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출산하고 산후조리원에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2주 간 와주셨는데 (3주였던가) 그 기간이 끝나던 마지막 날, 이모님을 배웅하던 그 순간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헤어짐의 아쉬움이라기보다는 의지하던 사람이 사라짐으로써 나 혼자 어린 아이 둘을 감당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저 이제 어떡하죠...?" 울고 싶었다. 혼잣말처럼 내뱉은 나의 말에 이모님이 한 마디를 남기고 가셨다.


"더 잘할 수 있어!"


어렵고 두렵고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어차피 내가 감당해내야 할 일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하루를 잘 보내는 것 뿐이었다. 큰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줘야 할 때는 신생아가 밖에 나가면 안되니 (너무 작아서 아기띠도 할 수 없을 때) 아기를 집에 두고 바람처럼 뛰어갔다 왔다. 아기를 집에 두고 왔는데 수민이가 밖에서 더 놀겠다고 떼를 쓰거나 하는 일은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비상시에 큰 아이를 달랠 수 있는 여러 대책을 마련해두고 정 안될 때는 수민이를 유모차에 강제로 태우고 뛰었다. 셋째가 생겼을 때도 두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순간들을 버텨내다 보니 아이들은 어느새 이렇게 자라 있었다. 


어차피 해내야 하는 일이라면 마음을 바꾸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렇게 어려워 보이는 일들을 하나씩 넘기다보니 나는 못 할 것이 없어졌다. 태도를 바꾸면 생각보다 일은 어렵지 않다. 모든 것은 마음가짐 하나로 바꿀 수 있다.


30일 글쓰기 #9. 막상 바꿔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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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일차. 그 브랜드만 쓰는 이유]


나는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예전 우리집도 내가 발품을 팔아가며 인테리어를 했고 (우리집 before and after), 우리 회사 사무실 인테리어도 내가 자진해서 했다. (의자, 책상, 시계까지 내가 골랐다) 나의 집 꾸미기에 대한 욕구는 굉장히 높았다. 인테리어와 집짓기 책들을 닥치는 대로 봤고, 외국 유명 인테리어 프로그램도 찾아서 봤다. 한 때는 DIY에 꽂혀서 이것저것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기도 하고, 미싱을 돌려 마음에 드는 천을 직접 골라서 커튼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도 매일 기사 한두개는 열어 본다. 이 일을 제대로 공부해서 내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정도.


인테리어에 가장 관심이 많은 시기는 집을 이사할 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벌써 3년째 되었고, 사실상 집을 꾸밀 여유와 여력이 없이 바쁘게 살고 있어서 당장의 내 관심사는 아니지만, 지금도 마음 속에는 인테리어에 대한 욕망이 꿈틀거린다. 언젠가 이사할 때가 되면 이 욕망이 뛰쳐나와 한동안 나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때 내가 소비할 브랜드는 아마도 한샘이 될 것이다. 지금 우리집의 모든 가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세어보니 꽤 많다. 옷장, 서랍장, 식탁, 렌지장... 나는 가구 하나를 사면 시중에서 판매하는 모든 가구를 다 찾아보고 거기서 가장 가성비가 높은 가구를 사는데,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에너지와 시간이 너무 많다. 선호하는 한 브랜드를 정해두면 이런 에너지를 아껴줄 수 있는데, 까다로운 내가 한샘을 택한 이유는 네 가지다.


1) 이케아처럼 조립과 배송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된다. (이케아 소파베드와 서랍장을 직접 조립 한 이후로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2) 집 전체의 느낌을 통일할 수 있다. (우리집의 컨셉은 화이트와 아카시아 나무 무늬인데 이 아카시아 색깔이 브랜드마다 미묘하게 달라서 통일하기 어렵다.)

