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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7.17 아빠와의 관계
일상/육아2016. 7. 17. 22:14

나의 아빠는 서울메트로에서 20년이 넘게 근무하셨다. 옛날에는 직원들에게 매 달 지하철을 무제한으로 공짜로 탈 수 있는 직원권과 가족권 한 장씩이 나왔는데,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그 가족권은 내 차지가 되었다. 
직사각형으로 생긴 그 지하철표는 일반 표와 크기는 똑같았지만 하얀색이었고, 특이할 점은 모서리가 둥근 모양이었다. 아빠가 뾰족한 지하철표 모서리를 둥글게 잘라주셨기 때문이다. 찔리지 말라고. 
그 지하철 표는 나에게 아빠의 사랑이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나의 아빠는 사랑의 표현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대부분 우리의 아빠들처럼). 아빠는 칭찬에 인색하셨고, 우리는 서로 말도 잘 하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스킨십은 커녕 뭔가를 아빠와 함께 했던 기억이 거의 없다. 어린시절 나에게 아빠는 한없이 무섭고 어려운 존재였다. 


그에 비해 우리 아이들의 아빠는 어떤가.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진심으로 부러울 때가 종종 있다. 나의 남편은 정말 좋은 아빠이기 때문이다. 아빠와 스스럼 없이 대하는 나의 아이들은 참 행복해 보인다. 


아빠와 엄마의 육아방식은 다르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앉아서 하는 정적인 활동을  좋아하는 반면, 남편은 아이들과 몸으로 놀아준다. 남자 아이들이라 그런지 셋 다 아빠랑 하는 괴물놀이를 정말 좋아하는데, 이런 거친 몸놀이는 내가 억지로 노력한다고 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나는 아빠만의 고유한 자극이 우리 아이들을 좋은 방향으로 잘 성장시켰다는 확실한 믿음이 생겼다.


몇 주 전 토요일, 큰아들이 태권도장에 갔다. 끝날 시간이 되어 내가 수민이를 데리러 갔다. 그 때 수민이가 사범님과 마주보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수민이와 이야기 하고 있는 사범님의 표정이 묘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져서 수민이에게 물어봤다. 

그 날 게임에서 이긴 팀은 뽑기 기계를 이용할 기회를 얻었는데, 수민이가 거기서 30점 체크쿠폰을 뽑았고, 수민이가 사범님에게 가서 체크로 바꿔달라고 했더니 사범님은 월요일에 바꿔 주겠다고 하셨나보다. 수민이왈 "그런데 내가 월요일까지 기다리기 싫어서 '싫습니다!'라고 했어. 태권도에서는 '~합니다' 이렇게 이야기 해야되거든." 한다. 

나는 거기서 권위자에게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큰 아들의 용기를 보았다. 그리고 작은 통쾌함을 느꼈다.  

나는 어렸을 때 절대적으로 순종적인 아이였기 때문에 만약 사범님이 "월요일에 줄께." 라고 했으면, "네"하고 돌아서서 가는게 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싫습니다!'라니...상상할 수도 없다.ㅋㅋㅋ

아주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이 일로 인해서 아빠의 역할이 아이들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어렸을 때 무서운 아빠 아래 항상 눌려있던 나는 순종적일 수 밖에 없었고 그게 착한 아이가 되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아빠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권위자에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던 거다.

그동안 블로그에 남편에 대해서 쓰고 싶었는데 쓰지 않았다. 왜냐면 너무 자랑 같았고, 한편으론 한없이 남편을 찬양하기에는 완벽하지 않은 남편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좋게만 쓰기에는 배가 아팠달까. ^^;
하긴 나도 완벽하지 않으면서 남편에게 그걸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감사하기로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넘친다. 
남편은 목욕탕에 아이 둘을 혼자 데리고 가는데, 막내는 아직 어려서 안 데리고 가지만 나중엔 셋 다 데리고 가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내가 따라가지 않아도 남편은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으로, 공원으로 혼자 데리고 다닌다. 남편의 모습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다른 가족을 만났을 때 다른 아빠가 자기 볼 일을 보러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거나 할 때는 정말 당황을 넘어 충격적이다.ㅋㅋㅋ 

네이버에 '아빠와 함께한 순간' 콘텐츠 공모전이 있어서 아빠로 지낸 7년의 사진을 영상으로 만들어봤는다. 7년 간 아빠와 아이들이 찍힌 사진을 찾아 모아보니 정말 많다. 
이 세월이 한 순간 쌓아올린 것이 아니구나. 

(참고로 마지막 멘트는 아빠가 직접 말한 것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ㅋㅋㅋ)


<아빠의 7년 with 3 sons>


나는 항상 카메라 뒤에 있지만, 사진 속의 웃는 아이들 얼굴을 보면 참 행복하다. 

[출처] 아빠와의 관계|작성자 킴벌리


[출처] 아빠와의 관계|작성자 킴벌리


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