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빈이가 3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임신과 출산을 세 번 반복하면서 항상 한 명을 어린이집에 보내면 바로 출산을 했다. 그러다보니 거의 7년만에 얻는 자유다. 까마득하기만하던 이 시간이 드디어 오다니 믿기지 않는다.
엄마가 되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의 욕구는 아이들의 욕구와의 우선순위 다툼에서 항상 (무조건적으로) 뒤로 밀린다는 거다. 배변활동을 하는데도 여지가 없다.
항상 아이 셋의 눈치를 보다보니 언제부턴가 나의 소원은 <혼자 대자로 누워서 자기>, <혼자 천천히 샤워하기>, <내 마음대로 변기 물 내리기> 등이 되었다.
일이 너무 바쁠 때는 친정집에 맡기긴 했지만, 바쁜 엄마도 나 때문에 스케줄을 포기해야하고 또 엄마도 몸이 성치 않으니 눈치가 보였다. 365어린이집에 3시간씩 맡겼을 때는 이상하게 수빈이가 병이 걸렸다.
나 스스로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고, 눈치 안보고 당당하게 맡길수 있는 지금!
창살 없는 감옥에서 해방되는 느낌이다.
하고 싶었던 것 들이 너무 많았다.
혼자 영화도 보러가고, 시리던 이 치료, 갑상선 검진, 시간에 쫒기지 않고 여유롭게 미용실 가기, 친구들 만나기, 방해받지 않고 눈치 안보고 집중해서 일하기, 여유롭게 요리하기, 요리배우기, 그림 그리기, 한가하게 책 보기... 심지어 봉사활동도 하고 싶었다.
수빈이가 어린이집 적응기간 일주일이 끝나고 낮잠을 자기 시작한 3월 둘째 주에는 나도 마침 하고 있던 일이 끝났다.
우체국에 DVD를 납품하고 나서 첫 번째로 맞이한 공식적인 자유의 날. 나는 공식적으로 뭔가 특별하고 공식적인 활동을 하고싶었다.
그런데 아이들 데려다주고 온 11시 반부터 아이들 데리러 가는 3시반까지 점심도 안 먹고 잠을 잤고,
그 다음날도 12시부터 4시까지 잤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며칠을 잠병에 걸린 듯 잠을 잤고, 그 이후에는 뭔가 자잘한 일들이 계속 생겨서 바빴다.
진정한 자유는 4월이 넘어서 생겼는데, 사실 전에 하고 싶었던 여러가지 리스트들는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영화관에 혼자 영화보러 가는게 나에겐 어떤 자유의 상징이었는데, 영화관가는 것도 귀찮아졌다. 집에서 VOD로 영화도 볼 수 있는데 뭐하러? 하면서... (그렇다고 VOD로 보지도 않음ㅋ)
이런 상황에 봉사 활동이라니.. 말을 꺼낸 게 부끄럽다.
편한 상황이 되니 내 의지적으로 해야하는 일들이 귀찮아진 거다. 가야만했던 병원도 억지로 겨우겨우 가거나 안 가거나... 역시 뭔가 불가능한 상황에 처해야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나보다.
수빈이가 어린이집에 간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다.
자유가 될 거라고 생각했으나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6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6시간동안 쉬는 게 아니다. 집안 일과 해야할 기타 활동들은 계속 이어지고, 아이들은 독감걸려서 아프고 밤새 간호와 소아과를 들락날락... 남편은 늦게 들어오거나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달 전의 상황과 비교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다리에 매달리는 아이 없이 널널하게 혼자 설거지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낮잠 자는 아이가 꺨까봐 눈치보지 않고 변기 물을 내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
한 달 지났으니 이제 마냥 쉬려고 하는 것 보다 자기주도적인 일을 해야겠다.
일단 밀린 책부터 읽는 것부터...
시동을 걸어보자.
두 번의 외출- 코엑스 리빙페어와 엄마랑 윤중로 벚꽃구경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벼룩시장에서 얻은 것 (1) | 2016.10.07 |
---|---|
다섯번째 미사 방문 (0) | 2016.07.21 |
11월의 일상 (0) | 2015.12.11 |
아빠의 생신 (0) | 2015.12.08 |
어제의 교훈- 조바심 버리기 (0) | 2015.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