 것인가? 불평하고 후회할 것인가?

아니면 운명에 대한 나의 태도를 바꿀 것인가.

 

결국, 고통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행복을 결정한다. 

그러면 나는 나의 자유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가?


그 태도는 오로지 나만 결정할 수 있다그러면 상황은 창조적으로 변할 것이다. 

Posted by kimberly
공부하는 엄마2018. 11. 9. 14:20

셋째를 낳은 지 3~5개월 즈음이었던 것 같다.

셋째 외에도 나에겐 2살, 4살 아들이 있었다. 이 양보심이 없던 어린 아가들은 끊임없이 싸웠고,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 나는 엉덩이를 바닥에 붙일 틈 없이 바빴다. 나는 하루 하루를 버티는 심정으로 밤에 눈을 감았다.

"내일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지?"


그 당시 내가 기댈 사람은 남편과 엄마밖에 없었는데, 두 사람은 항상 바빴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우리 집에 왔다가 가시면서 했던 충격적인 한 마디.


"니 인생 니가 살아야지."


분명 엄마가 나에게 한 말은 "너 혼자 알아서 해" 가 아니라 "... 그러니 힘내서 열심히 살아라." 였지만,

그 말을 들었던 순간, 나는 영원히 나를 돌봐줄 것 같았던 엄마에게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딸이 이렇게 힘든데...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지? 


엄마가 문을 닫고 나가신 뒤로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리고 계속 그 말을 곱씹어 보았다. 


...가슴 아팠지만, 맞는 말이었다.

엄마도 환갑이 넘으신 이 날까지 고생하시면서 살았는데 언제까지 내 아이들 봐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진 이 삶의 무게를 누구한테 지울 수가 없겠구나.'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살아내야 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엄마한테서 독립을 하기로.

막내가 3살에 나는 친정집을 근처를 떠나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하남으로 이사를 왔다. 물론 지금 내가 일을 하고 있으니 일주일에 한 번씩 도와주시러 오시긴 하지만, 가끔 오시지 못 하시더라도 마음의 부담이 별로 없다. 


새삼 이 기억이 되살아 난 건, 이 책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다.


"고통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中


나는 내 경험을 생각하며 '고통은 나의 몫'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를 하며 읽었다. 그런데 이 챕터에서 전하는 건 그 보다 더 넓은 이야기를 한다.


고통을 바라볼 때,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을 분리시켜서 해석한 것인데,

나의 고통이라면 성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남의 고통일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대할 때, "내가 겪어 봐서 잘 알아." 라는 말은 교만이라는 것이다. 상황과 성격 등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의 고통을 내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과 세 쪽으로 구성된 짧은 이야기 속에서, 시점을 바꿈으로써 얻는 태도의 차이를 보며 생각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각의 깊이가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주 많은 부분에서 아직도 한참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이 책은 여러가지 소재에 대해서 비교적 짧은 구성을 이룬다. 이를 두고 내 남편은 가벼운 에세이가 아니냐고 이야기 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이 책을 소개한다면 누구나 관심있어할 만한 소재에 관해서 '엑기스'만 담은 책이라고 말할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그래서 쉽게 넘어가는 이야기, 하지만 모두가 고민해봐야할 이야기로 가득하다.


특히,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책에 나온 50챕터를 모두 영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뼈아대> 유튜브 채널에는 책에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더욱 깊이있고 솔직하게 풀어낸 영상들이 있고, 이 영상들을 통해서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들면, 이런 것이다.


1. <진짜 '사짜' 산업혁명인가?> 챕터에서는 우리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극변의 시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을 설명해 주는데, 정말 꼭 추천해주고 싶다. (이런 비밀스럽고 핵심적인 내용을 다 이야기 해주다니!!)

물론 이런 이야기도 준비된 사람만 응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학교가기가 싫다면> 챕터에서는 명문대 바라보기식 학업성취가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온라인으로 배움의 길이 너무나 많고, 이것만 잘 활용해도 전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머지 않은 미래에 대학 시스템은 무너질 것이라고. (하지만 어떤 맥락에서는 대학이 필요 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내 아이가 (혹은 내가) 학교에 안 간다면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뼈아대에서는 이 다섯가지 능력을 갖추라고 조언한다.

