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태어난 뒤로 수민이가 어린이집에 안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왜그러냐고 물으면 재미가 없다고 하는데, 이 대답을 들으면서 나는 어린이집 수준이 수민이한테 낮은게 아닐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 즈음 수민이가 나한테 질문을 자주하는데,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나의 아이가 천재로 보였기 때문이다.
차타고 지나가면서는 '낙석' 글씨를 보고는 "엄마, 낙석이 뭔지 알아?" "낙석은 돌이 위에 딱 붙어있었는데 그게 떨어지는거야." 한다. 나는 수민이한테 낙석을 설명해주면 알아들을까? 하고 대답하길 약간 주저하고 있었는데, 헐... 그때 친정아빠랑 같이 있었는데 듣고 동시에 당황해서 웃었다.
지난 번에는 "엄마, 뺑글뻉글 도는게 뭔지 알아?" 한다. "팽이~"라고 했더니 또 말해보랜다. 그래서 뭐가 있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바로 지구야." 한다. '너 지구가 뭔지 알아? 어디서 봤어? 누가 알려줬어?' 쏟아지는 나의 질문에 시크하게 '돌고돌고돌고'라는 책에서 봤다고...
호기심도 많고, 궁금증도 많고... 책을 읽다가 키르기스스탄 이라는 나라가 나오면 책을 읽다말고 세계지도로 달려가서 키르기스스탄을 찾는 아이. 아이티는 어디냐고 묻길래 가르쳐 주면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고, 꼭 아이티 글씨를 읽고 확인을 해야 넘어가는 수민이.
어린이집에서 실시한 지능검사에서도 좌뇌, 우뇌, 복합지능 모두 평균보다 10~20정도 높게 나왔다.
교회 집사님들도 수민이가 많이 똑똑한 것다며 유치원으로 보내라며 나를 부채질했다. 정말 올해 2학기부터 유치원으로 옮길까 많이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 어린이집이 집에서 아주 가깝고, 수민이 수현이를 같이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하루 일과가 너무 편하기 때문에 일단 내년으로 보류했다.
그런데 얼마전 어린이집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
수민이가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수준이 많이 느리다고.. 지금 다섯살인데 네살 수준 정도라고 했다. 자기 이름을 못 쓰는 아이가 거의 없는데 수민이가 못 쓴다고 했다.
나는 항상 수민이는 똑똑하고 남들보다 빠르다고만 생각했다. 한글도 네살 때 다 읽어서 걱정이라고는 안 하던 터라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어린이집 수준이 낮았던 게 아니라 수민이가 잘 못해서 재미가 없었던 거였다.
따라 하는 협응력이 발달하는 게 이 시기에 중요한데, 생각해보니 평소 잘 넘어지는 수민이가 정말 협응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상담 후 집에 돌아와 바로 수민이와 이름쓰기 연습을 했다. 다행히 이틀만에 이름은 쉽게 쓰더라. 나는 당연히 못 하는 걸로 생각하고 싫어한다고 안 가르쳤었는데...
평소 하기 싫어하던 그림그리기, 색칠하기도 틈틈히 하기 시작했다.
미대나온 이모랑 미술공부.. ㅋㅋ 이름쓰기 연습
어쨌든, 수민이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면담에서의 충격은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내 아이도 부족한 부분이 많고, 여기서도 그 부족함을 충분히 채워줄 수 있겠다는 것... 내 아이가 뛰어나니 더 좋은 교육을 받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 ㅋ 그동안 나는 얼마나 자만했는가.
평소에 있었던 어린이집에 대한 불만도 해소가 됐다. 어린이집에서 낮잠도 약간 억지로 재우는 것 같고, 낮잠 시간 이후에는 컴퓨터로 자주 만화를 틀어주는 것 같아 약간 방치되는 느낌이 있었고, 6,7세를 통합반으로 한 반에서 가르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엄마들은 아이를 어디를 보내든 불안해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 어린이집이 좋은 점도 많다. 일단 구립이니 믿을만하고, 소풍도 한달에 한 번씩 간다. 지역연계활동으로 지하철이나 시장, 우체국 구경도 하러 다니면서 여러가지 활동도 많이 하고, 친구들과도 재미있게 잘 지낸다.
어린이집에서.. (2014년 1학기)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바로 유치원에 보내기에는 금전적인 문제도 크다. 유치원에 보내면 정보부조금 외에 한달에 평균 20만원~35만원씩을 분기별로 한꺼번에 내야하니 타격이 크다. 아이가 하나라도 고민이었을 텐데 셋이나 있으니.. 유치원에 한달에 최소 금액 20만원씩 2년을 세명을 보냈을 때 드는 돈을 계산해보니 1440만원. ㅋ 앞으로 돈 들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텐데 과연 유치원을 보내는 돈이 가치가 있을까?
유치원에 가면 뭔가 다를까? 수민이한테 더 자극을 줘야 하는게 아닐까? 난 정말 머리에 쥐나게 고민했다.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는 선배 엄마들한테도 물어도 보고, 유치원에 보내는 아이들 엄마한테도 물어봤다. 어린이집 엄마들은 큰 불만이 없고, 유치원에 보내는 엄마들은 교육적으로 만족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돈이 부담된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주 돌아오는 방학마다 걱정이고..
유명한 유치원은 이유가 학교 가기 전에 한글 읽고쓰기를 다 떼어 준다고.. 몬테소리 교육을 한다고.. 영어수업을 한다고.. 이런 저런 이유들이 있었는데, 그 이유들을 들어보니 나는 특별한 메리트가 없게 느껴졌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사교육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어느새 이렇게 정보를 찾고, 따라하려고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친구가 추천해준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읽었다. 가수 이적을 포함한 세 아들 모두 서울대를 나와서 더 유명해진 박혜란 서울대 여성학박사는 사람들의 질문에 교육을 시키지 않았던 게 교육이라고 말한다. 물론 유전적인 요인도 있겠지만, 그래도 부모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큰 작용을 한 것 같다.
생각을 거듭하다보니 답은 이미 나왔다. 나는 그동안 왜 유치원에 보내려고 했을까?
유치원에 안 보내도 되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다. 나중에 수민이가 커서 그때 엄마가 유치원에 보냈어야 되는데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서 그렇다는 원망을 할 리도 없다.
아이들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가 아니다. 잘 되라고 하는 일이 아이들을 망치지 않도록... 주위 사람들 이야기에 연연하지 말자. 사랑을 많이 표현해주는 엄마가 되자. 흔들리지 않는 엄마가 되자.
'일상 >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현이의 세번째 응급실행... 그리고 폭발한 나의 스트레스 (2) | 2014.11.13 |
---|---|
싸우면서 자란다.. (환상의 짝궁이 되기까지) (2) | 2014.10.31 |
넷이 함께 외출하면... (0) | 2014.09.30 |
매력적인 둘째아들 수현이 (2) | 2014.09.16 |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보니 (0) | 2014.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