3) 비슷한 브랜드 중에서 가장 가성비가 높다. (까사미아보다 저렴하고 다른 저렴한 가구 브랜드보다는 품질이 좋다)

4) 가구마다 일일히 찾아볼 시간이 없다. (한샘인테리어 매장에서 상담부터 구매까지 한 번에 가능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각자 방이 생겨야 할 시기가 찾아오고 있다. 언젠가 이사를 하긴 해야한다. 다섯식구 살림을 대이동 하려면 너무 힘들겠지만 한편으로는 집 꾸밀 생각에 기대도 된다. 그 때까지 한샘... 잘 버텨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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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차. 편의점에 가면 살 수 밖에 없는 것]


나이가 들면서 식욕이 점점 사라진다. 요즘은 특히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주전부리를 좋아하지도 않아서 집에 과자를 사다 놓지 않는다. 엄마인 내가 과자를 먹지 않으니 덕분에 아이들도 과자를 먹을 기회가 많지는 않다. 누가 아이들 먹으라고 과자를 사다 주면 (그것이 아이들의 기호에 맞지 않을 때) 아무도 먹지 않아서 버리는 현상도 자주 나타난다. 나는 라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먹다가 반도 안 먹고 버리기를 반복하다보니 그마저도 끓여먹지 않는다. 사놓은 라면이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리는 현상도 발생한다. 가끔 남편이 라면을 먹으면 아이들이 달려들어서 먹기도 하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준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편의점에 갈 일이 거의 없다. 내가 편의점을 찾는 이유는 1) 남편의 4캔에 만원하는 맥주를 사러 가기 위해서거나 2) 생필품이 떨어졌을 때 마트보다 편의점이 가깝기 때문이다. 가도 딱 필요한 것만 사오기 때문에 "편의점에 가면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이들에게는 있다. 며칠 전 둘째가 뭔가를 너무 먹고 싶다고 하길래 천원을 줬더니 혼자 풍선껌을 세개 사왔다. 어떻게 천원으로 세개를 사왔냐고 했더니, 투 플러스 원이라서 안 사면 손해라고 한다. 우리집 삼형제에게 2+1의 조합은 딱이다. 편의점은 이렇게 우리집에 최적화된 셈법으로 아이들에게 '어머 이건 사야해' '사지 않으면 너네 손해다' 라고 친절하게 강매한다. 


나도 그 셈법이 싫지는 않다. 만약 1+1이었다면 우리는 1+1/1+1 총 4개가 생겼을 것이다. 그러면 남은 하나를 공평하게 세명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아이들에게 군것질을 주고 싶지 않은 엄마에게 형평성을 위해서 더 줘야 한다니!? 그런 면에서 투 플러스 원은 우리가족에게 완벽한 조합이다. 가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제각각일 때만 빼면 그렇다.


그래서 나는 아이 셋을 데리고 편의점에 가지 않는다. 가끔 2+1 세 세트를 사오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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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은 불변의 법칙이라고 생각했었다. 특히 이건 가정주부로서는 당연한 의무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 나에게는 아끼는 것은 미덕이 아니다.


미리 말하지만 나는 '모범적인 살림꾼'이 아니다. 요즘의 나는 자잘한 소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장을 보러 가서는 가격을 보지 않고 산다. 가격 비교를 하고 할인을 받는 것은 나에게 너무 귀찮고 피곤한 일이다... 그래서 한 푼이라도 아껴서 집안 살림에 보태야 한다는 의무감에 나는 항상 죄책감을 느꼈다. 반면 나는 큰 것은 잘 못 산다. 내가 조금 고생하면 된다며 첫째 둘째도 산후조리원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명품도 좋아하지 않고 (브랜드 명도 잘 모른다) 화장품도 거의 사지 않는다. 가전 제품에도 욕심이 없다. 


나의 소비패턴이 극단적으로 나뉘게 된 뿌리는 30년을 함께 산 부모님의 생활습관에 있다. 어렸을 때부터 아무도 없는 방에 불이 켜져있으면 "전기절약!!" 소리을 들으면서 자랐다. 아직도 그 잔소리가 따갑다. 엄마는 물가에서 물을 아껴쓰라던 외증조할아버지의 말씀을 아직도 내게 하신다. 없던 시절 돈을 아껴 써야 한다는 것도 중요했지만, 물건을 아끼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부모님께는 정말 중요했다.