1. 글을 제대로 읽고 논리적으로 글쓰기 2. 확률 및 통계적 사고 능력 3. 리더십과 팔로우십에 대한 이해 4. 언어 하나는 잘하기 5. 능력보다 조금 높은 목표에 끊임없이 도전하기



약 2년 전에 출간했어도 아직도 베스트셀러인 <완벽한 공부법> 의 내용을 다룬 완공 강의는 이 뼈아대 채널에 방점을 찍는다.


<완공 2강: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


1년이 넘게 두 분을 가까이서 지켜본 나로서는 콘텐츠에 대해서는 정말 보증하지만, 개인의 추천이 미덥지 않다면, 사람들의 댓글이 도움이 될 수도.


(매일 이런 댓글들이 수십 개씩 올라온다...)


(아침마다 티비로 뼈아대를 본다는 이 분... 엄지 척!!)


"지식이 어떻게 변하는지, 어떻게 확산되는지,

사람은 어떻게 새로운 지식에 적응하는지 등이 모두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즉 지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면 세계를 이해하기가 더 쉬워진다.

나아가 이런 사실을 알면 각자가 갖고 있는 지식 속의 결함을 파악하여

이러한 결함에 대처할 계획을 세우는 일도 가능해진다.

-<지식의 반감기> 9p.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도록 '뼈아대' 채널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뼈아대]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뼈아대 [체인지그라운드]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체인지그라운드



Posted by kimberly
공부하는 엄마2018. 5. 19. 23:54

오늘 체인지그라운드에서 '빡독' 행사를 하고 왔다. 


'빡독' (빡세게 독서하자!)

이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하루종일 책을 읽는다.


'빡독'은 '빡세게 독서하자'라는 의미로,

사람들이 하루종일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설정을 해주는 행사다. 대교 사회공헌실에서 후원을 해주고, 체인지그라운드가 진행을 맡아서 한다.


관련 영상을 제작해서 유튜브와 페이스북 페이지에 컨텐츠를 올리고, 많은 사람들이 책을 어서 문해력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 "너무나 판타스틱하게 좋은" 취지의 행사다. (심지어 무료에 점심&저녁도 준다)


오늘 행사 마지막에 신박사님이 짧은 강연을 해주시기로 했는데, 사정이 있어서 못 오셨다. 마무리가 조금 아쉽게 끝나게 되었다. 어쩄든 원래 강연이 예정되었던 것이 아니고, 행사가 전반적으로 모두에게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집에 와서 자려고 누우니 아쉬움이 강하다.

'그 때 내가 나가서 내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했으면 어땠을까?' 

 

10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영화 자료담당 스태프로 일할 때였다.

영화제 기간의 내 업무 중 하나는 외국인 감독님을 본인 영화의 상영 후에 있는 GV(감독과의 대화) 시간으로 인솔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한 감독님이 자신의 영화에 대한 반응을 보러 왔는데, 갑작스럽게 GV를 하면 안되겠냐고 연락이 왔다. 예정에 없던 것이라 배정된 통역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안 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 편으로는 '내가 통역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말할 자신이 없었고, 사람들 앞에서 나서기에 용기가 부족했다. 


하지만 내가 나섰다면?

영화제에서 일했던 4개월의 기간 중 가장 빛나는 하루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 감독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을 수도 있다. 영화제 기간, GV시간이 있는 상영작들은 굉장히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관람객들도 감독과의 만남을 반겼을 것이다.

내 부족한 영어실력은 갑작스럽게 GV를 하게 되어 통역을 구하지 못했다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했으면 되었을 일이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모두에게 좋았을 일이 나의 용기 부족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가 되었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내가 체인지그라운드를 만나서 변화한 이야기, 왜 자기계발을 해야하는 지에 대한 동기부여, 왜 (특히 엄마가)공부를 해야하는지... 할 이야기는 많았다. 사전에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았지만, 막연한 자신감은 있었다.


