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민이는 지난 번 돌봄교실에서의 그 일 이후로 잘 지내고 있다. 잘 지내다가 또 잠깐 싸우기도 하는 것 같았지만, 문제가 있어 보일 때는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관찰을 부탁드렸다.
달라진 건 그것보다 나와 수민이의 변화다. 나도 수민이와 시간을 더 보내려고 하고 있고, 수민이도 엄마와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 것 같다.
하루는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도 했다.
(내가 연락하는 유일한 반 친구 엄마 둘에게 미리 이야기를 하고- 모두 형제,남매가 셋이라는 공통점)
학교 친구들을 초대한 건 처음이었는데, 자기들끼리 잘 놀꺼라는 나의 예상은 조금 빗나갔다.
나는 보드게임을 다 좋아하겠거니 했는데, 한 명이 자기는 그런 거 싫어한다며... '그럼 뭘할까?' 하며 이것저것 제시했는데, "그거 시시해요" "그거 안 좋아해요" 하며 자꾸 퇴짜를 놓는다.ㅠ 둘이 하고 싶어도 한 명이 하기 싫다고 하면 다른 두 명도 못하게 되는 상황.. 특히 자꾸 시시하다고 하던 아이는 티비를 보고 싶다며 티비를 틀어달라고 했다. ㅋㅋㅋ
처음에는 팽이를 하다가 나중에는 할리갈리라는 카드게임을 했다. 모두 재미있게 하기는 했지만, 끊임없이 나의 중재가 필요했다. 서로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속임수(카드를 미리 보는)를 쓰기도 했다. 나는 그 사이에서 공평하게 해야 한다며 규칙을 강조했는데 그러다보니 서로 카드를 빼앗다가 수민이가 울고 다른 친구는 "너 그러면 나 집에 갈꺼야"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휴... 이러려고 내가 초대했나?
아이들과 놀다보니 규칙을 칼같이 중요시하는 것보다 "그냥 좀 봐주자~"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 이렇게 넘어가는 게 훨씬 평화롭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도 그 상황을 이해했다.
3시간 정도 지나자 그제서야 서로에게 익숙해졌는지 평화롭게 잘 논다.
늦게 발동이 걸린 게 아쉽긴 하지만, 수민이가 태권도에 갈 시간이 되서 (나도 수민이 동생들을 데리러 가야해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수민이가 장난감으로 친구들이랑 계속 장난을 치며 온다. 태권도 사범님이 픽업하실 시간은 점점 가까워고, 나는 빨리오라고 몇 걸음 앞서가며 재촉을 하다가 나중에는 사범님 오시는 길목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따라왔어야 할 아이들이 안 온다.. 다시 길을 되돌아가보니 아이들이 안 보인다. 그 주변을 뺑뺑 돌며 뛰어다녔다.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남자 아이들 셋 못봤냐고 물었는데도 아무도 못 봤다고 하고... 미칠 노릇이었다. 그 와중에 사범님께 전화가 왔다. 수민이가 없어서 그냥 가셨다고, 기다리다가 이미 출발 하셨다고...ㅠㅠ
결국 수민이와 친구들을 찾았는데, 후문 앞 갈림길에서 아이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왜 뜬금없이 엉뚱한 길로 간거지?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결국 친구들 앞에서 수민이를 혼을 내고 말았다.
이런...
이러려고 내가 친구들을 초대했나!!
수민이를 혼내고 있던 중에 마침 마중을 나온 수민이 친구 엄마를 만났다. 화와 민망함이 교체했다. 마침 태권도학원 앞에 있는 마트로 장을 보러가는 길이라며 수민이를 태권도장에 데려다 주시기로 했다. 수민이나 나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화가 쉽게 풀리지 않아 수민이를 얼마나 괴롭혔을지 모른다.
늘 그렇지만 그래도 좀 참을껄... 후회가 된다. 당시에 내 마음이 조금 더 여유로웠다면 괜찮았을까?
수민이를 위해서 했던 나의 호의가 오히려 나에겐 스트레스가 된 것 같다.
이 일의 휴유증으로 친구들을 초대하는 건 당분간은 미루기로 했다.
대신 일주일에 한 번은 시간을 내서 수민이랑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보통은 돌봄교실에 일찍 데리러 가서 태권도 가기 전까지 한 시간정도 데이트를 한다. 수민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스무디와 샌드위치를 먹으며 숙제를 하기도 하고, 바둑이나 체스를 둔다.
짧은 시간이지만, 동생들 없이 수민이랑 둘이 있는 시간은 참 평화롭다. 물론 수민이도 이 시간을 참 좋아한다. 본인도 그 일 이후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취학전에 어린이집이나 학기 초에 돌봄교실에 내가 일찍 데리러 갔을 때마다 '더 놀고싶은데 엄마가 일찍 데리러 왔다며' 울상을 짓던 수민이와는 많이 달라졌다.
돌봄교실에서 뭔가 재밌는 활동을 하다가도 엄마가 오면 바로 가방을 챙겨 나오면서 "저건 매일 할 수 있지만, 엄마랑 데이트는 자주 하는게 아니니까" 하면서 엄마와의 시간이 소중한 걸 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맞벌이하던 엄마들도 회사를 그만둔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수민이 입학이후로 내 블로그에는 온통 수민이 이야기 뿐인 것 같다.
언제쯤이면 나의 마음의 굴곡이 조금 평탄해질까? 아이의 뭘 잘못해서라기보다는 뭐든지 잘 하고 싶은 나의 욕심이 문제인 것 같다. 내려놓는 연습이 필요하다.
태권도 차쯤이야, 놓쳐도 괜찮아~ 학원이야 하루쯤 안 가도 괜찮잖아~ 억지로라도 연습해야겠다...
'일상 >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 아이의 첫 여름방학 (0) | 2017.07.26 |
---|---|
수현이네반 재능기부수업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 (0) | 2017.07.03 |
큰 아이의 학교생활 (2) | 2017.05.31 |
잔소리 헐크 (6) | 2017.04.18 |
정신없던 적응기를 보내고... (0) | 2017.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