예를 들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슈퍼에 갈 때 집에 있는 비닐봉지를 챙겨 갔다. 비닐봉지도 아껴야 한다는 엄마의 이야기에.. 슈퍼에서 계산을 할 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비닐봉지를 꺼내면 슈퍼 아주머니가 이 집 애들은 참 교육을 잘 받았다며 칭찬하신 기억도 있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는 새교복을 산 기억이 별로 없다. 항상 물려받은 교복을 입었는데 고등학교 때는 덩치가 큰 언니의 옷을 물려받아서 내 몸에 딱 맞지 않았다. (나도 딱 맞는 옷을 예쁘게 입고 싶었는데...) 그렇다고 엄마한테 사달라고 떼를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뭔가를 풍족하게 누려보고 살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아껴서인가.. 우리 부모님 반지하에서 아파트로, 지금은 일곱 집이 모여사는 다가구 주택의 건물주가 되셨다. (부모님 세대는 그렇게 아낀 돈으로 부자가 될 수 있었다)


부모님의 근검절약 정신은 나에게 아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주었다. 어떤 부분에는 긍정적이고 어떤 부분에서는 부정적이다. 나는 지금 내 아이들에게 비닐봉지를 들려보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질구질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지금의 작은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결혼 초반에 매일 밖에서 사 마시는 커피 한 잔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림을 잘 못하는 주부라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나에게 정당성이 생긴 것은 내가 일을 하면서부터다. 경제적 자유를 맛보게 되면서+ 특히 시간과의 싸움이 무엇보다 더 중요해지면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은 무엇이든지 한다. 일과 육아 모두를 하루 동안 해 내기 위해 모든 분초가 소중해졌다. 장을 볼 때 가격을 비교하는 시간도 아깝고 택시를 타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지금도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걷기를 마다하시는 부모님과는 대조적이다.


우리 집에 오시면 늘 새는 돈이 많다며 잔소리를 하시지만 그래도 엄마는 나의 상황을 이해하신다. 요리하는 것보다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게 낫다는 나의 말에 뭐라고 하시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사정이 있고 나름의 가치관에 맞게 돈을 쓴다는 것을 안다. 나도 부모님께 돈 좀 팍팍 쓰고 살라고 하지만 나도 엄마를 이해한다. 어린 시절, 그렇게 돈이 없다고 하시면서도 남들에게 큰 돈으로 도와주셨던 부모님의 이면도 커서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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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글쓰기] 05일차. 오늘의 주제는 이것이다.


"그건 또 내가 전문이지!

남들이 궁금하지 않아도 오지라퍼처럼 당당히 참견할 수 있는 재능을 자랑해주세요."


아침에 슬쩍 보고 '오지랖 어디까지 부려봤니'에 대한 글인 줄 알고 오지랖에 대해 쓰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쓰려고 보니 '재능'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전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의 재능이 뭘까. 내 직업을 재능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누가 영상편집에 대해 물어보면 나는 너무 피곤해졌기 때문이다. (물어본다고 하지만 사실 만들어달라는 이야기가 많았고, 나는 어렵게 거절을 하다보니 생긴 현상이다) 당당히 참견할 수 있는 재능이 이렇게 없었나... 죄다 관심사나 취미밖에 떠오르지 않던 와중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편에게 물어봤다. "내가 뭘 잘하는 거 같아?"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올까봐 살짝 걱정했으나, 돌아온 대답을 듣고 나는 빵 터질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출.산." 


출산이라니.. ㅋㅋㅋ 이건 진짜 내가 오지라퍼처럼 당당히 참견할 수 있는 나의 재능이 아닌가... 남자들이 군대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까지 장황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엄마들에게도 그런 소재가 있다. 어느 날 한번은 길가 신호등 앞에서 세 엄마가 모여 각자 출산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30분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신기하게도 모든 엄마들의 출산 과정은 모두가 힘들고 특별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이야기가 세개나. 


나는 아이들을 기계처럼 낳았다. "기계처럼"이라는 것은 정확한 텀을 두고 아이를 낳았다는 뜻이다. 아이를 낳고 수유 1년 후 다음 아이가 자연스럽게 생겼는데, 그래서 우리 세 아들은 생일이 모두 4월이다. (특히 첫째, 둘째 아들은 생일이 하루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하긴 했지만, 남편이 나의 재능을 출산이라고 한 것은 사실 세 아들의 출산(+육아)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백전노장의 느낌이랄까? 


