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동기 결혼식날.. 금요일 오후 7시.
평일 저녁이라 애들 셋을 다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지난 결혼식날 친구들은 봤고.. 그래서 안 가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2주째 야근하던 남편이 휴가를 주겠다며... 금요일 저녁에 수민, 수현이를 인천 시댁에 데리고 가서 자고 온다고 했다. 남편도 집에 있으면 쉬지 못하니 시댁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결혼식에 가라고 이렇게 예비해주신건가 싶어서 어머니와, 엄마와 남편의 동의를 구해 두 형들은 인천으로 보내기로 하고, 남편이 퇴근할때까지 친정집에 맡기기로 했다.
그런데 이 날은 뭔가 초반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정신없이 애들 짐 챙기다가 수빈이 잠바를 집에 놓고 와서 친정집에 있던 후즐근한 형 옷 접어서 입혀서 나간 것 부터... 뭔가 내 옷도 결혼식 복장이 아니었다. ㅋ
배고파서 밥먹고, 아이들 챙기고 옷 입다가 늦게 출발 한 것, 교통카드를 안 가지고 나온 것,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눈 앞에서 놓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던 것... 수빈이는 품안에서 졸려서 보채고.. 이때 그냥 집에 갈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그냥 집에 갔어야 했다.
버스를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 타고 가는데, 한강대교가 꽉 막혔다. 겨우 한강대교를 빠져나가 지하철로 갈아타고 우여곡절 끝에 동대문 JW메리어트 호텔 도착.
분명 5층인데, 엘레베이터에 5층이 없다. 이 엘레베이터만 그런가? 싶어서 다른 엘레베이터도 타보고.. 헤매다가 호텔 카운터에 물어봤다.
"결혼식장 가려면 어떻게 가요?"
"지하로 가셔야 되요."
"5층인데요?"
"여기는 웨딩은 지하에서만 하는데요."
"아닌데.. 5층에서 한다고 했는데요."
".... 혹시... 반포 아니세요??"
헐!!!!!!! 홍엽이한테 바로 전화했다.
"혹시 거기 반포니?" (제발 아니라고 대답해달라는 심정으로.. )
동기 모임 페북에 이 댓글만 보고 간 나...
동대문 JW 에서 인증샷...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반포라는 말에 기운이 쏙 빠져서 호텔 밖을 나왔다. 도저히 지금 다시 반포로 갈 힘은 없없다... 평화시장 앞 인적이 드문 이 길, 이 밤에 난 여기서 뭘하고 있는가..
종로3가에 있는 회사에서 야근하고 있던 동생한테 전화했다.
일단 동생 사무실로 가기로 했는데, 한번 맨붕이 오니 지도를 봐도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가야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길치가 되어버린 느낌.
종로3가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되냐고 지나가던 사람들한테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른다고 했다. 미국에서 여행을 온 이 한국인 가족은 자기들도 그 방향으로 간다며 다시 핸드폰만 뚫어지게 보고 있던 나를 불러 태워줬다. (좋으신 분들 여행 잘 하고 돌아가셨기를..)
그리고 택시에서 내려 또 헤매다가 겨우 동생 사무실로 도착. 이 날 난 왜 이렇게 길치가 되었는지 나도 모르겠다.
원래 결혼식 끝나고 만나서 가기로 하긴 했었는데, 진짜 양수가 없었으면 나는 얼마나 우울했을까.. ㅋ 마침 그 날이 월급날이라고 아웃백에서 맛있는 저녁도 사줬다. (수빈이가 칭얼거려서 여유롭게 먹지는 못했지만)
뜬금없는 명동에서..
그런데 이 날 느낀 건,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거였다.
지난 번 친구들 모임에서 느꼈던 아쉬움, 그리움 그런 느낌과는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이 저녁시간에 이렇게 사람 많은 거리에 덩그라니 있으니 너무 어색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이들이랑 저녁 먹고 집에서 놀 시간인데.. 길 한 복판에서 방황하는 느낌.. ㅋ 쇼핑욕구도 별로 없고, 계속 아기 안고 다녔더니 어깨는 빠질 것 같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확실히 애 엄마 다 되었나보다. 아니면 너무 육아에 집중해서 다른 감각들이 상실되었나.. ㅋ
어쨌든 예전의 방황하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좋다.
이런 깨달음을 준 평일 저녁의 맨붕사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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