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풍뎅이 애벌레를 키우기 시작한 발단은 벌레를 너무 좋아한 수민이때문이였다.
할아버지가 밭에서 따온 고춧잎에서 애벌레들이 나왔는데 그걸 팔에 올려달라고 해서 팔뚝 위를 기어다니는 애벌레를 구경하면서 너무 좋아한다. "지네는 어떻게 생겼어? 무슨 벌레는 어떻게 생겼어?" 하면서 하도 궁금해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줬더니 사진을 보면서 감탄한다. 이야~ 이야~ 해가며.. ㅋ
수시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수민이 말을 나중에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가면 키우자며 한귀로 흘렸는데, 마침 (작년 10월) 웅진 사무실에서 장수풍뎅이 애벌레에 관한 시간이 있다길래 한번 가봤다. (애들이 곰돌이 학습지를 하고 있어서 자주 전화가 온다. 우리를 잠재적 고객님으로 생각하고 있음..) 그래 애완동물은 못 키울 지언정... 벌레는 키우게 해주마.. 한참 양보해서 체험비 만원을 주고 애벌레를 받아왔다. (나중에 홈플러스 갔더니 오천원에 팔고 있었음)
애벌레를 받아서 시댁에 가던 길이었는데, 받았을 때는 흙 속에 파묻혀 있어서 몰랐다. 이렇게 크고 굵직하고 얼굴이 까만 애벌레일 줄은...ㅠ 그리고 이 징그러운 생명체를 애들보다 내가 더 열심히 키우게 될 줄이야.....
애벌레는 어두운 곳에서 자라야 한다고 해서 문이 달려있는 책장 안에 넣어 두긴했는데, 가끔씩 살아있는건가 들여다봤다. 무심코 쳐다봤다가 애벌래랑 얼굴이 마주쳐 놀라서 통을 떨어뜨릴 뻔 하기도 했다.
그런데 쳐다보지도 못하다던 내가 관찰 시간이 아주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면서 나중에는 내가 제일 관심있게 관찰하게 됐다. 애벌레가 별 움직임이 없고 숨어있으니 아이들도 관심이 없어질 무렵에는 내가 똥도 치워주고 흙도 갈아주고 물도 줬다.
2014년 10월
요기 딱딱하고 똥글똥글한게 똥↑
2014년 12월
2015년 1월
2015년 2월- 점점 크고 통통해짐
2015년 3월 - 드디어 번데기로 변함
아무리 기다려도 애벌레가 변태할 생각을 안하더니 어느날부터 저 상태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색깔이 점점 붉은갈색으로 변함.. 혹시 죽은 건가 싶어 계속 관찰하고 있었는데 어쩌다가 조금씩 움직였다. 아.. 이제 번데기로 변하고 있구나! 거의 6개월 만이었다.
변태하는 모습을 애들한테 보여줬으면 좋았을텐데... 그걸 보겠다고 끄집어 낼 수는 없고..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애들 책을 꺼내려고 책장문을 열었다가 뚝 떨어진 이것...
두둥....
나는 거대한 바퀴벌레인 줄 알고 2미터는 펄쩍 날아 나뒹굴었다. 내가 소리지르면서 놀라는 모습을 보고 수빈이는 겁에질려 울기 시작했고, 수민 수현형제도 무슨 일인가 달려왔다.
바닥에 쓰러진 후 몇 초 후에 알았다. 장수풍뎅이가 밖으로 나왔구나...
정신을 차리고 가까이 가서 봤는데 너무 징그러웠다... 남편은 늦게 온다고 하고 우리끼리 이걸 처리해야 하는데 막막하고 무서웠다. ㅠㅠ 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그나마 못 움직이게 뒤집어져 있는게 천만다행이랄까.
애들은 가까이 와서 후후 불고, 수빈이는 박수치고 난 '하지마! 하지마!' 소리치고 난리..
급한대로 상자에 흙을 넣어 집을 만든 후, 수민이가 큰 용기 내서 장수풍뎅이를 옮김
근데 장수풍뎅이를 뒤집어 놨더니 상자 옆 벽을 잡고 빙빙돌더니 갑자기 날기 시작함... 붕~붕~붕~
갑자기 장수풍뎅이가 나는 바람에 삼형제와 나는 그대로 얼었다... 그러다 장수풍뎅이가 냉장고에 붙었다. 수민이더러 이 때 상자에 담으라고 소리쳤는데 수민이는 더이상 용기를 못 내겠다고 울먹인다. 다시 날기 전에 처리해야되니 급한 마음에 내가 상자를 갖다대고 뚜껑으로 살살 밀어서 겨우 뚜껑 닫아 넣는데 성공했다. 이녀석 안 들어가겠다고 미는데 힘이 보통이 아니다. 괜히 장수풍뎅이가 아니구나.
먹이를 뭘 줘야 하는지 몰라서 일단 양배추 를 조금 뜯어넣고 크렌베리랑 사람이 먹는 젤리도 넣어 뚜껑을 닫았다. 또 열고 나올지 모르니 위에 무거운 걸 올려놓고는 상자는 베란다로 보냈다.. 휴
다음날, 애들이 눈 뜨자마자 장수풍뎅이를 보겠다고 난리다. 토요일이라 아빠도 있겠다 신이 나서 장수풍뎅이 뚜껑을 열어봤더니 다행히(??) 살아있었다. 애벌레 허물을 보여주려고 애벌레가 있던 통도 엎어 봤는데, 이상하게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배고파서 다 먹어버린걸까.. 이 변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게 핵심이었는데.. 우리집에서는 갑자기 변신한 게 되어버렸다.
수빈이도 뭘 아는지 저렇게 쳐다본다. ㅋㅋ
이 날 바로 장수풍뎅이 집이 생겼다. 수민이는 공원에서 나뭇가지를 주워왔고, 아빠는 장수풍뎅이가 먹는 젤리를 사왔다. 다음 날에는 친구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홈플러스 가서 장수풍뎅이 수컷도 사왔다. 짝짓기하면 알을 낳을 나무토막까지.. 남편은 알 낳으면 분양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세웠다.
그런데 집에서 장수풍뎅이 키우는 집들을 검색해보니 알을 50마리 낳았다는 블로그 발견... 그 집도 어느새 엄마가 애벌레를 보살피게 되었다는... 나의 미래를 미리 봐 버렸다... 알을 50마리 낳으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되는거냐... 몇 마리 분양해주고 결국엔 참나무 숲에가서 풀어주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보금자리가 생긴 장수풍뎅이 암컷(좌)과 수컷(우)
그래도 좋은 점은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한다는 거... 아침 저녁으로 장수풍뎅이를 관찰하고, 장수풍뎅이 책을 벌써 몇 번을 정독하는지 모르겠다. 책에서 글로만 읽는 거랑 실제로 보는 거랑 느끼는게 차원이 다르다. 나도 신기한데 애들은 얼마나 신기할까... 수빈이도 뭘 아는듯 관찰한다.
수현이는 장수풍뎅이가 날았던게 인상적이었는지, "장수풍뎅이는 날 수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러고 있고, 수민이는 우리가족이 7명이 되었다며 좋아한다. 그럼 나는 얘네들은 우리 가족이 아니라며 강조하고... "그럼 애벌레 50마리 태어나면 우리 가족이 57명이냐?" 6살짜리랑 이러고 있다.. ㅋ
장수풍뎅이 젤리까서 넣어주는 건 내 몫이 되었는데 어느새 나는 장수풍뎅이가 밖에 나와있어도 밥을 주게 되었다. 흙이 촉촉하게 유지되도록 분무기로 물도 뿌려주고... 잘 살아있는지 확인한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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