우리 부부는 아이가 다쳐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우리가 늘상 하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누군가를 탓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예전에 둘째가 어린이집에서 넘어져서 턱이 심하게 찢어졌다다고 선생님이 놀라서 전화가 왔다. 응급실에 가서 꽤 많이 꼬맸는데 나는 선생님을 질책하지 못한다. 왜냐면 바로 전 주말, 내 앞에서 놀던 막내가 갑자기 달려가더니 그네에 부딪혀서 뒷통수가 살짝 찢어지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돌발상황은 엄마가 지켜보고 있는 앞에서도 생긴다. 누군가를 탓하면 그 화살을 나에게도 돌려야 한다.


남자아이 셋이 함께 있다보니 별별 일이 다 생긴다. 식탁에서 뛰어내렸다가 다리가 부러지기도 하고, 육중한 현관문에 막내 손가락이 끼어서 피가 범벅이 된 걸 보고 손가락이 잘린 줄 알고 놀란 적도 있다. (막내가 문을 열고 나가는데, 둘째가 못 보고 달려와 반대방향으로 열다가 일어난 사태) 폐렴으로 열성경련으로 입원해보기도, 눈가가 찢어져서 열 바늘이 넘게 꿰멘 적도 있다. 팔이 빠진 정도는 아주 가벼운 사건. 이제 아이 울음 소리만 들어도 사건의 경중을 판단하고 응급실에 갈 때는 책을 챙겨 가는 여유도 생겼다. 


이런 사고뿐일까? 아이들이 없었다면 겪어보지 못했을 극도의 화와 놀람과 속상한 순간들을 경험하고 나니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게 된 것 같다. 너무 극단적인 상황들만 나열하다보니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가져다 주는 행복은 내가 겪는 어려움보다 훨~~~씬 상단에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여러 경험을 통해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괜찮다는 내가 지금 가지게 된 이 마음의 여유로움은 아이에게도 좋다. 부모가 의연하니 아이들도 그렇게 된다. 넘어지고 다쳐도 거의 울지 않는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세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게 되니 (정말 너무 다르다) 아이가 못해도 괜찮고 잘해도 괜찮다. 못하는 일을 잘 해내라고 다그치는 일도 생기지 않는다. 이런 나의 여유로움은 바깥에서 보여지는 내 모습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내가 아이를 잘 낳고 키우는 체질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전부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들과 매일 매일 반복된 10년이 어리버리한 여자아이였던 나를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 이 정도면 오지랖을 부리며 훈수를 둘 정도는 된 것 같다. 사실 훈수랄 것도 없다. 내 답이야 항상 똑같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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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아주 특별한 물건-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쓰던 일기장 33권-이 있다. 


블로그에 이미지 첨부를 하기 위해 베란다 구석 상자 깊숙히 있는 일기장을 (아주 귀찮지만) 꺼내 보았다.  1학년 때 쓴 일기장은 벌써 30년이 되었다. 오래된 종이 냄새가 난다. 이 일기장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은 어린 시절 남은 나의 집착의 결과물이자 졸꾸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대략 이정도...


오랜만에 일기장을 꺼낸 김에 저학년 때 썼던 일기 몇 개가 재밌어서 사진을 찍어보았다. 저학년 때는 확실히 솔직했는데, 고학년이 될 수록 가식적이 된다. 특히 6학년에는 일기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이름도 지어주고 대화체로 썼는데 도저히 오글거려서 못 찍었다...


나는 내 짝꿍이 하루라도 안 왔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안 싸우길 바란다

사라는 못했고 다른 아이들은 참 잘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바비의 집을 갖고 싶었는데 책을 받은 슬픈 이야기


일기장과 관련된 나의 집착을 보여주는 두가지 기억이 있다.

기억1) 초등학교 1학년 (혹은 2학년) 쯤. 일기를 한참 쓰다가 맨 위에 한 줄을 비우고 썼다는 걸 알았다. 그때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법칙이 있는 줄 알았다. 바닥에서 누워서 울면서 그날 쓴 일기 전체를 지우개로 지웠다. 옆에서 엄마가 '지우지 않고 그냥 써도 되~'라고 하는데 나는 안 된다며 엉엉 울면서 지우고 새로 다시 썼다. 그 부분 일기장을 찾아보았는데 못 찾았다. 

