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육아2017. 4. 18. 23:01

잔소리 헐크.. 아이들이 부르는 내 별명이다. 

나는 삼형제 엄마처럼 안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럼 내가 항상 하는 말..

집에서는 애들이 저한테 헐크라고 불러요.


나는 목소리가 작은 편이다.  말 수도 적고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육아는 나의 이런 성격과 취향을 전혀 반영해 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집에 데려와 재울 때까지의 약 일곱 시간동안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큰 소리로" 이야기 해야한다. 아이들 셋이 요구사항을 동시에 이야기 하기 때문에 시장 바닥같은 우리집에서 내 목소리를 듣게 하려면 어쩔 수 없다.


일단 집에 들어오면 신발 정리, 옷 정리, 손씻기 발닦기, TV 40분 보고 스스로끄기, 밥먹기, 양치하기, 세수하기, 눈감고 잠자는 것 까지(불을 끄고 누워도 쉬지 않고 떠들고 장난을 치고, 싸운다)... 

책을 읽어주려고 해도 일단 셋이 들고 오는 책이 다르고, 서로 먼저 읽어달라고 실랑이를 한다. 읽어주는 도중에도 수현이는 질문이 많고, 수민이는 마음이 급해 빨리 뒷장으로 넘기려고 하고, 수빈이는 자꾸 나에게 노래를 부르라고 소리친다. 나는 노래를 부르다가 책을 읽다가 수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한다.


집에 돌아오는 순간부터 모든 것을 간섭하려다 보면 밤이 되면 멘탈이 탈탈탈~ 털리는 기분이다. 아직 스스로 행동을 절제할 수 없는 아이들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가끔 너무 힘든 순간들이 있다.  

몇 번을 이야기 하다가 반응이 없으면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가끔은 나도 모르게 작은 일에도 소리부터 지른다. 내가 너무 자주 화를 내다보니 아이들도 이제 면역이 되어서 놀라지도 않는다. 오히려 킬킬거리며 "으악 엄마 또 헐크로 변신했다!"며 도망간다...


문제는 나의 이런 화내는 모습을 수민이가 닮았다는 거다. 나의 잔소리의 대부분은 큰 아들 수민이에게로 향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동생들은 어리다고 허용이 되는 부분들도 분명히 있기만, 초등학생 씩이나 된 수민이는 왜 이리도 잔소리할 것이 많은지...


아침마다 제일 늦게 일어나서 천천히 아침을 먹고, 천천히 옷을 입고, 천천히 세수와 양치를 한다. 중간중간 멍하게 있거나 딴 짓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나의 재촉과 성화에 9시 10분 전에야 간신히 집을 나선다. 빨리 하라고!! 지각이라고!!!!!

(그나마 학교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왔으니 다행이다...) 

그 상황에서 수민이는 꼬박꼬박 말대답하며 (엄마는 왜 그러는데!) 나를 더 분노하게 한다.


행동이 느린 건 날 닮았는데, 나의 급한 성격과 달리 수민이는 너무나 느긋하다. 그래서 자꾸 부딪히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수민이 학교에서 학부모 참관수업이 있었다.


수민이가 맨 뒷자리에 앉아있어서 나는 수민이 바로 뒤에 서 있었는데, 왜 이렇게 자세가 바르지 않고, 딴 짓을 하고, 머리를 꼬고 발표는 안 하는지!? 

참관수업이니 간섭을 안하려고 애를 써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결국 나는 1시간 수업을 참지 못하고 중간 중간 수민이를 건드렸다. "똑바로 앉아" "네임펜을 지우개로 지우면 어떻게 해?" "사물함에 가서 물티슈 가지고 와." "종이 구기지 마"


수업이 끝나고 수업데 대한 설문조사가 있었는데, 내가 대부분 중, 하에 체크한 것에 비해 다른 엄마들은 대부분 중과 상에 체크가 되어 있었다. 내 옆에서 자기 아들 산만하다며 한탄했던 엄마마저!

교실을 나와서 다른 엄마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괜찮아요. 학교만 재밌게 다니면 되죠~" 한다. 아니! 이건 내가 하던 말인데!? 나는 겉으로 쿨한 엄마인 척 하다가 내 아들이 그런 모습을 보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나보다. 막 입학한 1학년 남자아이들이야 산만한 것이 당연한데 말이다.


나를 반성한다. 이래도 괜찮고, 저래도 괜찮다고 해 줘야지.


하지만 이렇게 다짐한 날 저녁, 수민이 친구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수민이가 친구 옷 앞뒤에 싸인펜으로 낙서를 잔뜩 해놨다고, 또 수민이가 말하길 오늘 친구랑 싸워서 보건실에 갔다 왔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수업시간에 짝꿍이랑 장난쳐서 수민이만 자리가 바뀌었다고 했고, 또 며칠 전에는 선생님한테 뛰었다고 혼났다고 했고...

모든 것에 나름 이유는 있다고 하더라도, 하아.... 아들은 내 마음이랑 너무 다르구나.

요즘 수민이를 보면서 고개를 좌우로 젓고 있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 녀석으로 인해서 속상해 하고 있하면 다른 녀석이 예쁜 짓을 하며 나를 힐링해 준다는 것.

막내 수빈이는 자기가 잘못을 하면 "미안해요"하며 나를 쓰다듬으며 사과를 한다. 웃긴 표정으로 나를 웃기려고 애를 쓰고, "하트 뿅! 하트뿅!"하며 하트를 발사한다.

둘째 수현이는 워낙에 바른생활 사나이라 혼날 일이 별로 없다. 외출하고 돌아오면 손이랑 발을 얼마나 야무지고 꼼꼼하게 잘 닦는지... 혼자 목에 수건을 두르고는 왼손으로 야무지게 잡은 채 오른 손으로 세수도 잘 한다. 말은 얼마나 예쁘게 하는지 "엄마 짱 예뻐! 엄마 지구에서 제일 좋아! 제일 사랑해!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 커피 맨날맨날 사줄꺼야" 하는데, 수현이를 보면 매일 나를 어떻게 기분 좋게 해줄까 연구하는 것 같다.


