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태권도에서 다녀온 수민이가 울먹거렸다.
태권도에서 화,목요일에는 품새를 배우는데, 자기가 자꾸 틀려서 관장님한테 두 번이나 혼났다고... 비슷한 앞발차기와 옆발차기를 동작을 이어서 하다보니 자꾸 헷갈렸나보다.
다음 달에 국기원에 가서 심사를 받기로 한 그 아이들은 조금 더 엄격하게 지도하는 것 같았다.
울음을 참다가 집에 돌아와 나에게 안겨 슬프게 우는데 안쓰러웠다. 엄격하게 혼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더 그런 것 같다. 그런 수민이한테 뭐라고 해야할까? 잠시 고민했다. 두 가지 방향이 있다. 관장님한테 불평하는 방법과 아이한테 참아야 한다고 설명하는 방법.
이유 없이 혼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그래도 수민아, 혼나더라도 틀린 부분을 정확하게 고치고 아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래야 국기원에서 심사를 잘 통과하지~. 아직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배우면 되..."
이 이야기는 효과적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게 배워서 수민이가 이렇게 잘하게 됐잖아. 그래서 멋있다고 지유가 수민이 좋아하는 거 아니야? 요즘도 지유가 수민이 좋아해?" (어린이집에서 작년에 서로 좋아했던 친구... 친구들 사이에서 커플로 통했음)
방향을 바꿔서 이야기 했더니 수민이가 갑자기 실소를 터뜨렸다.
"남자 친구들이랑 노는게 재밌어서 나는 이제 별로 안 좋아졌는데, 예슬이가 그러는데 지유가 나중에 나랑 결혼한다고 했대. 난 싫은데."
이야기를 하면서 부끄러우면서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픽 웃는데 너무 귀엽다.
어쨌든 화제 전환이 된 것 같아 그 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갔다. 태권도를 배워서 더 멋있어진 수민이에 대해서.. ㅋㅋ 그랬더니 어린이집에서 체육 시간에 발차기를 하는데, 태권도를 안 배운 다른 친구들은 이렇게 한다며 흉내를 내며 웃는다. 원래 앞발차기는 이렇게 하는 거라며... 발차기 비교하는 모습을 보니 확실히 다르다. 잘 배웠네~~
그나저나 결혼은 왜 안 할꺼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엄마가 너무 좋아서 결혼을 안 할꺼라고 했다.
전에 결혼을 하면 엄마아빠랑 따로 사는 거라고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수민이는 울고 수현이는 토끼 눈이 되어 내 얼굴에 자기 얼굴을 들이대며 "엄마! 왜 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 거짓말이지~ 거짓말이지!?" 하며 물었었다. 나는 당황한 아이들이 웃겨서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더 장난치고 싶어서 "진짜야~ 지금 엄마도 결혼해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따로 살고, 아빠도 친할머니, 친할아버지랑 따로 살잖아~" 했는데, 특히 수민이에게는 그게 너무 충격적이었나 보다.
한참 지나서 어느 날은 잠자려고 누워있는데, 갑자기 수민이가 흐느껴 운다. 자기는 나중에 커서 엄마아빠랑 떨어져서 살기 싫다며... 그래서 그 때는 집을 지어서 결혼을 하더라도 층을 다르게 해서 다 같이 살기로 했는데...
이제는 층으로 나눠 사는 것도 싫으니까 아예 결혼을 안 하겠다고 혼자 결론을 지었나보다.
그럼 결혼해도 같은 집에서 그냥 같이 살자고 했더니, 수민이가 그런 이야기는 수현이랑 수빈이한테 하랜다. 자기는 결혼을 안 할꺼라며... ㅋㅋㅋ
독신주의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 확고해서 웃기고, 나중에 여자친구 생겨서 또 이런 이야기가 쏙 들어가겠지 싶어서 웃기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기록해 두기로...
그리고 혹시나, 그 생각이 부디 바뀌길 바란다. 설마...
강해보이고 싶어해도 수민이가 참 마음이 여리고 따뜻하다.
그나저나 평소에 한 아이와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없는데, 이 날은 동생들이 외갓집에 가 있어서 수민이랑 이정도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마음을 다독여 주는 일이 쉽지 않고, 시간이 걸리는데 평소 세 아이 모두 그것을 충분하게 채워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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