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커가면서 (6세 쯤?) 엄마들의 걱정은 아이들이 친구를 사귀는 데 정점을 찍는 것 같다.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친한지.. 혼자서만 놀지는 않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할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자기 아이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학교에 가서 애들을 살펴보고 괜찮은 아이들을 스캔한 뒤, 엄마들이 컨택하여 같이 운동을 시키거나 집에 초대를 해서 친해질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나는 아직 수민이 친구에 대한 고민은 없어서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는 정말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민이가 어린이집이나 친구 집에 놀러가서 노는 걸 보면, 대화보다는 뛰어다니며 깔깔대고 웃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또 어린이집이나 교회에 가면 친구들이 많고 또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도 있고..
그런데 어느 날 부터 수민이가 어린이집에서 집에 갈 때면 "동휘랑 수민이 집에 같이 가서 놀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안되고 다음에 같이가자~" 가 안 통할 때쯤.. 정말 동휘 엄마한테 물어보려고 했는데, 하원시간이 달라서 만날 수가 없었다. 선생님께 둘이 친하냐고 물어봤더니 어린이집에서는 특별히 둘이 같이 놀지는 않는다고 했다. 서로 다른 영역에 가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한다며... 그런데 왜 이렇게 동휘를 좋아하는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지난번에 어린이집 공개수업에서 스치듯 만난 동휘 엄마를 붙잡고 이야기 했다. 수민이가 동휘를 너무 좋아한다고.. 마침 그날 교회에서 여름성경학교를 헀는데, 지나가듯 '같이 갈래요?' 물었더니 흔쾌히 같이 가겠다고 했다. 엄마들은 집에 가고 아이들만 교회에서 물놀이를 하며 재밌게 놀았는데, 수민이를 데리러 가면서 동휘도 집에 데려다 줬다. 그러면서 알게된 동휘 엄마의 전화번호..
그 뒤로 수민아빠가 출근한 어느 토요일에는 애들을 데리고 키즈카페에 가고 있었는데, 동휘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수민이 뭐하냐며.. 그래서 동휘엄마랑 동휘도 키즈카페로 놀러왔다.
이 때 엄마랑 앉아서 이야기 할 시간이 있었는데, 헉... 나보다 10살이나 많으셨다. 뉴욕에서 의상을 공부하셨다고 하셨다고 해서 나도 뉴욕에 갔던 이야기를 하는데, 동휘엄마가 뉴욕에 있을 때는 IMF가 터지기도 전이라.. 내가 할렘에 갔다고 했더니 너무 위험하지 않냐고 걱정하셨다. 그 때는 차 타고 지나가면 흑인들이 총을 들고 싸우고 있기도 했다며.. ㅎ
한참 이야기하다가 수민이는 동휘네 집으로 가서 더 놀기로 하고 나는 수현이만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러고 지난 토요일에는 같이 전쟁기념관에 있는 브루미즈 놀이터에 같이 갔다.
남편과 애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면서 목적지를 물색중이었는데, 마침 동휘엄마한테 전화가 와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한 가지.. 이번에는 양쪽 다 아빠들도 같이 오는 거라 혹시 어색하지 않을까 싶었던 나의 걱정과 상관없이 남자들은 서로 한 마디도 안했다. 동휘 아버님은 동휘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으신 것 같아서.. 동휘 아빠라고 부르기가 조금 어색했다는 거.. 동휘 아버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
나이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도 아이들이 나이가 같으면 비슷한 고민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수민이가 동휘를 좋아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동휘 엄마는 동휘한테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는..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엄마였다는 사실..
예를 들어 놀이터에서 동휘가 안 가고 더 놀겠다고 하면 얼마나 놀꺼냐고 물어보고 허용해주고, 기다리고.. 그런데 또 더 놀겠다고 하면 또 허용해주고, 기다려 준다고 했다. 보통 두 번 정도 허용해주면 스스로 가겠다고 한다고 했다.
동휘엄마는 동휘의 자유의지를 기다려 주느라고 자고 싶지 않은 동휘를 기다리다 밤 1시에 잠이 들기도 한다고..
그 영향 때문인지 동휘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또래 아이들에게 보이는 폭력적인 성향이 없었다. 수민이랑 그런 성향이 비슷해서 수민이가 좋아하는 건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두 아이의 성향은 집에 갈 때가 되니 확실히 다르게 나타났다. 더 놀고 싶었던 두 아이들에게 이제 집에 갈 시간이라고 설득을 하는데, 둘 다 더 놀겠다고 하다가 결국 동휘는 설득당해서 스스로 가겠다고 결심을 했고, 수민이는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동휘보다 일찍 와서 6시간 동안이나 놀았던 수민이는 잠투정하느라 더 짜증을 낸 것 같기도 하다. 동휘는 가겠다고 아빠한테 안겨서 기다리는데, 수민이는 타이르고 또 기다려도 안 가겠다고 해서 내가 억지로 안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하도 발버둥을 쳐서 내려 놓았더니 바닥에 앉아 신발을 벗어 집어던지며 운다. 집이었으면 무관심하고 딴 일을 하면 알아서 울음을 그치고 "미안해요" 하며 안길텐데, 여기서 이러니 주위 사람들에게 완전 민폐였다. 결국 아빠가 억지로 안고 가는데, 아빠 목을 물어버림.. 덕분에 아빠 목에 피멍이 들었다. 왠만해서 화 안내는 아빠는 이때 속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고 고백했다.ㅋㅋ
(수민이는 차에 가서 음료수를 먹으며 진정이 됐고, 차가 출발하면서 바로 잠들었음)
동휘엄마는 이런 수민이를 보며 동휘가 말을 잘 듣고 온순한 게 그동안 자신이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아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이 성향 때문이 더 큰 같다고 했다.
나는 엄마의 양육방식과 아이의 성향 둘 다 아이의 성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양육방식이 수민이의 평상시에는 잘 통하지만 이렇게 떼를 쓸 때는 전혀 통하지 않았고, 이 사태를 겪으며 나는 수민이한테는 타이르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한편으로는 아이의 친구를 골라준다는 말이 왜 그런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지난 번에는 집에 가던 어린이집 친구 둘이 가던 길에 있던 우리 집으로 갑작스럽게 놀러왔는데, 티비 프로 이야기만 하던 엄마들과 뭔가 대화 단절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래서 어릴 때의 아이의 친구는 엄마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겠다 싶다. ㅋ
수민이는 아직도 동휘를 좋아한다. 아빠가 종이에 '박동휘 이수민'을 적어놓고 테이프로 붙여준 팔찌를 하고는 만족해하며 잠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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