그 막연한 자신감은 몇 주 전에 생겼는데, 2년 만에 한 지인을 만나서 한 아주 특별한 경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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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소모적으로 일하는 것 같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하고 싶다는 상대방의 고민을 듣고는 내가 그 앞에서 일장연설(?)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닌데, 나도 모르게 방언처럼 터졌다. ㅋㅋㅋ


멍~ 하니 듣고 있는 상대방을 보면서,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이야기를 너무 깊고 어렵게 꺼내서

(나는 <컨텐츠의 미래>에 나오는 30년 전의 미국의 화재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다ㅋㅋㅋ)

'어떻게 이걸 수습해야 하나' 고민하며 간신히 이야기의 마무리를 지을 때쯤, 지인이 말했다.


소름이 돋았다고. 자기 닭살을 보라고.

이런 이야기를 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자신의 멘토가 되어주면 안 되냐고. (나보다 2살? 많은 언니었다)

우리 매주 만나면 안되냐고. 


정말 그 분이 저렇게 말했다.


나는 너무나 신기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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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했든 안 했든 부산영화제의 그 날 처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과는 좋았으리라고 확신한다. 용기가 있었다면 모두가 좋았을 시간이었다. 


아쉬움 속에 한편으로는 잘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할 여지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일은 최소한 나에게 이런 생각을 남기게 해 주었다. 


언제든 총알이 장전이 된 것처럼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빡독 관련 영상 두가지*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https://www.youtube.com/watch?v=9Kcokf7kt84

<빡세게 독서하자, '빡독' 행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H4VV5SEsL6M




Posted by kimberly
공부하는 엄마2018. 4. 30. 16:32

체인지그라운드에 입사한 지 어느새 8개월이 되었다. 


처음 신박사님이 합격 소식을 전하는 전화가 왔을 때, 펄쩍펄쩍 뛰며 좋아했던 그 때의 나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8개월이 아니라 최소 5년은 지난 것 같다. 비유를 하자면, 지난 8개월은 번데기를 벗고 탈피하는 과정이었다. 8개월 동안 나는 나를 깨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노력의 방법은 이런 것이다.

작업시간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며 익혔다. 시간을 줄인 뒤 남은 시간은 또 다른 일을 찾아서 했다. 밤낮과 주말 없이 일했고, 그래도 시간이 부족해서 잠을 줄였다. 동료 피디님은 나더러 AI가 아니냐고 했을 정도니... 그 결과 나는 하루에 영상을 하나씩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기타 업무 + 프리랜서로 하는 아르바이트 일까지)


그런 인텐스한 8개월을 지나고 나서의 이 느낌은 나를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도 잘 모를 것이다.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는 체인지그라운드 식구들, 그것도 아는 사람들만 안다. 힘들어 보이지만 나는 누구보다 즐겁게 회사생활을 하고 있고, 그런 나에게 회사는 불과 8개월 만에 연봉을 3번이나 인상해 주었다.

(세상에.. 요즘 이런 회사 있나요? ㅠ.ㅠ)


요렇게~ 디테일하게 생일을 축하해준 소중한 체인지그라운드 식구들!!


일이 이토록 즐겁지만, 내 인생에서 일이 전부는 아니었다. 나는 돌봐야 할 어린 삼형제가 있었으니... 


내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냐고"


육아와 일, 나는 매일 이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분명 힘들어 보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가 다른 하나의 독(毒)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내린 확실한 명제 두가지.

1. 내가 일을 안 한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더 잘 해주는 것은 아니다.

2. 아이들이 없다면 나는 일 중독자가 되어 낮과 밤, 규칙적인 삶의 패턴이 무너져 버릴 것이다. 


사실 나에게 있어서 이 둘은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라는 것.


일을 하면서 나를 찾을 수 있고, 육아를 통해 나를 버릴 수 있다! 