기억2) 초등학교 6학년 말. 선생님이 지금까지 쓴 일기장을 모두 가지고 오라고 했던 것 같다. 각 분단 맨 뒤에서부터 일기장을 걷던 중이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옆 분단에 수북히 쌓인 일기장을 보고 순간 '나보다 일기를 더 많이 쓴 사람이 있어?' 하고 질투를 했다. 알고보니 그 수북한 일기장은 옆 줄 전체를 걷어온 만큼의 양이었고, 내가 쓴 33권의 일기장이 그 양보다 많다는 걸 알고 묘한 전율을 느꼈다.


나는 왜 이렇게 일기를 열심히 썼을까? 왜 그랬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그건 그 나이에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쉬운 길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을 기억하면 엄마는 항상 다운증후군인 남동생을 따라다니느라 지쳐있었고, 엄마 아빠는 자주 다투셨다. 행복한 기억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부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고 어린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일기쓰기와 책 읽기를 참 열심히 했다. 내가 이 두가지를 좋아하고 잘 했던 것은 참 다행이었다. 나는 책을 도피처로, 일기를 나의 분출구 삼아서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그래서 행복한 기억이 많지는 않았지만 내가 불행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내가 지금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강조하는 것도 책 읽기와 일기쓰기다. 읽기와 쓰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아이들에게 하라고 잔소리를 하긴했는데, 지금 이 글을 쓰며 내 어린 시절이 무의식중에 나를 지배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나와 다르게 일기쓰기를 아주 힘들고 귀찮아 하는데, 이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차이일 가능성이 크다) 글씨는 왜 이리도 날아다니는지... 


큰 아들 1학년 일기 (2년 전)... 그러나 내용은 재미있어서 찍어놨던 일기


제목: 꿈

                                                     -쓴 사람: 이수민

꿈을 꿨다. 꿈에서 내가 일어났다. 그런데 나만한 햄버거, 소시지 등등 음식들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왜 싸우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침대에서 일어났는데, 음식들 반이 모두 날 공격했다.

팀이 나누어져 있는 것 같았다. 음식 vs 음식이 돼었다. 나와 다른 음식들이 갇혀있을 때

어떤 음식이 벽을 부수고 왔다. 우리팀이였다. 나는 엄마 방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들켜서 잡혔다.

내가 아까 숨어 있을 때 봤는데 그 음식들이 풍기는 냄새를 맡으면 자기 팀이 돼는 음식이였다.

그런데 내가 그애한테 잡혔다. 그래서 난 숨을 참았다. 꿈 속이라 그런지 힘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팀이 된 척을 했다. 그리고 내가 우리팀을 공격하려고 하는 순간 내가 꿈에서 깼다.

다시 자고 싶어서 그 다음 이야기를 알고 싶다. 그런데 시간이 8:00 였다. 그래서 더 못 잘 것 같다. 끝.



도저히 쓸 이야기가 없다며 꿈 이야기를 쓴 것이다... 오랜만에 꺼낸 일기를 보면서 나는 내 아이와 30년 전의 말 잘듣던 나를 비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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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락실 안.

서로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시끄러운 오락실 안에서 어떤 여자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다. 왜 저 여자는 하필 이 곳에서 책을 읽고 있을까? 신기하게도 집중을 잘 한다. 페이지가 몇 장 넘어간다. 한 남자가 다가가 둘이서 뭐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다시 간다. 남자는 남자 아이들과 게임을 하고 여자는 다시 책에 집중하려고 애를 쓴다. 


#2. 주말의 어느 쇼핑몰 푸드코트.

주말이라 사람이 많다. 소란스러운 와중에 한 가족이 테이블을 어렵게 잡고 앉는다. 남편은 음식을 주문하러 간 것 같고, 세 아이들에게 둘러싸인 엄마는 책을 꺼내서 뭔가를 살핀다. 살피는가 싶더니 책을 넘긴다. 아이들은 아빠가 갖다준 진동벨을 가지고 서로 갖겠다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리고 엄마에게 그만 좀 보라며 눈치를 주고 간다.