지난 주말, 현충일 (2017-04-15)

웃기고 싶은 수빈이, 사랑받고 싶은 수현이

같은 형제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셋이라 힘들면서도 셋이라 참 다행인 이 아이러니함... 


'일상 >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민이와의 시간, 엄마와의 시간  (0) 2017.06.12
큰 아이의 학교생활  (2) 2017.05.31
정신없던 적응기를 보내고...  (0) 2017.03.31
수민이의 강렬한 입학 신고식  (2) 2017.03.04
나의 연구대상 수민이  (2) 2017.03.04
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3. 31. 12:58

 수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 한동안 마음이 바빴다.



예전에는 남편이 출근길에 아이들 셋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내가 오후 4시쯤 광역버스를 타고 코엑스로 가서 차로 셋을 한꺼번에 데리고 오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수민이의 하교 시간과 동생들의 하원 시간이 겹치면서 스케줄이 꼬이기 시작했다.

특히, 문제는 수민이가 돌봄교실에서 집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다. 다들 4~5시에는 집에 가는데도 그 시간에 데리러 가면 수민이는 왜 이렇게 일찍 왔냐고 울먹거린다.

수민이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도 그랬다. 5~6시에 데리러 가도 (그 시간이 이른 시간은 아닌데도) 어린이집에 더 있겠다고 "항상" 떼를 썼다. 내가 데리러 가면 동생들은 반색을 하면서 나에게 와서 안기는데, 수민이는 나를 보면 그 즉시 얼굴이 울상이 된다. 왜 이렇게 일찍 왔냐며... 매일 반복되는 수민이의 그 표정은 잊을 수가 없다. "힝~" 하면서 눈을 아래로 깔며 입꼬리 양쪽이 아래로 내려가는 그 얼굴...


그래서 아빠가 야근을 안 하는 날에는 내가 먼저 동생들을 데리고 가고 혼자 어린이집에 8시까지 있다가 아빠랑 같이 버스를 타고 오곤 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수민이가 돌봄교실에서 웃으면서 집으로 올 수 있을까. 집에  빨리 오고 싶어하는 수현이와 수빈이를 적당한 시간에 데리고 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까? 잘 때도 눈을 감고 생각했다. 

일단 첫 일 주일에는 생각나는 여러 방법을 실험해봤다

<방법1> 4시반쯤 수민이를 돌봄교실에서 픽업-> 수민이랑 광역버스를 타고 코엑스로 가서-> 다같이 차를 타고 집으로 온다.


첫 며칠은 수민이를 어르고 혼내면서 억지로 데려 갔는데,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데리고 가는 것도 서로 스트레스였고, 
나 혼자 가는 것보다 느린 수민이를 데리고 갔더니 시간이 배로 걸렸고, 
매일 코엑스까지 왕복 시간이도 수민이에게는 소모적이었다.


<방법2> 수민이 소원대로 돌봄교실에 남아 있으라고 하고-> 혼자 동생들을 데리고 와서-> 동생들과 학교에 가서 수민이를 데리고 온다.

이 방법은 6시까지 시간을 맞춰 오는데 늦을까봐 내가 너무나 조급했다. 그 시간까지 남아있는 수민이 하나 때문에 퇴근을 못 하시는 돌봄선생님께도 죄송했다. 
또 동생들을 데리고 또 형을 데리러 가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하루는 아이들을 데리고 형을 데리러 가는데 집과 가까운 학교 쪽문과 후문이 모두 잠겨 있어서 멀리 돌아가야 했고, 
다음 날에는 학교 정문 근처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려니 주차도 문제였고, 정문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했다...


이틀 동안 혼자 얼마나 불안해 하며 시간에 쫒기겼는지, 아이들은 동시에 왜 이리 찡찡대는지..., 

특히! 그렇게까지 수민이에게 맞춰줬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에도 안가겠다는 수민이는 나를 너무 짜증나게 했다. 


계속 이렇게 노심초사 하며 지낼 순 없었다. 
실험 4일 차 저녁, 나는 진절머리를 내며 바로 태권도 학원에 전화를 했다.

돌봄교실에서 픽업을 해준다는 태권도장으로! 


결론적으로 우리는 세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동생들을 데리고 올 동안,
돌봄교실에 있는 수민이는 태권도에서 4시 40분쯤 픽업-> 태권도 한 시간 수업-> 차량을 타고 집 근처에서 하원을 한다.

나는 6시 15분쯤까지만 집으로 오면 되니 너무나 여유로웠고, 깔끔했다.


큰 형이 돌아올 시간에 나와 동생들는 미리 나와서 집 앞에서 30분정도 씽씽카를 타며 산책을 한다. 하루 대부분을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수현, 수빈이에게도 소중한 시간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더 있었다.
내가 (일주일에 한 번) 촬영을 있는 날은 판교에서 6시에 끝나서기 수민이의 태권도 하원시간에 맞춰서 가기에 불가능했다. 주위에 부탁할만한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것도 역시 학원의 힘을 빌려야 했다.


마침 동네에 *세돌 바둑학원이 있어서 지난 주말 태권도 학원을 둘러보며 바둑학원도 들러 상담을 받았다.

태권도 끝나고 바둑학원에 갔다오면 7시...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데 아이를 너무 학원으로 돌리는 게 아릴까 싶은 걱정은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내가 촬영이 있는 날은 내가 빨라야 7시에 도착하므로 어쩔 수이 둘째 주 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 바둑학원도 보내게 되었다.


그나마 매일 가는 건 아니고, 무엇보다 수민이가 원하고, 바둑학원을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는 것은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수민이는 전에 다니던 태권도에서 형들이 장난으로 하는 바둑을 등 넘어 배워와서 나랑 초등 바둑책으로 공부하기도 했고, 친가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바둑을 두기도 했었는데, 집에서는 바둑을 두고 싶어도 상대가 없었다. 그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던 상황에 수민이에게는 너무나 좋은 시간이 되고 있다.