하지만 분명 내가 쓸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나는 우선순위를 매길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늘 나의 고민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다시 말하면, 모두 잘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무엇을 포기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두가지 해답을 찾았고, 그 해답은 책임감과 죄책감에서 나를 구원해주었다.

그 두 가지는 이것이다. 


포기(레버리지)와 집중(몰입)


내가 찾은 이 두 키워드가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욕심 많은(두 토끼 다 놓치고 싶지 않은) 워킹맘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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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버리지를 활용한다. (일명, 지렛대 효과)

내가 잘 못하는 일은 잘 하는 다른 사람에게 위임한다. 내가 모든 것을 다 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우선순위를 만들어서 과감히 포기할 것은 포기한다. 


1) 일 할 시간 확보를 위한 레버리지 : 부모님의 도움 + 반찬집

나의 경우,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을 데려오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께 주 5일 중 3일을 부탁했다. 하루는 남편이 데리고 오고, 나머지 하루는 내가 출근했다가 돌아오면서 데리고 온다.

어머니는 청소도 도와주신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께는 용돈을 충분히 드린다)

반찬을 만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반찬집을 이용한다. (식성 상 배달음식은 시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고용할 돈이 없다면? 두산의 사장이자 <여자의 미래>의 저자인 신미남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자신은 단칸방에 살면서 아이들을 돌봐줄 이모님을 구했다고. 나의 미래에 과감히 투자하라고. 


2) 육아를 잘 하기 위한 레버리지 : 아빠의 적극적인 육아, 책 대여 서비스 <북친구>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한 나의 세 가지 핵심 키워드 세가지다. '독서'와 '스킨십'과 '아빠의 육아'.

(무엇을 레버리지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 후, 어떻게 레버리지 할 것인지 고민하면 쉽다)


아빠는 엄마가 따라할 수 없는 참신한 놀이방법으로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준다. 

동계올림픽 경기 재연의 현장

아빠의 봅슬레이 시범 (좌, 중)/ 삼형제의 팀추월 경기 (우)

이건 개구리 무슨 게임... (개구리 아니고 악어 게임이라고 함)


심지어 네 남자는 좁은 집 안에서 축구도 한다.... (이게 우리가 아파트에서 살지 않는 이유ㅋㅋ)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책을 30분~1시간 읽어 준다. 문제는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갈 시간이 없다는 사실... (그렇다고 모든 책을 다 사서 집에 진열해놓기는 남편도 나도 싫다) 그래서 <북친구>라는 책 대여 서비스를 찾았다.


<북친구>는 아이 당 일주일에 책을 네권씩 대여해주는 책 대여 프로그램인데, 아이의 연령에 따라 추천도서를 대여해준다. 좋은 점은 2가지다. 

첫째, 내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때, 나의 호불호에 따라서 책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수준에 따라 필요한 좋은 책을 추천해준다는 것. 둘째, 돈이 아까워서 미루지 않고 무조건 읽는다는 것! (어떨 때는 두 번 세 번 읽는다)


매 주 수요일, 내가 다 읽은 책을 문 앞에 걸어두면, 선생님이 새로운 책으로 교환해서 걸어두고 가신다


2. 몰입,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집중한다.

레버리지를 통해 최대한의 일 할 시간을 확보했다면, 주어진 시간에 집중하여 효율적으로 일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보자.


나는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1) 타이머를 이용해서 매 시간을 나누어 쓴다.

특히 집중해서 일을 끝내야 할 때는 핸드폰을 무음으로 바꾸고 모든 알람에 방해받지 않도록 환경설정을 해둔다. 타이머가 끝날 때에 비상전화가 와있지 않은지 확인만 한다. 


늘 나와 함께 일하는 쿠킹 타이머..


 2) 커피

 집중해서 일하기 한 시간 전 마시는 커피!


