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2015. 10. 9. 23:50

9월 22일 화요일.


오늘은 친정집에 갈 계획이 없었는데, 하원한 수현이가 외할머니집에 가고 싶다고 떼를 쓴다. 친정집에 전화를 해보니 아빠가 차로 데리러 온다고 하신다. 수현,수빈이랑 차를 타고 아이들 외갓집으로 가는데, 딱 퇴근시간이라 길이 막혔다. 10분이면 가는 길을 30분이나 걸린 것 같다. 


수민이가 태권도에서 돌아올 시간이 가까워지자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돌아가는 길에도 이렇게 막히면 안되는데... 결국 친정집까지 아이들을 데려다 놓기를 포기하고 가던 길, 구청 앞에서 내렸다. 뒷 좌석에 어린 아들 둘을 안전벨트를 채워두고 입에 사탕을 하나씩 물려놓았다... 불안하긴 했지만, 아무도 없는 집 초인종을 누르고 당황할 수민이 걱정이 더 앞섰다. 


버스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엉금엉금 가는 버스보다 내가 뛰면 더 빠를 것 같아 차에서 내리자마자부터 뛰기시작했다. 수민이 생각에 정신없이 뛰어서 그런가? 오랜만에 뛰는데 그래도 몸이 가벼웠다. 두 정거장, 약 700미터를 쉴 틈없이 전력질주하다가 너무 숨이 차서 마지막에 한 정거장은 버스를 탔다. 


집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시간을 확인해보니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뒤를 돌아봤더니 처음 아빠 차에서 내렸을 때 탈 수 있었던 버스가 지나가네....?ㅋ

그렇게 달려서 얻은 건 신호등 한 번의 차이.

그리고 집 앞에서 태권도 차를 10분 이상 기다렸다.

미련하고 또 미련하다!!!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고, 운동을 안하다가 갑자기 뛰어서 그 후로 이틀동안 근육이 당겼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달렸나?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가는 걸까?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도 있었다. 같이 태권도에 다니는 우리 집 아래층에 사는 재원이형 집에 가 있으라고 관장님께 전화해서 부탁해도 됐었고, 재원이 형이 안 왔다면 다시 태권도장으로 가 있으라고 하고 내가 거기로 데리러 가면 됐었다.

부탁하는 게 어려워 나는 가장 쉬워보이는 미련한 방법을 택했다. 지나고 보니 이런 저런 후회가 남지만 그 때는 수민이 생각밖에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별 일아닌 에피소드로 넘어갔을 수도 있었던 이 날의 사건은 자괴감으로 며칠 동안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왜냐하면 내가 평소 이런 식의 실수를 자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 아니면, 혹은 이걸 안 했을 때 큰일날 것 같아 힘들게 하지만 지나고 되돌아보면 그렇게 안해도 됐을텐데 하는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눈 돌리는 곳 마다 일이 있고, 아이들 요구사항은 끝도 없고, 형 둘은 싸우고, 수빈이는 계속 일을 저지른다. 일을 하면서 아이들을 돌보느라 더욱 내 마음에 조바심이 가득한 것 같다. 


잠깐 멈춰 내가 무엇을 잊고 있는지 봐야겠다. 

너무 시간과 계획에 매여 살고 있니 않은지,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놓을 것인지... 


수민이 오는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그렇게 뛰었지만, 여유를 가지고 갔더라도 늦지 않았을 거고, 늦었다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는 사실. 어떻게든 나는 수민이와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정리하고 잠을 잤겠지... 

다 붙잡으려고 아둥바둥 살고 있지만, 사실 내가 얽매여있는 규칙들에서 해방된다고 해도 내가 사는 모습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는 진실의 발견이랄까. 


하지만 이렇게 깨달아도 내가 완전히 변화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렇게 적어두고 두고두고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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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