#3. 어느 키즈카페

아이들이 뛰어 노는 키즈카페 안, 모든 엄마 아빠들이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심지어 대화를 하면서도 자꾸 핸드폰을 본다. 그 중에 한 엄마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책을 보는 모습이 보인다. 혼자 책에 집중한 무표정한 모습이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워 보인다.


이것은 실제 내 모습이다. 가끔 나를 저런 시선으로 사람들이 보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업무와 육아에 치여 책을 볼 시간이 없는 나는 쪼개진 시간을 활용하여 책을 본다. 전쟁같아 보이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일상이고 평온한 모습의 한 장면이다. 나의 일을 이해해주는 남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꾸 엄마를 불러대는 아이들에게 '딱 여기까지만 읽고 갈께~'라고 하는 엄마를 봐주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모든 틈새시간을 이렇게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읽지 않으면 시간이 없다... 고 하지만 사실 시간은 더 낼 수 있다. 집중하면 더 많이 읽을 수 있는데 자꾸 울리는 알람에 신경을 빼앗기거나, 아니면 핸드폰 확인이 습관이 되어서 더 빨리 읽지 못하는 것도 있다.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지만 내 맘 같지는 않다.


마음이 급하긴 해도 책을 읽는 시간이 나는 참 좋다. 읽고 난 책들이 한권 두권 쌓이다보니 이제 글을 쓸 때도 어느 책 어느 곳에 어떤 부분이 있는지도 쉽게 찾아서 글감으로 찾을 수 있게 되었고, 예전에는 어떤 사건이나 현상에 대해서 의문으로 가득하던 일들이 하나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도 변했지만 남편도 많이 변했다. 


읽은 책을 차에서 운전하는 남편에게 신나게 설명을 하면 남편은 재미있게 듣는다. 나를 보며 책을 읽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던 남편이 최근에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젯 밤에는 남편이 밤 12시가 넘어서 <포뮬러>를 읽는데,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과하게 동의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났다. 그러더니 새벽에 일어나 또 책을 읽는다 (남편은 나와 다르게 아침형 인간이다) 그러더니 아침에 내게 말한다. 사흘이면 책 한 권은 읽을 수 있겠다고. 집안에 동지가 생기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불현듯 드는 생각...

남편까지 책을 읽으면 오락실에서 애들은 누가 보지? 음식 주문은 누가 하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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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박사님 고작가님, 세 이사님들과의 점심식사에서 윤종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아주 오래전에 윤종신이 매달 1곡을 작곡하기로 결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까지 그것을 이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10주년 프로젝트를 위해 방송활동을 중단한다는 이야기, 예전에 놀러와에 신승훈과 윤종신이 작곡대결을 했는데 천재로 묘사되던 신승훈을 윤종신이 너무 쉽게 이겼다는 이야기까지. 결국 꾸준히하면 무조건 이기게 된다는 결론으로 이야기는 끝이 났다. (메시와 호날두에 비견되던 호나우딩요가 전성기 때 클럽에서 죽돌이로 살면서 자기관리를 못하더니 끝났다는 이야기는 덤)


예전에 내가 <1만시간의 재발견>을 읽고 쓴 글, '재능을 타고 났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화가 납니다' 에서도 말했듯이 "매일"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꾸준히 하고 있을까? 이것은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 나오는 습관과 정체성의 관계와도 연결된다. 나의 습관이 곧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내가 꾸준히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1.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인간이다

나는 체인지그라운드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 씽큐베이션에 2기째 그룹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기수가 3달동안 진행되는데 씽큐베이션의 특징은 1주 1책 1서평으로 굉장히 스케줄이 빠듯하다. 사실 나는 1주일에 책 한 권 읽는 것도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일이 주어졌고, 나는 하겠다고 나섰고, 잘 해내고 싶었다. 이렇게 나에게 책을 읽고 쓰는 완벽한 환경설정이 주어졌다.