 3) 기록

 할 일을 미리 적어놓고 체크한다. 특히 나는 빨리,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끝내곤 하는데, 오래 걸리는 작업을 먼저 하는 경우 뒤에 할 일이 쌓여있다는 조급함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 피디님 한 분은 중요하고 큰 일을 먼저 처리해두고, 잡무를 뒤에 한다고 하는데 이건 자기 성향에 따라 정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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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와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엄마가 있다면 내가 조언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포기와 집중! 


사회가 원하는 이상적인 엄마상을 구현하지 못한다고 죄책감을 가지지 말자. 아이들에게 더 좋은 것을 못 해준다고 미안해 하지 말자. 삼시 세끼 챙겨주고, 짧지만 집중해서 놀아주고,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기만 해도 아이들은 잘 자란다고 믿는다. (아이를 서울대에 보내는 것이 과연 내 인생의 목표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사진은 지난 달, 모처럼의 휴가 날 비오는 민속촌에서... 

호탕하게 웃는 우리 막내 장군님ㅋㅋ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내가 이렇게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계신 부모님과, 나를 지지해주는 남편과, 아이들을 너무나 훌륭하게 돌봐주고 계신 무역센터 푸르니 어린이집과, 그리고 재택근무 100%를 시행하고 있는 체인지그라운드에 감사드린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가..!


Posted by kimberly
공부하는 엄마2018. 1. 4. 16:25

나는 내 삶이 너무나 만족스럽다. 복권당첨보다 어렵다는 덕업일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덕업일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이 일치할 때)


나는 올해로 37세가 된 평범한 가정의 주부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아들이 셋이 있고, 집에서 영상편집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정규직으로! 가끔 이렇게 내 소개를 하면 상대방은 나를 슈퍼맘이라고 추켜세운다. 



하지만, 나는 슈퍼맘이 아니다.

아이들한테 화도 잘 내고, 요리에도 영 솜씨도 없다. 청소도 귀찮아 하고, 덜렁거린다. 깔끔하고 꼼꼼한 우리 남편은 자기가 살림을 하면 더 잘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ㅋㅋ 남들과 다른 점은 어쩌다보니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찾았다는 것이다. 


이 글은 그 '어쩌다보니'에 관한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무난하면서도 나랑 잘 어울렸다. 크게 진로에 고민해본 적 없이 수능을 봤다. 나의 첫 수능은 '물수능'이었다. 난이도가 너무 낮아서 수능 점수가 변별력이 없었다. 지방에 있는 교대나 서울 소재 대학교 교육학과를 지원했지만, 면접에서 모두 고배를 마셨다. 


추가합격을 기다리던 중에 고등학교 베프가 재수학원을 등록하러 갈껀데, 같이 가달라고 했다. 엉겹결에 따라갔다가 엉겹결에 등록을 했다. 제비따라 강남 간 케이스... 어디든 추가합격만 되면 가려고 했는데, 아무 곳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고 ㅠ 어쩌다보니 이 친구랑 1년 동안 재수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재수를 하는 1년 동안 나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학원에 지하철을 타고 다녔는데, 모의고사 전 날에는 지하철에서 토를 뿜은 적도 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흥해야하는 압박감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나는 그 도피처로 학원 근처에 있는 영화관을 선택했고, 매 달 개봉하는 영화 중에 안 본 것이 없었다. (이건 부모님이 모르는 이야기..ㅋ) 그 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헀는데, 이 때 영상 제작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게 되었다.


작년 수능이 너무 쉬워서 그랬는지, 두 번째 수능은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그 와중에 나는 내가 제일 어려워했던 수학에서 3점짜리 3개를 찍어서 맞추는 기염을 토했다. 점수는 작년보다 30점 가량 낮아졌지만, 전체 성적은 상위 3% 안쪽으로 나쁘지 않았다. SKY는 못가도 이번엔 대학을 골라갈 수도 있었다.


집안에서 교육자가 생길 거라며 기대하던 아빠에게 나는 영상학과를 지원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날 저녁 풍경을 아직도 기억한다. 아빠는 베란다로 나가셔서 안 피던 담배를 뻑뻑 피셨다... 