이 와중에 또 다행인 것은 태권도 학원과 바둑학원 사이에 작은 찻길을 건너야 하는데, 태권도 사범님이 길을 건너 건물까지 데려다 준다는 고마운 사실....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서 나는 이러한 학원 시스템에 대해 찬양하게 되었다. 특히 엄마가 풀타임으로 일을 하고, 아이를 어딘가에 맡길 곳이 없는 상황에서는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학원이란 존재는 너무나 친절하게 엄마들의 필요를 알아서 해결해준다. 필수불가결한 공생관계로 자리잡았달까... (전에 내가 그랬듯이) 사교육에 대해 무조건 비판만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교육을 찬성하는 건 아니다. 공부와 관련된 학원은 보내지 않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이들은 밖에서 뛰어노는 게 최고인데 너무 학교와 학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닌지...'에 대한 미안함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어쨌든 심심한 것 싫어하는 수민이에게는 딱 맞는 스케줄이라 위로한다. 


어쨌든 한 달이 지나가니 이제 이런 시스템도 안정이 되어간다. 

이제 수민이도 학교에 혼자서 등교하고, 태권도 사범님이 돌봄교실로 수민이를 데리러 가니 수민이가 군소리 없이 가고, 동생들은 여유롭게 집에 돌아오고, 매일 이렇게 산책을 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하다.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우리에게 최선의 방법을 찾은 것 같다! ^^


                                                                      ↑ 내 뒤에 수현이 표정이 포인트!




'일상 >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큰 아이의 학교생활  (2) 2017.05.31
잔소리 헐크  (6) 2017.04.18
수민이의 강렬한 입학 신고식  (2) 2017.03.04
나의 연구대상 수민이  (2) 2017.03.04
참 좋았던 미술학원  (4) 2016.12.17
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3. 4. 01:30

수민이가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런데 한 반에 37명이 9반이나 됐다...! 우리가족 처럼 생각하고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 이사온 집들이 많았나 보다. 교실 부족으로 교장실도 교실로 개조했다고 했다. 


수민이한테 입학식 소감을 물어보니, 담임선생님이 할머니라 시험이 쉽게 나올 것 같다고... (이사 오기 전에 다니던 태권도장에서 형들에게 너는 어린이집 다녀서 좋겠다. 시험 안 봐서 좋겠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등교 첫 날!

수업은 12시 20분에 끝나는데, 수민이는 돌봄교실을 신청했기 때문에 돌봄교실에 있으면 내가 3시쯤 데리러 갈 계획이었다. 첫 날이니까 일찍 데리러 갈까 싶기도 했지만, 첫 주는 담임선생님이 돌봄교실로 데려다 주신다고 했으니 크게 걱정은 안 하고 있었다.

 
그런데 1시 반쯤 콜렉트콜이 걸려 오더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끊어진다. 그 뒤로 또, 또 전화가 왔다가 그냥 끊어진다. 

'이건 수민이다' 

수민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 직감하고, 담임선생님께 전화했더니 전화를 안 받으셨다. 선생님께 "수민이 돌봄교실 잘 갔나요?" 문자를 남기고 급하게 채비해서 학교로 가보려는데 다시 콜렉트콜이 걸려 왔다. 이번엔 안 끊어지고 제대로 연결됐다. 수민이다.

"엄마 왜이렇게 안와.." 흐느끼는 수민이의 목소리...


왜 돌봄교실에 안 갔냐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기는 아니라고 했단다. 이게 무슨 일이지?

미친듯이 학교로 뛰어가는데 다리가 풀렸다. 아직 학교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수민이가 자기가 어디있는지 설명을 못해서 나는 정문으로 후문으로... 전화기가 있는 곳을 찾아서 뛰어다녔다. 그 와중에 어떤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애가 잠바도 안입고 밖에서 울고 있길래 같이 반에 올라가 옷과 가방을 챙겨서 같이 내려온다고...

교실로 올라갔는데, 길이 엇갈려 정문에서 겨우 수민이를 겨우 만났다. 눈물은 그치고 멍한 수민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옷도 안입고 밖에서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까. 1시간이 얼마나 길었을까. 가슴이 너무 아팠다. 

 
돌봄교실로 가서 확인을 해보니 담당 선생님이 이수민은 당연히 여자라고 생각하고 성별을 여자라고 적어서 담임선생님께 전달했던 것이다. 하필 같은반에 여자 이수민이 있었고, 담임선생님은 여자 이수민을 데리고 가다가 엄마를 만나서 보냈다는 것.. 


약 1시간 10분동안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아들은 교실에 혼자 남아 기다리다가 아무도 없으니 무서워서 밖으로 나와서 엄마를 기다렸다고 했다. 엄마는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오고... 그 와중에 학교 안에 비치되어있는 전화기를 발견했는데, 어떤 형이 콜렉트콜로 전화하는 것을 등 너머 보고는 따라서 전화한 거다. 

그런데 콜렉트콜은 상대방이 목소리를 확인하고 아무 버튼이나 눌러야 하는데, 수민이는 자꾸 뭐라고 뭐라고 하니까 그냥 중간에 끊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는 울고 있었는데, 어떤 형 둘이 와서 "왜 울고있니?"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형들이랑 콜렉트콜을 시도했는데, 수민이가 또 중간에 끊으려고 하니 형들이 계속 들고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 해주었다고 했다.

그러다 어떤 엄마를 만났고, 같이 교실에 가서 옷을 입고, 가방을 챙겨서 나오다 나를 만난 거다.


나는 너무 속이 상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울면서 담임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돌봄교실 담당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했다. 담당선생님은 뭐라 드릴 말이 없다고 너무 죄송하다고 하셨다... 원망은 됐지만 이미 일어난일인데 어쩌겠나.. 
 
