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가면 모자실이 있다. 예배시간에 엄마와 아이를 배려하여 편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유리벽으로 막아 놓은 것이다. 아이에게 수유도 할 수 있고, 아이가 울어도 눈치를 보지 않아도 좋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 곳에서는 온전히 예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 곳은 아이들의 소리와 엄마들의 수다로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곳에 갇혀 6년을 지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을 보고 들을 수는 있었지만 그 속에 섞일 수는 없었다. 나와 세상 사이에는 딱 유리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첫 아이를 낳고, 둘째 아이를 낳고, 또 셋째를 낳았다. 딱 2년씩 터울이 있으니 임신기간부터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약 6~7년의 시간 동안에는 아이들만 바라보고 살았다. 아무리 가도 끝이 안 보이는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이들을 키우느라 고군분투 하는 동안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직하여 예쁘게 꾸미고 대리님, 과장님이라고 불렸는데, 어쩌다 친구들을 만나러 가면 그렇게 혼자 뒤쳐지는 느낌이 들 수가 없었다. 그 당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아이가 없는 친구들에게 내 육아 이야기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고 나는 하소연 할 곳도 없었다.
그런데 그 길고 길었던 터널을 지나 이제 내가 세상으로 나왔다. 막내가 6살이 되었고, 어린이집과 학원과 학교가 많은 시간 아이들을 돌봐준다. 그 시간에 나는 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지만, 돌아보니 너무나 짧게 느껴진다. 사진을 찾으려고 지난 글들을 뒤적이다보니 그 시절 그 감정들이 새록새록하다.
터널의 한 가운데 있다고 생각되었을 때, 당시에 나는 영원히 그렇게 머물고 있을 것만 같았지만 아니었다. 그 당시 잘 나가는 것 같아 보이던 친구들은 이제 아이를 낳고 육아를 시작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흐른다. 이 글은 미리 숙제를 다 해낸 우월감이 아니라 지금 한창 터널을 지나고 있을 엄마들에게 주고 싶은 위로다.
언젠가는 그 긴 터널도 끝나게 되어 있다고. 어쩌면 그 터널이 어둡지 않았을 수 있다고.
[30일 글쓰기] #17. 나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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