가나다라 군 중에 영상학과를 제외한 나머지는 (또 교대를 지원했지만) 모두 떨어졌고, 나는 그렇게 (내 뜻대로어쩔 수없이ㅋㅋ) 성균관대학교 영상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영상학과를 졸업한 것이 내가 지금 영상편집 일을 하게 된 단초가 되었다. 


여기까지 이야기 중에서 나의 실력과 노력은 얼마나 작용했을까?!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수능의 난이도도, 첫 대학입시에서 모두 면접에서 떨어졌던 것도 (심지어 나와 점수가 같은 아이도 붙었는데...), 내가 재수학원에 등록하게 된 것도, 재수학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목에 큰 영화관이 있었던 것도, 수능에서 찍었던 수학 문제 3개를 모두 맞혔던 것도... 심지어 나를 재수학원으로 인도한 공부 잘하던 고등학교 친구와 베프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지금의 직장에 소속하게 된 것도!


내가 인지하고 있지 못한 순간에도 운은 항상 함께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부러워 할 수도 있다. 여자로서 집에서 일을 하면서 회사에서 인정받고, 아이들도 직접 돌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가. (물론 실제로도 그렇다)


하지만 누군가 자신의 딸을 나처럼 키우기 위해 내가 자라온 환경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해서 나처럼 될 확률은 거의 없다. 내가 어려서부터 '재택근무를 하는 영상편집자가 되어야지!' 하고 그 길을 차근차근 밟아 온 것이 아닌 것 처럼 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줘봤자 소용이 없다.


#출처: 네이버 뿜


책 <일취월장>의 1장에서는 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는

"성공에 있어 운은 가장 우선순위로 다루어져야 할 핵심적 요소"

라고 강조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껏 우리가 성공은 "노~~~력" 이라고 믿어왔던 것과 는 상반되는 주장이다. 모든 실패의 원인을 개인의 잘못이나 실수로 치부했다면 그것도 큰 잘못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특히 우리 부모는) 운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내 아이가 공부'' 잘하면 된다고,

공부'' 잘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믿는 엄청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일취월장>에서는 운과 동행하기 위해서 운의 영향력을 측정*하여 운을 받아들이고, 상황에 따라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운의 영향력을 측정하는 것이란?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이길 확률이 높을 때 (예: 야구) 운의 영향력이 크고, 비전문가가 전문가를 이길 확률이 거의 없을 때 (예: 테니스) 운의 영향력이 적다.

운의 영향력을 측정해보자. 운의 영향력이 적은 영역에서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된다. 


결국, 운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1. 우리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2. 계획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그것이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가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하지만, 미래가 불확실하니까 불안해서 더 정답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내 아이를 이 학원에 보내면 아이가 공부를 잘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도 크다.

시험 점수가 높으면 아이가 똑똑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도 크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하면 행복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확률도 크다.


물론, 그렇다고 노력이나 실력을 비하하거나 계획대로 살지 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더라도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내가 방송국 시험에서 떨어지고, 임신을 하고 나서도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던 것처럼.

일이 없었는 데도 사업자 등록을 하고 프리랜서로 일을 모색했던 것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했어도 일을 하나씩 맡아서 하면서 편집 실력을 키워왔던 것처럼...


내가 실력이 있으면 운은 반드시 나를 찾아온다.

실력이 없다면 엄청난 운이 찾아와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덕업일치를 이루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다.


"계획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자기 상황에서 최선을 다 하세요."


아... 얼마나 뻔한 조언인가...


하지만 알더라도, 매 순간 적용하기는 나도 어렵다.

특히 아이들 관련해서 나도 모르게 남의 기준을 따라가려고 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하니까. 


모를 때 할 수 있는 건, 공부하는 것이다.


좋은 습관이 반복되다보면 뿌리가 깊어지고 흔들리지 않게 될거라고 믿는다. 


* 조언이 필요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부모님이시라면 특히, #7장 미래, #8장 성장 편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하급수적 기술의 발달이 초래하고 있는 트랜드와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에 관한 이야기)

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