내가 돌봄교실앞에서 울면서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는 돌봄교실에 아이를 데리러 온 1학년 다른 엄마가 나보다 더 눈물을 흘렸다. 다 같은 입장이라 감정이입이 잘 되나보다.. 그 상황에서 누군가 공감해준다는 게 어쩐지 고마웠다.

 
 
상황이 정리가 되고, 충격을 받았을 수민이를 데리고 집에 가려고 했더니, 이 상황에 수민이는 이미 돌봄교실 들어가더니 놀고 있었다. 이미 조금 전에 상황은 다 잊어버린 듯, 자기는 더 놀다 가겠다며 이따 오라고 했다. 3시에 다시 데리러 갔더니 더 이따 오라고.. 

결국 4시에 다시 갔는데 선생님이 2학년 형, 누나들에게 준 곱셈 문제를 다 풀고, 기어이 3학년 문제까지 받아와 동생들 데리러 가는 길 버스정류장에서 쪼그려 앉아 풀고 있다.. 내 아들이지만 참 연구 대상이다. 


이 사건으로 학교에 가기 싫어하면 어쩌나 했던 생각은 쓸데없는 생각이었다. 그 뒤로도 수민이는 학교와 돌봄교실을 모두 좋아했다. 오히려 데리러 가면 안 가고 더 놀겠다고 하는 특이한 상황이 매번 연출되었다. 


 
어쨌든, 등교 첫날 우리는 여러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호된 신고식을 제대로 치렀다.

이제 겨우 첫째 초등학교 입학식인데, 앞으로 얼마나 사건 사고가 많을 것인가!

다음 날, 수민이를 도와주었던 엄마한테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는데, 앞으로 놀랄 일 많을 거라는 말이 인상에 남는다.


걱정은 한아름 되지만 한편으로는, 수민이가 가르쳐 주지 않았던 콜렉트콜을 스스로 걸었던 것을 보고 아이가 상황을 스스로 헤쳐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움을 주었던 형들과 엄마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도움을 주는 선한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도 생겼다.


그날 저녁만해도 속상해서 눈물이 났는데, 보름 정도 지나고 나니 그 감정도 희미해져서 별 일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울었나 싶다...


'일상 >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소리 헐크  (6) 2017.04.18
정신없던 적응기를 보내고...  (0) 2017.03.31
나의 연구대상 수민이  (2) 2017.03.04
참 좋았던 미술학원  (4) 2016.12.17
수민이의 태권도 1년... (국기원에 가다)  (4) 2016.12.03
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7. 3. 4. 01:20

아들 셋을 키우는 건 역시 만만치는 않다.

제일 힘든 건,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지독하게 계속 할 때, 그리고 아이들 본인이 하지 말아야 되는 걸 알면서도 기어이 할 때...  예를 들면 싸움 놀이가 점점 과격해질 때, 주차장에서 뛰어갈 때 "이제 그만 해, 천천히 가, 엄마랑 같이 가, 멈춰!!!!" 


내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내 말이 들리는 것 같지 않다.

이건 남자아이들이라서 더 그런걸까? 셋 중에 수현이는 또 수민이랑 정반대의 성격을 보이니 이게 모두 남자라서 그렇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나를 자꾸 화가 나게 하는 주인공은 주로 큰 아들 수민이이다. 


하이라이트 사건 몇 가지...

1. 친정집에서 옥탑방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아래로 1000ml 우유팩을 던져 계단 전체가 우유 폭탄을 맞았던 사건 (계단을 내려가던 수빈이에게 전달한다고 던졌는데, 터지지 않자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올라가 더 세게 던짐)


2. 코*스 가족화장실에서 수현이와 내가 용변을 보고 있던 중, 혼자 남자 화장실로 갔다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민이가 화장실 밖에서 문 열림 버튼을 자꾸 누르다 기어코 화장실 문을 열었던... 나의 치욕스러웠던 사건... (하지말라고 하면서도 속으로 설마 열릴까 했는데 계속 누르니 열렸다... 너무 짜증이 나도 눈물이 나더라)


3. 발렌타인데이날 아빠가 회사에서 받아온 초콜렛을 발견하고 자기꺼라고 찜해놨는데, 동생이 먹어버리자, 어린이집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다 아빠 양복 단추를 뜯어버린 사건...  

이 날 아빠는 화를 집까지 참고 돌아와 수민이를 한참을 훈육했다. (20분동안 손들기+반성문)

<반성문>

"아빠 죄송함니다. 외 죄송하냐면 단추도 뜯고 그리고 짜증내서 죄송합니다.

다음부터 안 그러겠슴니다. 죄송합니다."

2017년 2월 14일 이수민 드림


일련의 사건들을 옆에서 목격 하면서 발견한 수민이의 공통점은 뭔가 끝까지 하려는 기질이 있다는 거다. 그만 하라고 해도 계속 하는 이 모습이 나를 화가 나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 는 없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목적의식이 굉장히 뚜렷해서 뭐든지 끝까지 열심히 한다는 것.


세계여행을 하는 보드게임을 몇 주동안 매일 몇 시간씩 매달려서 했고, 한동안은 체스에 빠져 밤마다 아빠를 붙잡고 했고, 어린이집 친구들이 한자를 공부했다며 자기 전에 꼭 한자사전을 엄마 아빠에게 들고 와서 혹은 혼자서 책을 펴고 공부를 한다. 바둑에 관심을 보여 어린이 바둑책을 사줬더니, 한동안 저녁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둑 문제를 풀었다.


어린이집에서 체육 시간마다 하던 줄넘기를 잘 하기 위해서 밤마다 나가서 줄넘기를 연습을 한다. 내가 동생들을 데리고 나가기 힘드니까 같이 못 나간다고 했더니 혼자 기어코 나가서 줄넘기 500번을 채우고서 들어온다.


혼자 나가서 줄넘기 하는 수민이


외할아버지가 구구단을 틀리지 않고 다 외우면 돈을 준다고 했더니 며칠만에 9단까지 다 외웠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때, 구구단 못 외운다고 칠판에 이른도 적혔었는데... 내 아들이지만 너무 신기하다. 


