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에서는 밤마다 아빠와 아들, 두 남자가 몸을 벅벅 긁어댄다.
수민이는 돌 때까지도 별 이상이 없었는데 아토피가 그 이후로 생겼다. 특히 건조해지면 심해지는데, 겨울에는 얼굴까지 울긋불긋하게 올라왔었다. 밤마다 가려워 긁다가 깨기를 반복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보습 크림을 발라주고 긁지말라고 손을 붙잡고 자는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집에서 쓰던 세타필 로션이랑 크림만 열심히 발라주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엄마들한테 소문난 좋다는 크림은 안 발라본 게 없다. 이불 빨래도 자주하고, 옥상에 가져다가 햇빛에 말리고.. 가끔 심해질때는 어쩔 수 없이 스테로이드 연고를 발라준다. 확실히 신경을 많이 썼더니 예전보다는 좋아졌는데, 그래도 여전히 수민이는 습관적으로 긁고, 스테로이드 연고는 주기적으로 쓰게 된다. 아토피 피부염이란 게 쉽게 완치가 안 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애들 데리고 병원에 다니기도 쉽지 않고.. 병원에 가봐도 연고 처방만 받을 것 같아서 그냥 이런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친척동생의 아토피가 다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토피가 엄청 심하던 친척동생은 피부 염증이 심해져서 일 년 가까이 집에만 있었다.
고대 다니던 똘똘한 아이가 피부때문에 휴학까지 하고, 한참 좋은 나이에 집에서 나가질 못하고 있으니 온 식구가 걱정을 했다. 병원이고 한의원이고 안 다녀본 데도 없고 돈도 엄청 썼다고 들었다.
그런데 어떤 피부과에 다니고 나서 너무 좋아졌다고 했다. 끝이 안 보이는 것 같던 아토피와의 싸움을 끝내고 올해 학교도 졸업하고 지금은 취직도 했다. 그래서 이모랑 친척동생은 만날 때마다 수민이 데리고 빨리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미루고 미루던 병원에 가봤다. 힘들지만 정말 고쳐줄 거라고 믿고 큰 맘 먹고 갔다.
병원에서 아빠랑 알레르기 반응 테스트~
알레르기 반응검사에서 이것저것 나온 오빠에 비해 수민이는 아무것도 안 나왔다. 아토피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있다는 집 진드기 알레르기도 둘 다 안 나왔다. 두 사람의 아토피 때문에 이불 빨래하는데 강박관념이 있던 나한테는 다행이었다.
수민이는 아토피 초기라고 하는데, 문제는 먹는 것 때문이라고 했다. 실제로 세 미만의 경우에는 대부분 식품 알레르기가 아토피 피부염의 주요원인이라고 했다.
수민이는 치료방법으로 식이요법을 시작했다.
가공음식이나 인스턴트 식품은 당연히 안되고, 먼저 문제가 될 수 있는 모든 음식을 제한하다가,
음식에 따라 1~3일 후에 제한을 풀어가면서 먹었을 때 피부가 반응을 보이는지 보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음식에 대해서는 면역치료에 들어간다.
*먹으면 안되는 것 : 달걀/ 우유, 유제품/ 돼지고기, 소고기, 닭고기/ 대두, 두부, 두유, 콩나물, 된장/
고추장, 청국장/ 밀가루/ 날생선, 등푸른생선 (멸치), 참치, 고등어/ 견과류/ 어패류/
시금치, 팥 잡곡/ 버섯류/ 갑각류 (새우, 꽃게, 크랩)
그런데 못 먹는게 너무 많다. 경구식품 유발 검사지에 제한식품, 대체식품이 적혀있는데 보자마자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수민이 좋아하는 고기를 끊어야 된다니.. 그럼 뭘 먹여야 되나염.. ㅠ
고구마, 감자, 흰쌀, 과일, 흰살생선(조기, 대구), 야채 같은 건 된다고 해서 한동안 대구를 사다가 해주고, 어린이집에 간식이랑 점심도 따로 싸서 보냈다.
식단을 관리하는 것도 힘들고.. 수민이의 까까 금단증상(?)으로도 힘들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항상 과자를 하나씩 사주던 슈퍼가 있는데, 지날 때마다 까까 사달라고 난리였다. 나는 먹으면 간지럽다고 안된다고 타이르고.. 수민이는 울고.. 결국 대안으로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 하나 주문하고 얼음을 달라고 해서 줬더니 달래졌다.
얼음먹는 수민이와 식이섭취 기록지ㅋ
그러다 한 일주일 지났더니 요새는 과자를 안먹어도 잘 지낸다. 슈퍼에 갔다가도 "수민이, 까까 먹으면 안되요~" 하면 그냥 나오고, 가끔 "까까 싫어요." 라고 하는데 기특해 죽겠다.
생각해보면 문제는 수민이 피부가 아니라 편하려고 했던 나였던 것 같다.
수민이가 안 우는게 좋으니 과자도 사달라는 대로 하나씩 사주고.. 수민이 밥 챙겨 먹이는 것도 수민이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해주게 되고.. 그러다보니 야채는 덜 먹게 되고..
그런데 이번 기회에 여러가지 음식을 먹이게 된 건 좋은 것 같다.
지금은 버섯 테스트 기간이라 버섯을 일정량 이상 먹여서 보내야 되는데, 버섯을 잘 안 먹어본 수민이는 싫다고 난리였다. 혀를 내밀어 힘주고 밥을 안 먹으려고 하거나 입에 들어가면 바로 뱉어버렸다. 그래서 한참 울리고 혼도 내면서 먹였다. 혼을 내면서도 이게 역효과일까 걱정이 되긴 했는데, 멸치를 조금 올려줬더니 다행히 버섯도 잘 먹었다.
이렇게 완전히 식단을 관리해주니 이상하게 마음이 편한 것도 있다. 그동안 뭔가 한 구석으로 찜찜하던 마음이 해결되는 기분이랄까. 힘들긴 하지만 나와 수민이한테 훈련의 시간이 된 것 같다.
요즘은 매일같이 수민이 낮잠 자는 시간에 어린이집으로 데리러 가서 압구정에 있는 병원으로 출석하고 있다.
언제 치료가 끝날지 모르고 돈도 엄청 들어갈 예정이지만..ㅠ 요새들어 수민이가 잘 때 가려워서 긁다가 깨는 일이 없고, 음식을 조절해 줘서 그런지 피부도 조금 좋아진 것 같다.
효과가 눈에 조금씩 보이는데 끝까지 완전히 치료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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