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의 아주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학원에서 돌아온 수민이를 샤워를 시키며 "오늘 하루 어땠어?" 라고 물었더니, 수민이가 오늘은 "슬픈 날"이었다고 대답했다. 왜~?!
이 날 돌봄교실에서 한 친구가 뒤에서 수민이를 배를 깍지낀 손으로 꽉 안았다고 했다. 수민이는 숨을 쉴 수가 없어서 '태권도 힘으로' 친구의 깍지낀 손가락을 풀었다고 했다. 친구들끼리 싸우다가 그럴 수도 있고 장난 일 수도 있는데 왜 슬펐을까? 슬펐던 이유는 그것 보다 (돌봄교실 남자아이들 7명 중 6명) 친구들이 다 자기를 놀렸다고 했다. 혼자 있는 애, 바보 멍청이 등등...
나의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고, 수민이가 두서없이 대답해서 순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야기를 대략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수민이가 마음에 들지 않은 친구A가 친구B에게 수민이랑 싸워달라고 했다. 그래서 친구B가 수민이에게 다가와서 뒤에서 배를 움켜잡았고 수민이가 그 친구의 손가락을 풀자 둘은 아무 말 없이 갔다고 했다.
2. 놀이를 하는데 친구A팀과 수민이 팀으로 나눠서 수민이 팀 할 사람 손들으라고 했더니 아무도 손을 안 들고, 친구A팀 할 사람? 했더니 나머지가 손을 다 들었다는 것.. 그래서 그랬는지(?) 수민이가 울고 있었는데 친구 한 명이 다가와 '혼자있는 애'라고 놀렸다고 했다.
3. 또 친구A는 돌봄교실 친구들에게 "이수민 싫지?"라고 물어봤고, 두 명은 친구니까 '친구니까 싫은 건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나중에는 다 같이 놀렸다고 했다. 또 친구A는 수민이에게 다가와 "지긋지긋해"라고 이야기 했다고 했다...
문제가 조금 심각한 것 같아서 다음 날 돌봄교실을 찾아갔다. 선생님께 어제 이런 일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평소 A군과 B군은 수민이 외에도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담임선생님과 어머니와도 이야기 하고 있다고... 특히 B라는 친구는 학기 초에 친구들을 자주 때렸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까지 하셨다...
나는 수민이만 괴롭힘을 당하는 건 아니겠거니 그냥 하루 있었던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날은 아이들 이모가 집에 놀러와 하룻밤을 자고 가기로 한 날인데, 이모가 와서 어제 내가 적어놓은 메모를 발견했다. 어제 내가 수민이와 이야기하며 친구들 이름이 헷갈려 종이에 적으면서 정리를 했었던 메모... 이모가 이게 뭐냐며 진지하게 수민이와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내가 간단하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심각했다.
이야기를 하면 할 수록 A군의 이름이 자주 들렸다. A는 무슨 이유인지 수민이를 예전부터 싫어하고 놀리며 괴롭혀 왔다고 했다. 특히 수민이에게 "바보 멍청이"라는 말을 자주 했는데, 수민이가 듣기 싫어서 양 손으로 두 귀를 막고 있으면 옆에서 손을 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바보멍청이 바보멍청이 바보 멍청이 바보멍청이..." 하며 계속 놀렸다고 했다. 하필 수민이는 A와 (보드게임을 하는) 방과후 교실도 같이 했는데, 거기에서도 수민이더러 게임을 못 한다고 짜증을 내고 놀렸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이 친구의 이름은 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방과후교실에서 수민이가 필통을 안 가져와서 연필을 빌리려고 했는데 싫어하며 굉장히 화를 냈다고... 그 때 나는 그 친구는 빌려주기 싫었나보지 그러니까 다음엔 필통을 잘 챙기라고 이야기 하고 지나갔었다. 또 예전에 B가 수민이 배를 주먹으로 때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A와 같이 그랬다고 했던 것 같다.
물론 친구랑 사이가 안 좋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친구를 시켜 때리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수민이가 싫지 않냐고 분위기를 몰아가고 다 같이 수민이를 놀리고, 지나가면서 발로 차고 가고... 이건 선을 넘은 게 아닌가. 이게 집단 따돌림의 시작!?