이렇게 이것 저것 열심히 하는 아들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몰입을 잘하는 수민이가 좋아하는 최고봉이 게임이라, 나는 수민이가 커가면서 게임에 너무 빠질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지난 설 연휴 때 친척들과 놀다가 알게된 포켓몬고 게임을 지금까지 하는데, 집에서는 아예 게임을 못하니 이모를 아바타 삼아 포켓몬을 잡고 매일 수시로 보고를 받는다. 

어린이집에서 쓴 일기장을 봤더니, 내용이 포켓몬 잡는 내용이 많아서 나를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다. 심지어 그림일기 주인공이 포켓몬을 잡고 있는 이모의 모습...


2007년 2월 8일 - "어제는 버스 타고 집 에 갔는데 이모 랑 카카오톡 했다. 그리고 이모 가 포켓몬 나왔다 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잡았어? 했는데 이모가가 겨우겨우 잡았다 고 했따. 그리고 지금 잡은 숫자 는 240 이였다. 그리고 골덕을강화했다. 그리고 골덕 이 504 가 됫다. 그리고 나중에 외할머니 집에서 만나자 고했다. 재미있었다. 그리고 줄넘기 했다. 끝~"

2007년 2월 9일 - "어제는 내가 카카오톡 했는데 이모가 카카오톡 문자를 안보내서 그냥 삭제 했다. 그래서 또보네 서 기다 렸다. 그리고 근데 또 안보냇다. 근데 왜 안보냇냐 면 포켓몬 1마리 잡느라 그런 것이었다. 근데 이름 은 몰르는데 불새 다. 그리고 흰색 인데 다 발이 날카 롭 고 사나운 녀석 이였다. 그런데 이모 가 겨우겨우 잡았다 고 했다. 그리고 숫자는 369 였다. 이모 가 엄청 힘들다 고 했다. 그리고 도 잡았는데 걔는 316 이였다. 걔 이름은 네루미 였다. 이모 가 힘들다고 했다. 재미있었다. 끝~"

(수민이 맞춤법, 띄어쓰기 그대로 옮겨 적음)


별 이야기 아닌 것으로 이렇게 길게 쓰는 것도 참 신기하고 재밌으면서도 걱정이 된다. 

이제 초등학교에 가면 핸드폰이 있는 친구들이 생길텐데 어떻게 막아야 하나? 사실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일단 남편과 나는 수민이가 초등학생일 떄는 절대로 핸드폰을 사주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엄마의 관점에서 교육적으로) 좋은 일은, 이모랑 매일 카카오톡을 게임처럼 하더니 띄어쓰기, 맞춤법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수민이는 포켓몬 이름 외우면서 한글도 쉽게 떼었는데 이제는 포켓몬이 맞춤법까지 가르쳐 준다. ㅋㅋㅋ


카카오톡 할 시간 10분 줬는데 이모가 답장이 없자....

수민이 톡에서 극도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이런 수민이가 이제 막 어린이집 졸업을 했다. 


'당찬 자신감상'                   어린이집 같은반 친구들 14명 중에 이수민 세명...

                                    (우리집 수민이는 남수민으로 불렸다)

졸업식 날, 친구가 선물로 준 과자를 동생들에게 하나도 양보 안하고 혼자 다 먹은 수민이...

동생들을 울리면서도 끝까지 혼자 다 먹은 의지의 사나이....


초등학교를 가면 이런 수민이 기질이 어떻게 발전될까? 

부디 (엄마의 관점에서) 바람직하게 자라주기를... 하지만 지금도 안 듣는데 크면 얼마나 말을 안 들을지...ㅠㅠ 차라리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는 것이 나의 정신 건강에 좋을 수도 있겠다.ㅋ

'일상 >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신없던 적응기를 보내고...  (0) 2017.03.31
수민이의 강렬한 입학 신고식  (2) 2017.03.04
참 좋았던 미술학원  (4) 2016.12.17
수민이의 태권도 1년... (국기원에 가다)  (4) 2016.12.03
독신주의자 이수민  (2) 2016.09.26
Posted by kimberly
일상2017. 2. 15. 22:10

이사와서 첫 눈이 왔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어느날 아침...


아침부터 밖이 시끌벅적 해서 밖을 내다보았더니, 집 앞 언덕길이 썰매장이 되어 있었다.  


우리집 앞 마당~ 슬로프가 길게 이어진다



그런데 정작 우리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있어서 썰매를 탈 수 없었다. 눈 앞에 썰매장을 두고 바라보기만 할 수 없어서 하원 길에 이마트로 들렀다. 썰매를 서서 집에 오니 밖은 이미 깜깜해져 있었다. 

썰매타겠다고 이미 바람이 든 아이들에게 안 된다고 할 수 없어서 몇 번 탔고 들어가려는데, 너~무 추웠다. 칼바람에 동생들은 바들바들 떨길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더니, 수민이는 혼자 더 타고 간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두고 집으로 들어가 창문으로 봤는데 얼마나 혼자 잘 타던지!


수민이가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가 다섯 번만 타고 오랬는데, 사실은 일곱 번 타고 왔다며 씩 웃는다. 


혼자 야간 썰매를 즐기는 수민이


다음날이 토요일에는 12시에 결혼식이 있어서 빠듯한 시간 속에서 잠시 썰매를 탔다. 이 때는 슬로프가 너무 북적여서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고~ 수민이는 어젯 밤이 좋았다며 아쉬워 했다.



한 번 더 눈이 왔는데, 이 때는 설 명절 기간이라 연휴가 끝나고 와보니 썰매장이 (아이들이 하도 타서)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집 앞에 이렇게 좋은 놀이터를 두고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지 놀 시간이 없다는 비극적인 현실...ㅋ


눈이 녹기 전 토요일에는 아이들과 밖에서 놀고 싶었는데, 수민이는 (아빠랑 체스에 빠져서) 썰매타러 가는데 시큰둥했다. 나가자고 채근을 하다가 결국 수현이만 데리고 나와서 둘이 놀았다. 이 시간이 온전히 눈을 즐겼던 유일한 떼였다. 둘이 눈사람도 만들고, (수현이가 해보고 싶었다던) 눈 위에서 누워보기도 했다. 



