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한동안 마음이 바빴다.
예전에는 남편이 출근길에 아이들 셋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내가 오후 4시쯤 광역버스를 타고 코엑스로 가서 차로 셋을 한꺼번에 데리고 오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수민이의 하교 시간과 동생들의 하원 시간이 겹치면서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했다.
특히, 문제는 수민이가 돌봄교실에서 집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다들 4~5시에는 집에 가는데도 그 시간에 데리러 가면 수민이는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울먹거린다.
수민이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그랬다. 5~6시에 데리러 가도 (그 시간이 이른 시간은 아닌데도) 어린이집에 더 있겠다고 "항상" 떼를 썼다. 내가 데리러 가면 동생들은 반색을 하면서 나에게 와서 안기는데, 수민이는 나를 보면 그 즉시 얼굴이 울상이 된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매일 반복되는 수민이의 그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힝~" 하면서 눈을 아래로 깔며 입꼬리 양쪽이 아래로 내려가는 그 얼굴...
그래서 아빠가 야근을 안 하는 날에는 내가 먼저 동생들을 데리고 가고 혼자 어린이집에 8시까지 있다가 아빠랑 같이 버스를 타고 오곤 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수민이가 돌봄교실에서 웃으면서 집으로 올 수 있을까. 집에 빨리 오고 싶어하는 수현이와 수빈이를 적당한 시간에 데리고 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 잘 때도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일단 첫 일 주일에는 생각나는 여러 방법을 실험해봤다
<방법1> 4시반쯤 수민이를 돌봄교실에서 픽업-> 수민이랑 광역버스를 타고 코엑스로 가서-> 다같이 차를 타고 집으로 온다.
첫 며칠은 수민이를 어르고 혼내면서 억지로 데려 갔는데,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가는 것도 서로 스트레스였고,
나 혼자 가는 것보다 느린 수민이를 데리고 갔더니 시간이 배로 걸렸고,
매일 코엑스까지 왕복 시간이도 수민이에게는 소모적이었다.
<방법2> 수민이 소원대로 돌봄교실에 남아 있으라고 하고-> 혼자 동생들을 데리고 와서-> 동생들과 학교에 가서 수민이를 데리고 온다.
이 방법은 6시까지 시간을 맞춰 오는데 늦을까봐 내가 너무나 조급했다. 그 시간까지 남아있는 수민이 하나 때문에 퇴근을 못 하시는 돌봄선생님께도 죄송했다.
또 동생들을 데리고 또 형을 데리러 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는 아이들을 데리고 형을 데리러 가는데 집과 가까운 학교 쪽문과 후문이 모두 잠겨 있어서 멀리 돌아가야 했고,
다음 날에는 학교 정문 근처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려니 주차도 문제였고, 정문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이틀 동안 혼자 얼마나 불안해 하며 시간에 쫒기겼는지, 아이들은 동시에 왜 이리 찡찡대는지...,
특히! 그렇게까지 수민이에게 맞춰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에도 안가겠다는 수민이는 나를 너무 짜증나게 했다.
계속 이렇게 노심초사 하며 지낼 순 없었다.
실험 4일 차 저녁, 나는 진절머리를 내며 바로 태권도 학원에 전화를 했다.
돌봄교실에서 픽업을 해준다는 태권도장으로!
결론적으로 우리는 세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동생들을 데리고 올 동안,
돌봄교실에 있는 수민이는 태권도에서 4시 40분쯤 픽업-> 태권도 한 시간 수업-> 차량을 타고 집 근처에서 하원을 한다.
나는 6시 15분쯤까지만 집으로 오면 되니 너무나 여유로웠고, 깔끔했다.
큰 형이 돌아올 시간에 나와 동생들는 미리 나와서 집 앞에서 30분정도 씽씽카를 타며 산책을 한다. 하루 대부분을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수현, 수빈이에게도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더 있었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촬영을 있는 날은 판교에서 6시에 끝나서기 수민이의 태권도 하원시간에 맞춰서 가기에 불가능했다. 주위에 부탁할만한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것도 역시 학원의 힘을 빌려야 했다.
마침 동네에 *세돌 바둑학원이 있어서 지난 주말 태권도 학원을 둘러보며 바둑학원도 들러 상담을 받았다.
태권도 끝나고 바둑학원에 갔다오면 7시...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 아이를 너무 학원으로 돌리는 게 아릴까 싶은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촬영이 있는 날은 내가 빨라야 7시에 도착하므로 어쩔 수이 둘째 주 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바둑학원도 보내게 되었다.
그나마 매일 가는 건 아니고, 무엇보다 수민이가 원하고, 바둑학원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은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수민이는 전에 다니던 태권도에서 형들이 장난으로 하는 바둑을 등 넘어 배워와서 나랑 초등 바둑책으로 공부하기도 했고, 친가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바둑을 두기도 했었는데, 집에서는 바둑을 두고 싶어도 상대가 없었다. 그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던 상황에 수민이에게는 너무나 좋은 시간이 되고 있다.
이 와중에 또 다행인 것은 태권도 학원과 바둑학원 사이에 작은 찻길을 건너야 하는데, 태권도 사범님이 길을 건너 건물까지 데려다 준다는 고마운 사실....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서 나는 이러한 학원 시스템에 대해 찬양하게 되었다. 특히 엄마가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아이를 어딘가에 맡길 곳이 없는 상황에서는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학원이란 존재는 너무나 친절하게 엄마들의 필요를 알아서 해결해준다. 필수불가결한 공생관계로 자리잡았달까... (전에 내가 그랬듯이) 사교육에 대해 무조건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교육을 찬성하는 건 아니다. 공부와 관련된 학원은 보내지 않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노는 게 최고인데 너무 학교와 학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어쨌든 심심한 것 싫어하는 수민이에게는 딱 맞는 스케줄이라 위로한다.
어쨌든 한 달이 지나가니 이제 이런 시스템도 안정이 되어간다.
이제 수민이도 학교에 혼자서 등교하고, 태권도 사범님이 돌봄교실로 수민이를 데리러 가니 수민이가 군소리 없이 가고, 동생들은 여유롭게 집에 돌아오고, 매일 이렇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하다.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우리에게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 같다! ^^
↑ 내 뒤에 수현이 표정이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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