2기 중반이 지난 지금, 세어보니 벌써 만 5개월, 주차로는 20주가 지났다. 그리고 나에게는 자식같은 서평 20개가 생겼다. 모든 서평이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시간에 쫒겨서 겨우 마감시간에 맞춘 것도 있고, 어떤 것은 급하게 썼는데 만족하는 글이 탄생하기도 했다. 어떤 것은 책 한 부분에 집중해서 썼고 어떤 것은 책 전체를 요약 정리하며 썼다. 하지만 한 가지 내가 한 약속- 매주 화요일 24시 전에 제출하겠다는 약속-은 한번도 어긴 것이 없다. 잘쓰고 못 쓴 것을 떠나서 지난 20주 동안 나는 이게 제일 뿌듯하다. 고백하지만 나는 원래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도 잘 하지도 않았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 덕분에 따라온 것은 사람들의 신뢰와 글쓰기 실력이다. 지식의 깊이는 조금 더 깊어졌고, 모든 것은 내가 해내야 하는 가장 중요한 능력인 의사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고작 5개월만에 일어난 일이다. 

*서평은 매주 이곳에 업로드하고 있다 (김팀장 브런치)


이번에 지인들과 30일 연속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글을 좀 더 쉽고 잘 쓰기 위해서다. 물론 사람들과 함께 하면 더 쉬워질 것이다.


2. 나는 달리는 인간이다

올해 2월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이것도 사실 나의 순수한 의지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 기획 컨텐츠를 만들어야 하던 압박 속에서 <순간의 힘>을 읽었고, 거기에 나오는 조시 클라크의 이야기가 내 마음속의 불을 지폈다. 함께할 동료 두명을 구했고, 3개월 후에는 불가능해보이던 5km를 뛰었다. 여기서 뛰는 것도 서평에서처럼 스스로와 한 한가지 약속이 있었다. 절대 중간에 쉬거나 걷지 않는다. 한번 뛰면 끝까지 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피곤하게 산다ㅋㅋㅋ)


마라톤이 끝나고 조금 헤이해지고 여름에도 들쭉날쭉하게 뛰긴 했지만, 그래도 달리는 습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요즘에는 조금 선선해져서 그동안 달리던 2키로를 3키로로 늘리고, 횟수도 더 자주 (2~3일에 한번씩) 뛰려고 한다. 나이키 앱으로 뛴 것만 벌써 68키로 누적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이 숫자가 적을 수도 있지만, 예전에 뛰는 걸 극도로 싫어하던 내가 이렇게 뛰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달리는 것이 즐거워졌다는 것이다.



3. 영어로 말을 잘하는 인간

내가 영상편집자로서 가진 가장 큰 특징은 영어 콘텐츠를 바로 편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수능점수에 맞춰진 영어공부를 했고 대학교 1학년 때는 토익시험 점수 500점만 넘으면 pass를 받는 수업을 fail하는 치욕적인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무의식이 있었다. 호주로 교환학생을 갔고, 호주 현지회사에서 인턴으로 일도 해보고 부산국제영화제와 아리랑TV에서 일을 했다. 프리랜서로 일 할 때는 영어 자막과 나레이션이 들어가는 영상을 제작 했고, 이후에는 온라인 영어교육업체에서 영상을 편집했다 (이때 문법을 제대로 공부했다). 좋아하는 미드를 엄청나게 소비하며 영어 리스닝 능력도 꽤 향상되었다. 쓰고 듣는 것은 어느 정도 해결되었지만, 나에게 부족한 것은 '말하기'라는 것을 안다. 안그래도 부족한데 기회마저 없으니 더욱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4일 전 부터 영어 말하기를 30분씩 연습하고 있다. 좋아하는 강연을 따라 말하는 연습인데 이게 좋은 이유는 강연의 흐름(글의 구조)도 함께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월드뱅크의 김용 총재의 대학교 강연을 반복하고 있는데, 15분 영상에 30분이 걸리니 시간이 적게 걸리지는 않지만, 아직 하기 싫다는 마음보다는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다. 이 미션의 환경설정은 핸드폰 촬영이다. (그래서 중간에 딴짓을 할 수 없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완전히 내것으로 만든 뒤에 다음 다음 영상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해보려고 한다. 하면서 방법을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개선해보려고 한다. 


세 가지 습관 모두 올해 시작한 것이다. 올해 말 다시 점검해보고 피드백을 받아봐야겠다. 불과 5개월, 7개월만에 글쓰기 달리기 실력이 이정도 성장했으니 앞으로가 더더더 기대된다. ^^





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