수민과 수빈이는 나중에 아빠랑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아빠가 썰매에 둘을 태워 과격하게 끌다가 수민이는 벤치에 이마를 부딪혀 혹이 나서 울면서 들어갔다. 

막내 수빈이는 약간 감기 기운이 있었는데 이 날 찬 바람을 쐬어서 그런지 당일 저녁부터 갑자기 폐렴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 (심한 기침과 열) 어린이집 이틀을 쉬었다.....ㅠ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집 앞에서 눈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다.


서울에 살던 때는 눈이 오면 차나 사람이 미끄러질까봐 걱정이 먼저였고, 사람들은 눈 치우기 바빴던 것 같다. 하도 제설제를 뿌려대서 눈은 금방 사라지고, 지저분해진 눈만 기억에 남는다. 


비록 밖에서 실컷 놀지는 못했지만, 창문 밖으로 이렇게 눈을 실컷 구경해봤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 좋다. 

역시 이사오길 잘했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봉준호 감독의 디테일한 리더십  (0) 2020.03.02
4월의 봄  (2) 2017.05.08
업그레이드 된 프리랜서의 일상  (0) 2017.02.05
헤어질 때 인사는 더 잘 하자  (2) 2017.01.23
드디어 이사를 하다  (4) 2017.01.05
Posted by kimberly
일상2017. 2. 5. 01:22

연말이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지난 12월도 참 바빴다.

이사를 하고, 집 정리도 했고, 영어동화책 인터넷 강의 편집도 쌓여있었고, 막판에 종무식 영상까지... 


<한국*소년연맹> 종무식 영상 

(영상제작문의는 imkimberly.com으로)


너무 바빴다.

가장 큰 원인은 지난 10월부터 하고 있던 영어 동화책 인강 편집 때문이었다. 전임자가 그만두고 내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삼개월 정도 공백이 있었는데, 편집이 하나도 안 된 상태로 촬영분이 쌓여있었다. 편집이 완료되어야 완성본 시간에 따라 선생님들의 페이가 지급되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었던 상황... 촬영하고도 6개월 정도 급여가 밀려있었던 상황이었으니 선생님들 입장도 이해가 갔다.

매월 초에 지결을 올리기 때문에 11월 초에 한 분 해결하고, 12월 초에 한 분 해결하고... 이런 식이었는데, 12월에는 이삿짐 정리와 종무식 영상 편집도 해야 했고, 수현이는 A형 독감에 걸려 일주일간 어린이집 등원을 못했고... 이 일에만 집중하지 못 한 내 상황 탓도 있다. 

그래서 (내 잘못이 아니었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어떤 사명감에 죽도록 일했다. 1월 초에 지급해 드리기로 약속한 선생님과의 약속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막판에는 새벽에도, 주말은 물론 크리스마스도 반납하고 일만 했다. 


내가 일에 올인하면서 가장 크게 피해를 본 건 남편과 아이들이었다.

남편은 나름 연말에 휴가도 많이 냈는데, 나랑 한번 데이트도 못하고 영화관은 커녕 밤에 VOD로도 영화 한번을 못 봤다. 아이들과도 제대로 못 놀아줬다. 저녁마다 나에게 매달려 있는 아이들을 떼내느라 미안하고 힘들었다. 

수민이에게는 나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번 주까지만 봐달라고 했더니, 나중에 수민이가 누군가에게 "엄마는 2016년까지는 못 놀아준대." 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리도 거의 못 하고 집 근처 반찬가게를 이용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 주부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 한다는 죄책감이 얼마나 들었던가.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에게 5시반에 저녁을 준다는 것! 

그리고 어머니도 오셨고, 양수와 하린이도 집에 놀러와서 1박을 하며 아이들과 놀아줬고, 남편의 휴가기간동안 남편이 아이들의 등하원도 맡아서 해 주었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1월 초에도 선생님께 급여 지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주위에서 이해해주고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해서 그런지, 기존에 촬영되어 있던 영상들의 편집이 모두 끝난 이후에는 나의 급여에 대한 인상 요구도 모두 받아들여졌고, 설날에는 회장님이 특별히(?) 새해 선물도 보내주셨다. 

사실 100%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것도 너무나 감사한 일인데, 뭔가 인정받는 느낌이라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의 특별했던 보리굴비... (내가 회사에서 명절 선물을 받게 되다니)


그리고 매 주 1일 강의 촬영도 시작했다.


(이렇게 찍어서, 이렇게 편집한다)


혼자 촬영을 다 해야 하는데, 첫 날은 장비도 익숙하지 않았고 모든 게 다 처음이라 정신없이 하는 바람에 실수도 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금새 익숙해져서 어려움 없이 하고 있다.

판교까지 가야하는 게 처음에는 부담이었는데, 이것도 아침에 아이들과 남편과 함께 나서서 삼성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갔더니 수월하다. 매일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다가 사람들도 만나고 바람 쐬는 느낌이라 오히려 좋기도 하다.


매일 아침, 아이들과 남편이 정신없이 나가면 나는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이 느낌이 참 좋다. 

일한다는 명목하에 우리집 밥상은 나의 손길이 덜 가게 되었지만 (이게 나의 가장 큰 딜레마) 그래도 너무 완벽하려고 애쓰지 않으련다. 다만 지난 연말처럼 모든 걸 다 뒤로하고 일만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 

우선순위는 우리 가족이라는 것,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명심하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4월의 봄  (2) 2017.05.08
썰매장이 된 앞마당~  (0) 2017.02.15
헤어질 때 인사는 더 잘 하자  (2) 2017.01.23
드디어 이사를 하다  (4) 2017.01.05
미친 스케줄...  (0) 2016.11.05
Posted by kimberly
일상2017. 1. 23. 21:03

관악구에서 초등학교 3학년 부터 살았다. 결혼하고는 6년을 더 살았다. 

