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나는 회피성 기질이 다분했던 것 같다. 책상에만 앉으면 갑자기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림 자체를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공부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그랬다. 책상에 앉아서 할 수 있었던 재밌는 딴 짓이 나에겐 그림그리기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했던 '따라 그리기'는 질이 점점 높아졌고, 나중에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너무 몰입한 나머지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미대 입시를 포기했던 이유는 동생이 더 잘했기 때문이다. 미술학원은 돈이 많이 들어서 둘 다 미술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부모님께 짐을 지워줄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꿈을 누구에게 말해보지도 못한 채 그림그리기를 포기했다.


미대를 가지는 못했지만, 이후로도 그림을 종종 그리곤 했다. 대학생 때 미술학원을 다니며 정밀화도 그려보고 누드크로키도 해봤다. 호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는 종종 바닷가로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서 그림은 엉망이었지만, 가끔 좋은 그림이 나오기도 했다. 


호주에 있는 친구들에게 선물로 주고온 비행기 그림 3점


환경적 요인으로 내가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학에 입학하고서라도 의지가 있었다면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 즐거운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언젠가 시간적 여유가 생긴다면 여유롭게 색연필과 물감을 들고 나가고 싶다. 그 언젠가를 위해 내가 하나씩 사 놓은 물감과 붓들은 지금도 서랍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30일 글쓰기] #16. 배워보고 싶었으나 여전히 마음 속에 담아둔 '내 꿈'. 미련이 남은 내 꿈은?

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