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반 전쯤, 일을 구했다.
프리랜서의 단점은 일이 항상 불규칙하다는 것이다
작년 연말과 올해 연초에는 너무 바빠서 막내가 어린이집에 가는 3월만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3월이 지나자 이상할 정도로 일이 없었다. 진행이 되다가도 cancel된 일이 세 건이나 되었다. 초단위 스케줄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는 뭔가 허송 세월을 보내는 것 같았다. 3월부터 9월까지 약 반 년, 뭔가 준비된 상태로 기다리는 일에 지쳐 언젠가부터 매일 책을 열심히 읽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은 뭔가 허전했다. 나는 일이 고팠다. 하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간절했다. I was "eager" to work!
7월부터 구직사이트를 기웃거리다가 본격적으로 지원을 해보았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내가 이 가격에? 그래도 해준다.. 내가 심심하니까...' 하면서 지원을 했는데도 연락이 안왔다... 왜지? 내가 너무 오만했었나. 내가 이력서에서부터 재택근무를 당당하게 희망하며 지원했나. 하지만 매일 아침, 아이들을 두고 어딘가로 출근할 수는 없다.
꾸준히 여러 사이트들을 지켜보다보니 회사들을 고르는 눈도 생겼다.
무조건 지원하기보다 나름 회사를 선별해서 지원하고 있었는데, 추석연휴 즈음,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온라인으로 유, 초등 영어 교육을 하는 곳이었는데, 내가 할 일은 (선생님이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는) 촬영된 영상을 편집해서 업로드하는 일이다. 내 수준의 영어로는 어렵지 않았고, 나도 자연스럽게 공부가 되는 데다 일단 한번 포맷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쉬울 것 같았다. 편집하면서 영상을 아이들에게도 보여주면 일석이조가 아닌가.
무엇보다 내가 재택근무를 희망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너무 쉽게 통과가 되었다는 것. 뭔가 나한테 너무나 적합했다.
일을 시작하게 된 이후로, 나의 스케줄은 그야말로 초단위가 되었다.
일+ 아이들+ 평소 내가 하던 일들+ 집안일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하모니를 이루어야 했다.
아주 심했던 날은 이런 식이다.
분당에 있는 사무실에 자료를 가지러 10시까지 출근하기로 한 날은 아이들 소풍날.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 가방을 싸놓고 친정엄마에게 아이들 등원을 부탁하고, 지하철을 2번을 갈아타며 콩나물시루같은 지하철을 아주 오랜만에 경험했다.
3시까지 일을 하고, 1시간 반 거리를 돌아와 수민이를 픽업해서 태권도장에 데려다 주고, (하필 이 날 차량운행하시는 사범님이 예비군훈련을 가심) 다시 동생들을 데리러 어린이집에 갔는데, 수민이가 띠를 안 가지고 갔다고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내 뒤를 쫓아 내려왔다... 헐... 결국 그 날 태권도는 안 가기로 하고, 셋을 데리고 친정집에 데려다 놓고는 아이들 어린이집 상담을 갔다. 6시 40분부터 1시간 동안... 다시 친정집에 가서 셋을 데리고 와서 재우고 나서야 하루가 끝났던 아주 특별한 하루였다.
(한달에 한 번있는) 아이들 소풍과 (딱 세번 있었던) 출근과, 사범님 예비군 훈련과, (한 학기에 한 번 있는) 어린이집 상담일이 하루에 몰려 있던 날.
하지만, 이렇게 특별했던 하루는 그 날이 끝이 아니었다...
