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육아2015. 2. 23. 13:24

1월 초, 형들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수빈이 보낼꺼냐고...

대기가 수백명인 구립어린이집에서 6명 안에 들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맞벌이에 형제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고, 임신 때부터 신청해 놓은 거라 간신히 순위 안에 들은 듯... 어쨌든 되기만 하면 꼭 보내고 싶었다.

일단 당연히 보낸다고 기뻐서 전화를 끊었는데, 막상 어린이집에 보낼 시간이 다가오니 고민이 되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미친듯이 갈등했다. 보내야하나 말아야하나...


첫째 수민이는 23개월, 둘째 수현이는 16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보냈다. 셋 다 다 같은 4월생이라 이럴 때 계산이 편하다. 수민이는 수현이가 태어나기 바로 전 달부터 어린이집에 갔고, 수현이는 형처럼 23개월에 보내려다가 여름에 어린이집에서 자리가 생겨서 조금 일찍 보냈다. 당시 수현이도 너무 일찍 보내는 것 같아서 수현이한테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수빈이를 그보다 5개월이나 더 빨리 보낸다고 생각하니 고민이 안 될 수가 없다. 

물론 풀타임으로 보내진 않고 딱 형들 가는 10시반에 갔다가 1시 전에 데리러 갈 생각이지만... 그래도 아기한테는 엄마랑 떨어져 있는게 너무 힘들겠지...


사실 둘째가 첫째보다 7개월이나 일찍 어린이집에 갔어도 둘 다 별 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고, 주위에 훨씬 일찍 어린이집에 보낸 집들을 봐도 애착관계에 있어서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최근에 있었던 어린이집 폭행사건 후에 어린이집에 당연히 보내는 걸로 생각했던 나는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할 기회가 됐다. 물론 우리 형들이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에 대해서는 신뢰가 생겨서 그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 고민을 증폭시킨 건 전업맘과 워킹맘의 경계였다.

나는 그 전업맘과 워킹맘의 사이에 있다.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일도 하고 있고, 건강보험도 따로 내고 있고, 세금도 내고 있어서 서류상으로 완벽한 워킹맘이지만 실제로는 자영업이고, 일이 항상 있는 게 아니고, 집에서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그동안 아이를 보면서도 일 할 수 있었다. 단지 내가 힘들었을 뿐... 


딱 두 시간씩만 이용해서 집중해서 일하고, 일이 없을 때는 잠시 육아에서 벗어나 한 숨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과연 그 시간이 얼마나 절실할까?

혹시 꼭 구립어린이집에 보내야하는 상황에 있는 절실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구립은 추가비용이 많이 들지 않고, 방학이 없으며, 오전 7시반부터 오후 7시까지 가능하다) 혹시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아닐까? 
만약 정부 지원이 안되서 40만원이 넘는 돈을 내가 낸다고 하면 아이를 맡길 것인가... 


최근 나는 너무 바빴다.

아버님 회사에 제대로 된 인력이 없어 상품기술서와 상품설명서 등 내가 다 만들어야 했고, 이미지를 만들어 영어번역도 했고, 회사 홈페이지 만들기 위한 자료를 정리하고 디자인을 기획해서 홈페이지 제작 회사에 ppt로 전달했다.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 그리고 아주버님은 회사에서 발표할 영상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셨고, 최근에 영상 편집일이 두개가 들어왔고, 게다가 우리집 건물 관리는 집마다 1년씩 총무를 돌아가면서 맡는데 올해가 바로 우리집 차례... 1년 간 자료를 넘겨받아 정리하고 반상회까지 주최했다.   

거기에 집안일과 아이들 셋은 보너스...


형들이 어린이집에 간 시간이면 막내 먹이고 재우는 게 일이고,

엄마 껌딱지라 화장실도 내 마음대로 못 가고 참아야 하는 이 상황...

설거지를 하면 아기가 옆에 와서 부엌 서랍을 뒤지는데, 잘못 닫아서 아기손가락이 낄까봐 한쪽 다리로 선 채로 한쪽 발가락으로 서랍을 잡고 설거지를 하는 나의 모습...

항상 잠은 부족하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 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위에서는 자꾸 부탁이 들어온다. 전화는 커녕 문자 답 할 여유도 없다. 

자유롭고 싶다... 해방되고 싶다....

뭘 하든 딱 두시간만 방해받지 않고 싶다....


얼마나 고민이 많이 됐는지... 비슷한 상황에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나 인터넷으로 찾아보다가,

"돌된 아기 두시간씩 어린이집 보내는 게 그렇게 욕먹을 짓인가요?ㅠㅠ" 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천천히 댓글을 살펴 보는데, 삼년 전에 쓴 글인데도 최근 화두도 등장한다. 아까운 세금이 왜 전업주부한테 나가야 하느냐고 따지는 글부터 아기 정서와 면역력 문제 거론하며 비난하는 글, 하루 두 시간인데 어떻냐며 괜찮다며 동의하거나 엄마 우울증 걱정하는 글까지... 갑론을박이 끝이 없다.  

나는 글쓴 엄마의 입장이니 뭐라고 하는 사람들한테 화가 나기도 했다. 모든 입장은 상대적인 건데, 아이 한 명을 키우더라도 아이 기질과 엄마 성격, 그리고 남편이 얼마나 도와주는지에 따라서 상황은 천차만별로 변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남을 판단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한편으로는 나도 얼마나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고 있는지 깨달았다. 내가 세 아이들 어린이집 가방을 들고다니면 분명 수빈이를 가리키며 얘도 다니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거고, 난 괜히 찔려서 그 말 한 마디에 엄첨 스트레스 받겠지.. 

한 밤중에 글을 읽다가 마음이 복잡해져서 일단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이 됐더니 마음이 정리가 되었다.

일 년만 더 끼고 있기로...


너무 바쁜 요즘같은 날은 365 어린이집을 이용하기로 했다. 

365어린이집은 서울시에서 365일 24시간 운영하는 어린이집인데, 서울에서 다섯 곳뿐인 그 어린이집에 운 좋게도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그래서 거부감이 없고, 기본이 세 시간인데 시간 당 3천원.. 금액도 부담이 없다. 아무래도 낯선 곳에 아이를 맡기는 게 어려워서인지 이용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래서 선생님이 1:1로 봐주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일단 설 연휴 전, 월요일 화요일 세 시간씩... 이틀동안 맡겨봤는데, 

셋째를 낳고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아기와 떨어져 있었던 기분은... 어색하기보다는 너무나 자유롭고 홀가분했다. 

이틀 모두 형들이 늦장부리느라 이용한 시간은 사실 약 두 시간 반 정도였는데 그 시간 동안 일도 집중해 할 수 있있었고, 아기 눈치안보고 화장실에도 갈 수 있었다.. 물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기쁨..!!!

두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던지... 부랴부랴 수빈이를 데리러 가서 물어보니, 한참 탐색하며 놀다가 졸려서 엄마젖을 찾으면서 좀 운 것 같다. 그래도 선생님들이 수민이 수현이 동생이라고 관심가져 주시고, 익숙한 형들이 보여서 그래도 괜찮았을 것 같다.

 

앞으로의 일 년이 너무 길어보이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하다.

버텨보자.. 도망가지 말자... 나중엔 돌이키고 싶어도 붙잡지 못할 귀한 시간 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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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