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헐크.. 아이들이 부르는 내 별명이다.
나는 삼형제 엄마처럼 안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럼 내가 항상 하는 말..
집에서는 애들이 저한테 헐크라고 불러요.
나는 목소리가 작은 편이다. 말 수도 적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육아는 나의 이런 성격과 취향을 전혀 반영해 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재울 때까지의 약 일곱 시간동안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 해야한다. 아이들 셋이 요구사항을 동시에 이야기 하기 때문에 시장 바닥같은 우리집에서 내 목소리를 듣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
일단 집에 들어오면 신발 정리, 옷 정리, 손씻기 발닦기, TV 40분 보고 스스로끄기, 밥먹기, 양치하기, 세수하기, 눈감고 잠자는 것 까지(불을 끄고 누워도 쉬지 않고 떠들고 장난을 치고, 싸운다)...
책을 읽어주려고 해도 일단 셋이 들고 오는 책이 다르고, 서로 먼저 읽어달라고 실랑이를 한다. 읽어주는 도중에도 수현이는 질문이 많고, 수민이는 마음이 급해 빨리 뒷장으로 넘기려고 하고, 수빈이는 자꾸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소리친다. 나는 노래를 부르다가 책을 읽다가 수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한다.
집에 돌아오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간섭하려다 보면 밤이 되면 멘탈이 탈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아직 스스로 행동을 절제할 수 없는 아이들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가끔 너무 힘든 순간들이 있다.
몇 번을 이야기 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가끔은 나도 모르게 작은 일에도 소리부터 지른다. 내가 너무 자주 화를 내다보니 아이들도 이제 면역이 되어서 놀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킬킬거리며 "으악 엄마 또 헐크로 변신했다!"며 도망간다...
문제는 나의 이런 화내는 모습을 수민이가 닮았다는 거다. 나의 잔소리의 대부분은 큰 아들 수민이에게로 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동생들은 어리다고 허용이 되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기만, 초등학생 씩이나 된 수민이는 왜 이리도 잔소리할 것이 많은지...
아침마다 제일 늦게 일어나서 천천히 아침을 먹고, 천천히 옷을 입고, 천천히 세수와 양치를 한다. 중간중간 멍하게 있거나 딴 짓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의 재촉과 성화에 9시 10분 전에야 간신히 집을 나선다. 빨리 하라고!! 지각이라고!!!!!
(그나마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왔으니 다행이다...)
그 상황에서 수민이는 꼬박꼬박 말대답하며 (엄마는 왜 그러는데!) 나를 더 분노하게 한다.
행동이 느린 건 날 닮았는데, 나의 급한 성격과 달리 수민이는 너무나 느긋하다. 그래서 자꾸 부딪히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수민이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었다.
수민이가 맨 뒷자리에 앉아있어서 나는 수민이 바로 뒤에 서 있었는데, 왜 이렇게 자세가 바르지 않고, 딴 짓을 하고, 머리를 꼬고 발표는 안 하는지!?
참관수업이니 간섭을 안하려고 애를 써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결국 나는 1시간 수업을 참지 못하고 중간 중간 수민이를 건드렸다. "똑바로 앉아" "네임펜을 지우개로 지우면 어떻게 해?" "사물함에 가서 물티슈 가지고 와." "종이 구기지 마"
수업이 끝나고 수업데 대한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내가 대부분 중, 하에 체크한 것에 비해 다른 엄마들은 대부분 중과 상에 체크가 되어 있었다. 내 옆에서 자기 아들 산만하다며 한탄했던 엄마마저!
교실을 나와서 다른 엄마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괜찮아요. 학교만 재밌게 다니면 되죠~" 한다. 아니! 이건 내가 하던 말인데!? 나는 겉으로 쿨한 엄마인 척 하다가 내 아들이 그런 모습을 보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나보다. 막 입학한 1학년 남자아이들이야 산만한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나를 반성한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고 해 줘야지.
하지만 이렇게 다짐한 날 저녁, 수민이 친구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수민이가 친구 옷 앞뒤에 싸인펜으로 낙서를 잔뜩 해놨다고, 또 수민이가 말하길 오늘 친구랑 싸워서 보건실에 갔다 왔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수업시간에 짝꿍이랑 장난쳐서 수민이만 자리가 바뀌었다고 했고, 또 며칠 전에는 선생님한테 뛰었다고 혼났다고 했고...
모든 것에 나름 이유는 있다고 하더라도, 하아.... 아들은 내 마음이랑 너무 다르구나.
요즘 수민이를 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 녀석으로 인해서 속상해 하고 있하면 다른 녀석이 예쁜 짓을 하며 나를 힐링해 준다는 것.
막내 수빈이는 자기가 잘못을 하면 "미안해요"하며 나를 쓰다듬으며 사과를 한다. 웃긴 표정으로 나를 웃기려고 애를 쓰고, "하트 뿅! 하트뿅!"하며 하트를 발사한다.
둘째 수현이는 워낙에 바른생활 사나이라 혼날 일이 별로 없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이랑 발을 얼마나 야무지고 꼼꼼하게 잘 닦는지... 혼자 목에 수건을 두르고는 왼손으로 야무지게 잡은 채 오른 손으로 세수도 잘 한다. 말은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 "엄마 짱 예뻐! 엄마 지구에서 제일 좋아! 제일 사랑해!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커피 맨날맨날 사줄꺼야" 하는데, 수현이를 보면 매일 나를 어떻게 기분 좋게 해줄까 연구하는 것 같다.
지난 주말, 현충일 (2017-04-15)
웃기고 싶은 수빈이, 사랑받고 싶은 수현이
같은 형제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셋이라 힘들면서도 셋이라 참 다행인 이 아이러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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