그냥 무시하라고 했더니 "그럼 물 마시러 가거나 식당에서 자주 만나는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 한다. 그럴 때도 너를 괴롭히냐고 했더니 그런 건 아니라고 했지만 그래도 신경은 쓰이나보다... 그래도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친구들 놀림을 쉽게 무시하기는 힘들겠지. 어른도 힘든데...
그 때 내 머리를 탁 치고 가는 생각이 있었다... 수민이는 약 한달 전쯤 부터 자꾸 머리가 어지럽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태권도에서도 운동을 하다가 어지러워서 태권도에 안 가고 싶다고 하길래, 그럼 사범님께 말씀드릴테니 운동하다가 어지러우면 옆에 앉아서 쉬라고 했었다. 최근 병원에 가서 피를 뽑아 정밀검사까지 했는데 문제는 없다고 했었던 상황... 그런데 자꾸 어지럽다, 머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해서 도대체 왜 그런걸까 걱정만 했었다. 혹시 그 원인이 이 친구의 괴롭힘 때문은 아니었을까?
병원에서 의사선생님이 처음 하신 이야기가 아이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냐고 물었었다. 내가 없다고 했더니 혹시 엄마에게 크게 혼난 적이 있냐고, 학원은 몇 개를 다니고 있냐고... 수민이에게 직접 태권도 재미있냐고 묻기까지 하셨었는데...
수민이의 어지러움이나 두통의 느낌은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었고 이게 지속적인 괴롭힘 떄문이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돌봄교실 선생님도 이 상황에 대해서 아실까? 당장 선생님께 전화하고 싶었지만 밤이 늦어 꾹 참았다. 당장 내일 찾아가서 상담을 해야겠는데, 하필 촬영이 있었다. "어떻게 하지?" 내가 고민하는 소리에 수민이가 "엄마는 내가 중요해? 일이 중요해?"라고 묻는다.
"당연히 니가 더 중요하지! 알았어. 촬영 취소할께." 급작스럽게 밤 11시에 다음날 촬영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친구들 좋아하고, 잘 사귀고 적응 잘하고, 자기 밥그릇 잘 챙겨먹을 거라고 믿은 수민이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이가 두통이 생길 정도로 괴롭힘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잠을 자려는데 자꾸 수민이의 말이 자꾸 머릿 속에서 맴돌았다.
"엄마는 내가 중요해? 일이 중요해?"
내가 그동한 일한답시고 아이를 돌봄교실과 학원으로 너무 방치한 게 아닐까 자책했다. 계속 눈물이 나서 새벽 5시쯤 겨우 잠에 든 것 같다.
내 일이고 뭐고 안해도 좋으니 당장 돌봄교실 가지말고 엄마랑 있자고 했더니 수민이는 그건 싫다고 했다. 책읽는 친구랑 책 읽는게 너무 좋다고 했다. 돌봄교실에서 남자아이들 중 수민이를 놀리지 않은 유일한 남자친구 한 명은 하루종일 책만 읽는 친구였는데, 수민이가 그 친구랑 책을 읽으면 너무 재밌다고 했다. 책 읽는데 집중하면 나쁜 생각(바보멍청이)이 사라진다고 했다....
하긴 초등학교 6년을 같은 학교에서 보낼지도 모르는데, 피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휴... 아이들 키우는데 너무 에너지가 많이 든다.
이제 셋 중 하나 겨우 시작인데, 앞으로 얼마나 험난한 일을 헤쳐가야 할지 생각만해도 앞길이 천리 가시밭길 같다.
수민이 입학식 다음날에 (선생님이 여자 이수민과 착각하는 바람에) 돌봄교실에 못 가고 밖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한시간 울고 있었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때 울고있던 수민이를 도와주셨던 한 엄마가 '앞으로 놀랄 일 많을 거라고' 하신 문자가 마치 예언같다.
그래도... 지금 이렇게 소외되고 괴롭힘당했을 때의 감정을 통해서 나중에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면 이것도 좋은 경험이다. 좋은 예방접종 맞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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