너무나 익숙하던 이 동네를 떠나니 그동안 친숙해진 것들과 단 칼에 자르듯이 관계가 끊어지는 느낌이다.

 

자주 가던 동네빵집과 아이들 사정까지 잘 알던 짠하던 미용실, 아이들 이름도 다 외우던 소아과, 아이들이 얼룩진 옷을 깨끗하게 해주시던 세탁소 아줌마, 비올 때 우산을 빌려주고 농사지은 토마토도 주시고, 이사간다고 하니 너무 아쉬워하던 단골 커피숍, 아이들의 미술학원과 태권도학원, 그리고 어린이집까지...


특히 우리는 이 어린이집을 꽉 채워 5년을 매일 같이 다녔는데,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떠난다고 마냥 아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떠나서 홀가분한 마음도 들었는데, 그 이유는 지난 9월 초에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다.


당시 어린이집에서 원장선생님이 컨트롤할 정도를 넘어선 대형 사건이 있었다. 당시 내가 어린이집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사건에 개입하게 되었는데, 일주일 간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자세하게 기록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생길 그 어떤 일말의 사건의 소지도 만들고 싶지 않다)

수현이네 반 학부모들에게 확인 전화를 했고, 상황을 설명했고, 수민이네 반 엄마들 몇몇과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서로 입장을 조율했다. 원장 선생님과도 오랜 시간 이야기했고, 또 당사자들과 삼자대면을 하고, 툭 건들기만 해도 눈물을 쏟는 선생님을 위로했다. 구청에도 전화를 했고, 교회 집사님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위원회를 열어 내가 직접 진행을 하고, 70명이 넘는 어린이집 학부모 전체에 "위원장이 보내는 글"을 적어 보냈다. 문서는 남편이 초안을 작성했고, 내가 수정했다. (이 모든 과정에서 남편은 의지가 많이 됐다) 


이 모든 일이 일주일 동안 이루어졌는데, 나는 이 일주일 동안 일년 동안 할 말을 다 쏟아낸 것 같다. 목감기에 걸렸었는데, 점점 더 심해져 목소리가 나지 않는 상황에서 쉬고 갈라진 목소리로 억지로 계속 이야기를 해야 했다. 애증의 일주일이 지나 결국 사건은 잘 봉합이 되었다. 


나는 이 일을 통해 대표자라면 철저하게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 또 도저히 풀릴 것 같지 않은 엄청나 보이던 사건도 들어주는 자세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다보면 사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똑똑한 척 혼자 사건을 해결하기보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것.


이 때 내 목소리를 듣고 커피숍에는 내가 너무 안쓰럽다며 커피숍에서는 따뜻한 레몬차를 서비스로 주셨었는데 너무 감동적이었다. 맛은 더 감동이었다...


어쨌든, 사건은 평화적으로 해결이 되었지만 나는 이미 극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했고, 이후로 여러 엄마들을 신경쓰다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우리 이사 날짜 다가오던 것이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그래도 세 아이 모두 이 곳에서 친구들을 처음 만나 아기때부터 같이 자랐고, 나도 엄마들이랑 친분이 두터워졌고, 위원장도 약 2년을 했는데, 그냥 떠나기엔 인연이 너무 깊었다. 그냥 훌쩍 떠날 수는 없어서 작은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아이가 셋이니 준비해야 할 선물도 50개...

저렴하면서도 실속있으면서도 엄마와 아이 다 좋아할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만 하다가 시간이 계속 지나갔다.


이틀 전에야 줄넘기로 결정을 하고 주문하려고 했더니, 택배 도착 시간이 아무래도 불안했다. 전 날 직접 사러 홈플러스에 갔는데, 인터넷에서 본 물건 값보다 2배 이상에다가 물량이 9개밖에 없었다는... 홈플러스 안을 배회하면서 뭘 살 까 고민하던 중에 친정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동대문으로 가자고.


엄마랑 데이트도 할겸 동대문으로... 결국 창신동 문구센터까지 가서 줄넘기, 장갑, 마스크와 과자를 각 반에 알맞게 골라서 구입했다. 엄마는 안 써도 되는 돈을 쓸데없이 쓴다고 했지만, 나는 이럴 때 안 아끼고 쓰려고 돈을 번다.

 

친구들에게 준비한 선물들

일일히 포장하기 힘들어서 작은 메세지만 붙였다.

(수민이 친한 남자친구들 다섯명만 줄넘기라 그것만 포장)


어린이집 마지막 날 하원 때는 아이들과 나보다 선생님들이 많이 우셨다. 특히 지난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수현이네 반 선생님이 너무 흐느껴 우셨는데 나까지 눈물이 났다... 나는 선생님들께 선물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선생님들마다 선물을 준비해 주셔서 죄송하고 감사했다.

손자를 하원시키려고 현관에서 기다리시던 한 할아버지께서는 나더러 왜 이렇게 인기가 많냐며 국회의원에 나가라며.. ㅋㅋ 

이렇게 어린이집과는 이별을 했다.


태권도 관장님께도 따로 인사 드렸다. 수민이는 태권도 관장님이 라면을 제일 좋아한다며 평소에도 사드리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한 박스를 사다드리기로 했다. 재밌었던 건, 수민이랑 태권도 건물에 있는 마트에서 컵라면을 고르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 라면을 사러 내려오신 관장님과 딱 마주쳐서 관장님이 민망해 하시기도 했다. ^^

 

같은 빌라 건물에 살던 여덟 집에도 방문해서 약소한 선물을 드리고 감사인사를 전했다. 평소 아이들도 예쁘게 봐주셨고, 아이들 시끄럽다고 불평 한마디 듣지도 못했다. 201호 할아버지는 아쉽다고 아이들 간식도 잔뜩 사다주시고, 601호 아주머니는 고구마 한박스를 가져다 주셨다.^^

 

이렇게 bye-bye인사는 끝!

