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셋을 키우는 건 역시 만만치는 않다.
제일 힘든 건,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지독하게 계속 할 때, 그리고 아이들 본인이 하지 말아야 되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할 때... 예를 들면 싸움 놀이가 점점 과격해질 때, 주차장에서 뛰어갈 때 "이제 그만 해, 천천히 가, 엄마랑 같이 가, 멈춰!!!!"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내 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다.
이건 남자아이들이라서 더 그런걸까? 셋 중에 수현이는 또 수민이랑 정반대의 성격을 보이니 이게 모두 남자라서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나를 자꾸 화가 나게 하는 주인공은 주로 큰 아들 수민이이다.
하이라이트 사건 몇 가지...
1. 친정집에서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아래로 1000ml 우유팩을 던져 계단 전체가 우유 폭탄을 맞았던 사건 (계단을 내려가던 수빈이에게 전달한다고 던졌는데, 터지지 않자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올라가 더 세게 던짐)
2. 코*스 가족화장실에서 수현이와 내가 용변을 보고 있던 중, 혼자 남자 화장실로 갔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민이가 화장실 밖에서 문 열림 버튼을 자꾸 누르다 기어코 화장실 문을 열었던... 나의 치욕스러웠던 사건... (하지말라고 하면서도 속으로 설마 열릴까 했는데 계속 누르니 열렸다... 너무 짜증이 나도 눈물이 나더라)
3. 발렌타인데이날 아빠가 회사에서 받아온 초콜렛을 발견하고 자기꺼라고 찜해놨는데, 동생이 먹어버리자, 어린이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다 아빠 양복 단추를 뜯어버린 사건...
이 날 아빠는 화를 집까지 참고 돌아와 수민이를 한참을 훈육했다. (20분동안 손들기+반성문)
<반성문>
"아빠 죄송함니다. 외 죄송하냐면 단추도 뜯고 그리고 짜증내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안 그러겠슴니다. 죄송합니다."
2017년 2월 14일 이수민 드림
일련의 사건들을 옆에서 목격 하면서 발견한 수민이의 공통점은 뭔가 끝까지 하려는 기질이 있다는 거다. 그만 하라고 해도 계속 하는 이 모습이 나를 화가 나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는 없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목적의식이 굉장히 뚜렷해서 뭐든지 끝까지 열심히 한다는 것.
세계여행을 하는 보드게임을 몇 주동안 매일 몇 시간씩 매달려서 했고, 한동안은 체스에 빠져 밤마다 아빠를 붙잡고 했고, 어린이집 친구들이 한자를 공부했다며 자기 전에 꼭 한자사전을 엄마 아빠에게 들고 와서 혹은 혼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한다. 바둑에 관심을 보여 어린이 바둑책을 사줬더니, 한동안 저녁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둑 문제를 풀었다.
어린이집에서 체육 시간마다 하던 줄넘기를 잘 하기 위해서 밤마다 나가서 줄넘기를 연습을 한다. 내가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기 힘드니까 같이 못 나간다고 했더니 혼자 기어코 나가서 줄넘기 500번을 채우고서 들어온다.
혼자 나가서 줄넘기 하는 수민이
외할아버지가 구구단을 틀리지 않고 다 외우면 돈을 준다고 했더니 며칠만에 9단까지 다 외웠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 구구단 못 외운다고 칠판에 이른도 적혔었는데... 내 아들이지만 너무 신기하다.
이렇게 이것 저것 열심히 하는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몰입을 잘하는 수민이가 좋아하는 최고봉이 게임이라, 나는 수민이가 커가면서 게임에 너무 빠질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지난 설 연휴 때 친척들과 놀다가 알게된 포켓몬고 게임을 지금까지 하는데, 집에서는 아예 게임을 못하니 이모를 아바타 삼아 포켓몬을 잡고 매일 수시로 보고를 받는다.
어린이집에서 쓴 일기장을 봤더니, 내용이 포켓몬 잡는 내용이 많아서 나를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그림일기 주인공이 포켓몬을 잡고 있는 이모의 모습...
2007년 2월 8일 - "어제는 버스 타고 집 에 갔는데 이모 랑 카카오톡 했다. 그리고 이모 가 포켓몬 나왔다 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잡았어? 했는데 이모가가 겨우겨우 잡았다 고 했따. 그리고 지금 잡은 숫자 는 240 이였다. 그리고 골덕을강화했다. 그리고 골덕 이 504 가 됫다. 그리고 나중에 외할머니 집에서 만나자 고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줄넘기 했다. 끝~"
2007년 2월 9일 - "어제는 내가 카카오톡 했는데 이모가 카카오톡 문자를 안보내서 그냥 삭제 했다. 그래서 또보네 서 기다 렸다. 그리고 근데 또 안보냇다. 근데 왜 안보냇냐 면 포켓몬 1마리 잡느라 그런 것이었다. 근데 이름 은 몰르는데 불새 다. 그리고 흰색 인데 다 발이 날카 롭 고 사나운 녀석 이였다. 그런데 이모 가 겨우겨우 잡았다 고 했다. 그리고 숫자는 369 였다. 이모 가 엄청 힘들다 고 했다. 그리고 도 잡았는데 걔는 316 이였다. 걔 이름은 네루미 였다. 이모 가 힘들다고 했다. 재미있었다. 끝~"
(수민이 맞춤법, 띄어쓰기 그대로 옮겨 적음)
별 이야기 아닌 것으로 이렇게 길게 쓰는 것도 참 신기하고 재밌으면서도 걱정이 된다.
이제 초등학교에 가면 핸드폰이 있는 친구들이 생길텐데 어떻게 막아야 하나? 사실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남편과 나는 수민이가 초등학생일 떄는 절대로 핸드폰을 사주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엄마의 관점에서 교육적으로) 좋은 일은, 이모랑 매일 카카오톡을 게임처럼 하더니 띄어쓰기, 맞춤법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수민이는 포켓몬 이름 외우면서 한글도 쉽게 떼었는데 이제는 포켓몬이 맞춤법까지 가르쳐 준다. ㅋㅋㅋ
카카오톡 할 시간 10분 줬는데 이모가 답장이 없자....
수민이 톡에서 극도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런 수민이가 이제 막 어린이집 졸업을 했다.
(우리집 수민이는 남수민으로 불렸다)
졸업식 날, 친구가 선물로 준 과자를 동생들에게 하나도 양보 안하고 혼자 다 먹은 수민이...
동생들을 울리면서도 끝까지 혼자 다 먹은 의지의 사나이....
초등학교를 가면 이런 수민이 기질이 어떻게 발전될까?
부디 (엄마의 관점에서) 바람직하게 자라주기를... 하지만 지금도 안 듣는데 크면 얼마나 말을 안 들을지...ㅠㅠ 차라리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을 수도 있겠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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