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육아2017. 3. 4. 01:30

수민이가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한 반에 37명이 9반이나 됐다...! 우리가족 처럼 생각하고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이사온 집들이 많았나 보다. 교실 부족으로 교장실도 교실로 개조했다고 했다. 


수민이한테 입학식 소감을 물어보니, 담임선생님이 할머니라 시험이 쉽게 나올 것 같다고... (이사 오기 전에 다니던 태권도장에서 형들에게 너는 어린이집 다녀서 좋겠다. 시험 안 봐서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등교 첫 날!

수업은 12시 20분에 끝나는데, 수민이는 돌봄교실을 신청했기 때문에 돌봄교실에 있으면 내가 3시쯤 데리러 갈 계획이었다. 첫 날이니까 일찍 데리러 갈까 싶기도 했지만, 첫 주는 담임선생님이 돌봄교실로 데려다 주신다고 했으니 크게 걱정은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1시 반쯤 콜렉트콜이 걸려 오더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끊어진다. 그 뒤로 또, 또 전화가 왔다가 그냥 끊어진다. 

'이건 수민이다' 

수민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 직감하고, 담임선생님께 전화했더니 전화를 안 받으셨다. 선생님께 "수민이 돌봄교실 잘 갔나요?" 문자를 남기고 급하게 채비해서 학교로 가보려는데 다시 콜렉트콜이 걸려 왔다. 이번엔 안 끊어지고 제대로 연결됐다. 수민이다.

"엄마 왜이렇게 안와.." 흐느끼는 수민이의 목소리...


왜 돌봄교실에 안 갔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기는 아니라고 했단다. 이게 무슨 일이지?

미친듯이 학교로 뛰어가는데 다리가 풀렸다. 아직 학교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수민이가 자기가 어디있는지 설명을 못해서 나는 정문으로 후문으로... 전화기가 있는 곳을 찾아서 뛰어다녔다. 그 와중에 어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애가 잠바도 안입고 밖에서 울고 있길래 같이 반에 올라가 옷과 가방을 챙겨서 같이 내려온다고...

교실로 올라갔는데, 길이 엇갈려 정문에서 겨우 수민이를 겨우 만났다. 눈물은 그치고 멍한 수민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옷도 안입고 밖에서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1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가슴이 너무 아팠다. 

 
돌봄교실로 가서 확인을 해보니 담당 선생님이 이수민은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하고 성별을 여자라고 적어서 담임선생님께 전달했던 것이다. 하필 같은반에 여자 이수민이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여자 이수민을 데리고 가다가 엄마를 만나서 보냈다는 것.. 


약 1시간 10분동안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아들은 교실에 혼자 남아 기다리다가 아무도 없으니 무서워서 밖으로 나와서 엄마를 기다렸다고 했다. 엄마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고... 그 와중에 학교 안에 비치되어있는 전화기를 발견했는데, 어떤 형이 콜렉트콜로 전화하는 것을 등 너머 보고는 따라서 전화한 거다. 

그런데 콜렉트콜은 상대방이 목소리를 확인하고 아무 버튼이나 눌러야 하는데, 수민이는 자꾸 뭐라고 뭐라고 하니까 그냥 중간에 끊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울고 있었는데, 어떤 형 둘이 와서 "왜 울고있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형들이랑 콜렉트콜을 시도했는데, 수민이가 또 중간에 끊으려고 하니 형들이 계속 들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떤 엄마를 만났고, 같이 교실에 가서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서 나오다 나를 만난 거다.


나는 너무 속이 상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울면서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돌봄교실 담당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했다. 담당선생님은 뭐라 드릴 말이 없다고 너무 죄송하다고 하셨다... 원망은 됐지만 이미 일어난일인데 어쩌겠나.. 
 
내가 돌봄교실앞에서 울면서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는 돌봄교실에 아이를 데리러 온 1학년 다른 엄마가 나보다 더 눈물을 흘렸다. 다 같은 입장이라 감정이입이 잘 되나보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 공감해준다는 게 어쩐지 고마웠다.

 
 
상황이 정리가 되고, 충격을 받았을 수민이를 데리고 집에 가려고 했더니, 이 상황에 수민이는 이미 돌봄교실 들어가더니 놀고 있었다. 이미 조금 전에 상황은 다 잊어버린 듯, 자기는 더 놀다 가겠다며 이따 오라고 했다. 3시에 다시 데리러 갔더니 더 이따 오라고.. 

결국 4시에 다시 갔는데 선생님이 2학년 형, 누나들에게 준 곱셈 문제를 다 풀고, 기어이 3학년 문제까지 받아와 동생들 데리러 가는 길 버스정류장에서 쪼그려 앉아 풀고 있다.. 내 아들이지만 참 연구 대상이다. 


이 사건으로 학교에 가기 싫어하면 어쩌나 했던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 뒤로도 수민이는 학교와 돌봄교실을 모두 좋아했다. 오히려 데리러 가면 안 가고 더 놀겠다고 하는 특이한 상황이 매번 연출되었다. 


 
어쨌든, 등교 첫날 우리는 여러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호된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이제 겨우 첫째 초등학교 입학식인데, 앞으로 얼마나 사건 사고가 많을 것인가!

다음 날, 수민이를 도와주었던 엄마한테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앞으로 놀랄 일 많을 거라는 말이 인상에 남는다.


걱정은 한아름 되지만 한편으로는, 수민이가 가르쳐 주지 않았던 콜렉트콜을 스스로 걸었던 것을 보고 아이가 상황을 스스로 헤쳐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움을 주었던 형들과 엄마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도움을 주는 선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그날 저녁만해도 속상해서 눈물이 났는데, 보름 정도 지나고 나니 그 감정도 희미해져서 별 일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울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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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