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주 내내 남편이 야근을 했다.
12시 넘어 들어오는 일이 비일비재했는데, 애 셋을 보느라.. 잠이 없는 우리 애들은 밤 11시~12시에 자기 때문에 나는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남편도 힘든 걸 아니까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버티며 전시가 끝나는 토요일만 기다렸다. 남편은 이번 달 부터 휴가를 많이 내겠다는 등 호언 장담을 했고, 전시가 끝난 다음날 일요일에는 교회 끝나고 헤이리로 놀러가기로 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게 왠일!
일요일 아침, 아침부터 수현이 울음소리에 깼다.
근데 이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다. 수현이는 울음이 짧고 엄살이 별로 없는 아이인데 이렇게 큰 소리로 오랫동안 우는 소리는 분명 어딘가 다쳤을 때다.
거실로 나가보니 식탁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친것 같다고.. 옆에 있던 남편한테 식탁에 올라갔는데 왜 안 말렸냐고 했더니 그 전에 한 번 뛰었을 때는 괜찮았다고 한다. 속이 터질 노릇... 괜찮다고 가만히 두다니... 밑에 4cm매트가 깔려 있었어서 방심했나보다... 아...
세 살 된 아이 뼈가 약하니 충격으로 다친 것 같았다. 인대가 늘어났을까? 삐었을까? 설마 그 정도로 부러지진 않았겠지... 어쨌든 이번에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응급실로 갈 준비를 했다. 나가기 전에 응가를 한다고 해서 변기에 앉았다가 닦을 때 잠깐 서게하려고 했더니 서지도 못하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이거, 생각보다 심각하구나..
아빠가 수현이만 데리고 빨리 나가려다가 수현이가 엄마랑 같이 간다고 울어서 급하게 다섯 식구가 함께 출발했다.
중앙대 응급실도 벌써 세번 째.. 이젠 응급실 안 풍경도 익숙하다. ㅋ 접수를 하고 수빈이를 안고 서 있는데, 옆에 어떤 남자아이가 투명한 물을 공중에 뿜으며 토해댄다. 딱하긴 하지만 아직 돌 안된 아기가 있을 곳은 아니다 싶어서 수빈, 수민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기다렸다. 엑스레이 찍고 기다리는 시간이 꽤 지체되서 우리는 교회로 가고.. 예배가 끝날 때쯤 전화가 왔다.
뼈가 부러졌다고... 깁스를 한 달 해야된다고... ㅠㅠ
그나마 다행인건, 뼈가 금이 간 것 처럼 부러져서 그대로 붙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헤이리고 뭐고 집에 돌아왔는데, 너무 우울했다.
한 달 동안 걷지 못한다는데, 저 활동적인 아이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어른도 답답한데.. 답답해서 찡찡거리기 시작하면 내가 다 받아줄 수 있을까. 어린이집은 갈 수 있을까. 아기는 요즘 하루종일 찡찡대고 이유식도 만들어야되고 젖도 먹여야 되고.. 나는 어제까지 진짜 육아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기 때문에... 수현이랑 아기 둘을 하루종일 볼 생각에 미치자 눈물이 쏟아졌다.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마음이 힘드니 자꾸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식탁에 올라간 걸 그냥 놔두다니... 이건 세살짜리 아이가 잘 못한게 아니라 주의를 주지 못한 부모가 잘못한거다. 생각할수록 너무 속이 상해서 자꾸 이야기 했더니 지난번에 놀이터에서 수현이 머리찢어졌을 때 (내가 옆에 있었는데 막지 못한 걸) 계속 그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냐고 오히려 나무란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열이 확 받았다. 나는 남편이 자기가 잘못했단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속이 상하고 앞으로 한 달이 막막해 방에 들어가서 계속 울었다.
말도 하기 싫다가 저녁이 다 되서야 남편한테 나를 왜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했더니,
"한 달 내내 휴가 내서 도와주면 되잖아." 한다. 가능한일이냐고... 내가 눈물을 주르륵 주르륵 흘렸더니 남편이 심각성을 알았는지 진짜로 방에 가서 전화를 한다. 그러더니 정말로 월요일, 화요일 휴가에 수요일은 반차에 금요일도 휴가를 냈다.
그리고 그렇게 걱정했던 첫 일주일은 내가 과민반응을 했다 싶을 정도로 수월하게 지나가고 있다.
월, 화는 남편과 함께.. 수요일은 친정엄마가 와서 도와주시고,
오늘은 교회 집사님이 다섯살 아이랑 놀러와서 같이 점심먹고 밖에 한바퀴 돌고 오니 둘다 잠들어서 지금 블로그를 쓰는 여유도 생겼다. 잠깐 원망했지만, 생각해보면 세상에 이렇게 좋은 남편이 없다.
생각보다 씩씩한 수현이... 자기 처지를 잘 받아들이고 있다. ㅋ
곰곰히 생각해보면 수현이 사고도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을 수도 있다.
요즘 식탁에 몇 번 올라가는 걸 내가 제지했었고, 수현이는 정말 거침이 없는 아이기 때문에...
올해 여름부터 외상으로 벌써 네 번째 응급실 행이다.
시댁 놀이터에서 놀다가 머리 뒷통수 1cm 꼬맸고,
어린이집에서 넘어져서 눈가를 열 바늘이 넘게 꼬맸고,
추석에는 할아버지랑 놀다가 팔꿈치 안 쪽 뼈가 빠졌고..
정말 이렇게 다리가 한 번 부러져봤으니 이제부터는 조심을 할려나...
사고가 났던 날 밤에 수현이를 재우면서 앞으로 조심하라고 당부를 하는테,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한 표정으로 "응. 내일부터는 조심할께!" 한다.
정말 이번 일이 약이 되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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