나는 운전연수를 시작했고, (10월10일 부터)
예전에 신청한 어린이집 재능기부 수업도 진행했고, (늘 그렇지만 수업 준비가 더 어렵다)
수현이는 뜬금없이 어린이집에서 턱을 다쳐서 응급실에 가서 아홉 바늘을 꿰맸고, (10월 14일) 그 뒤로도 수현이를 데리고 처치를 받으러 다녀야 했으며,
수민이는 10월에 가기로 한 국기원 때문에 토요일마다 품새 특강을 나갔고,
9월부터 다니고 있는 수민, 수현이의 미술학원 스케줄에 따라 미술학원 등/하원도 시켰다. (수민 화요일 5시, 수현 목요일 3시 반)
수민이는 미술학원에 가려면 태권도를 한 시간 당겨서 가야하는데, 그 때는 차량운행을 안해서 내가 직접 데려다 줘야한다.
교회의 구역모임(화요일)과 기도모임(목요일), 그리고 지난 주에는 수요 예배 사회까지 보았다. 평소 수요예배에 가지 않아 생소한 예배 준비와 당일 정장 착용까지..
미술학원에 같이 다니는 수민이 친구들은 미술학원 끝나고 우리집으로 오는 것이 코스가 되었고, 수현이의 친구들은 불규칙적으로 일주일에 한두번씩 놀러왔다.
일주일에 아들 셋인 날보다 아들 다섯인 날이 더 많은 느낌...
어느 날은 수민이더러 오늘 샤워해야 한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자기들도 하겠다고 해서 아들 다섯을 하루에 샤워시킨 날도 있다... ㅋㅋㅋㅋㅋㅋㅋ
수민이가 친구들 초대하고 싶다고 시작한 일인데, 놀러 오는 아이들 모두 엄마아빠가 맞벌이라 내가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려다 보니 점점 일이 커지게 되었다.
남편은 나보다 더 바빠서 새벽 1시에 들어온지 벌써 두 달이 다되어간다. 주말을 반납한 건 한 달 정도.
나의 이런 상황을 남편에게 말할 시간도 없다.
이 와중에 나는 일을 하겠다고, 시간을 쪼개 일을 하고, 외출을 해야할 경우는 꼭 컴퓨터를 렌더링을 걸고 나간다 (나보다 더 쉬지 못하는 내 컴퓨터...) 낮에 못한 일은 새벽 3시까지 마무리를 하고,
무한도전도 몇 주째 보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짤방으로 시작한 <질투의 화신>을 완주했더니,
밤에 올빼미처럼 맑던 정신이 점점 몽롱해진다. 잠이 오는데, 잠을 참고 일어난다.
이렇게 바쁜 것이 재미있으면서도, 너무 쫓겨 사는 느낌은 있다. 책을 읽고 싶은데, 시간과 여유가 없다.
문제는 무엇인가.
아이들도 중허고, 교회도 중요하다... 재능기부수업도 중요하고, 아이들 친구들 초대하는 것도 중요하고, 운전연수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한번 일을 시작하니 모든 것이 일 중심화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일 외에 다른 것들이 순위에서 밀려나고, 해야할 일들이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어떤 것은 포기해야 하는데, 포기가 쉽지 않다.
마음 속 깊은 한편으로는 이사가는 것에 안도가 된다. 지금 이 곳에서 매여있는 것들로부터의 해방될 수 있으니까... (아니면 지금 내가 여기에서 하고 있던 것들을 그리워할 수도)
못 할 것은 과감하게 못한다고 하는 용기가 필요한 건 안다.
하지만 못 한다고 하느니... 힘들어도 하는 게 나은 것 같은 느낌... 고생을 사서 하는 나의 인생... 그런데 이사를 간다고 해결이 될까? 또 다른 것들로 매이게 되지 않을까?
일단 이번 주 토요일이면 남편 행사가 끝난다. 토요일이 어떤 전환점이 되기를...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헤어질 때 인사는 더 잘 하자 (2) | 2017.01.23 |
---|---|
드디어 이사를 하다 (4) | 2017.01.05 |
집에 대한 고민의 끝! (1) - '사야하나? 팔아야하나?" (2) | 2016.10.25 |
벼룩시장에서 얻은 것 (1) | 2016.10.07 |
다섯번째 미사 방문 (0) | 2016.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