처음 시작을 잘 하기도 어렵지만 잘 끝을 맺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인사할 곳이 많다보니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 점점 숙제같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하고 나니 마음은 편했다.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지만, 또 사람 인연은 모르는 일이기도 하고...


이사온 지 한달이 지났는데, 정이 많은 수민이는 지금도 태권도장과 전 어린이집이 그립다며 가끔 꿈을 꾼다고 했다. 관장님이랑 태권도장에 꼭 놀러오기로 약속했는데 언제 가냐고 성화고...

그래서 2월에 한번 놀러가기로 했다. 365어린이집을 신청하려고 했는데, 서울시민이 아니라 이용할 수가 없다고 해서 그냥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친구 집으로 놀러가기로 했다.

 

한 곳에서의 오랜 시간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의 경험이 나에게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지표가 된다. 당분간은 너무 많은 것에 연류되지 않고 조용히 살고 싶지만, 수민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또 어떻게 될 지는 모르겠다. 

기대보다는 사실 걱정이 되지만, 여기서도 좋은 이웃들을 만날 수 있을 거다. 사람사는 게 다 비슷하지 뭐...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썰매장이 된 앞마당~  (0) 2017.02.15
업그레이드 된 프리랜서의 일상  (0) 2017.02.05
드디어 이사를 하다  (4) 2017.01.05
미친 스케줄...  (0) 2016.11.05
집에 대한 고민의 끝! (1) - '사야하나? 팔아야하나?"  (2) 2016.10.25
Posted by kimberly
일상2017. 1. 5. 13:40

11월 11일과 12월 19일, 우리는 결국 이틀에 걸쳐 이사를 했다. 

일주일 간 보관이사를 할 예정이긴 했는데, 이렇게 늦어질 줄 몰랐다.


이사갈 집의 준공이 앞당겨져서 보관이사를 하지 않게 되길 바랬지만 그건 바램이었을 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뿐더러 오히려 준공이 늦어지는 대 참사가 발생했다. 이 한 달 동안 우리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친정집에서 지내느라 의식주 중에 먹고 자는 것은 괜찮았지만... 내 집이 없으니 문제가 한 두개가 아니었다.


-----------------

<문제1> 옷과 생활용품의 부족

아이 하나가 쓸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엄마들은 알꺼다. (아빠들은 잘 모름) 

계약서 상 이사 날짜만 믿고 우리는 짐 딱 일주일치만 챙겨서 나왔다. 그런데, 짐이 창고로 간 지 며칠이 지나고서야 준공이 늦어졌다고 집 주인에게 연락을 받았다. 


어린이집 소풍 가는데, 도시락이 없어서 반찬통에 보냈고, (이건 그나마 낫다) 

어린이집에서 김장을 담근다고 앞치마를 보내라는데, 없어서 어른 앞치마 두개와 보자기... 를 보냈고,

수민이 태권도 소풍을 가는데, 간식을 담을 가방이 없어서 할머니 레스포삭 가방으로 보냈다. (수민이가 비닐봉지는 안된다고.. 어린이집 가방도 안 된다고... 하지만 가보니 비닐봉지와 어린이집 가장에 가지고 온 아이가 있었다!! 역시 사람 사는게 다 비슷하다!!! )


가장 큰 문제는 옷이었다. 

초겨울 날씨에 나왔기 때문에 날은 추워지는데 두꺼운 겉옷을 한 벌씩만 챙겨나왔다. 

그것도 수현이 옷은 작아진 옷을 가지고 온 바람에 입을 옷이 마땅치 않은데다 수빈이는 여름용 샌들을 신고 나왔다... (이 아이는 그 때까지 샌들을 고집하며 신고다녔는데, 나는 수빈이 신발을 생각도 못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은 수민이 친구 엄마가 아이 옷이 작아졌다며 수현이의 잠바와 수빈이의 신발을 주셨다. 이 엄마는 우리의 이런 상황을 전혀 몰랐는데도 이렇게 우리한테 딱 필요한 물건이 생기는 걸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는 생각이 든다. 

또 나는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이 없어서 옷을 사야 했고, 옷에 뭘 자꾸 묻히는 수민이는 더러운 잠바를 입고 다녔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빤 날은 하필 자동차가 문제가 생겨서 얇은 잠바를 입고 지하철을 타고 갔다....


<문제2> 주차

한 달 동안 주차 문제만 생각하면 아직도 골치가 아프다. 

친정집은 골목길인데다 언젠가부터 근처에 있는 길이 번화하면서 집 앞에 주차할 곳이 없다. 그래서 남편은 골목을 한참을 올라가서 산 밑에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구석자리를 찾았다. 하루에 몇 번씩 왔다갔다 해야했기 때문에 번거롭긴 했지만, 그래도 남한테 피해주지 않고,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곳에 일주일 정도 주차를 하던 어느 날, 새벽 1시가 다되서 연락이 왔다. 신고가 들어와서 지금 차를 빼지 않으면 견인해 가겠다고!!! (이 시간에 신고를 하다니 사람들 참 매정하고 야박하다...ㅠㅠ) 이날 따라 남편은 워크샵을 갔고, 나는 밤에 혼자 가기 무서웠고... 친정아빠가 대신 차를 가지고 와서 옆집 빈 주차 공간에 주차를 하셨는데, 새벽 2시반에 또 전화가 왔다. 차 빼달라고... 이 날 밤, 나는 너무 짜증이 나서 밤새 잠을 안 자고 지금 당장 이사할 수 있는 집을 검색했다. (과태료는 4만원이 나왔다.)


그 뒤에는 구민체육센터 주차장에 주차를 했는데, 밤 10시반에 아이들 재우고 있는데 또 차를 빼라고 연락이 왔다. 역시 안하면 견인해 가겠다는 협박을... 바닥에 페인트 칠을 칠해야 한다나.. 

그 뒤로는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기로 했다. 집 근처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주차공간이 있는데, 다둥이 할인도 받을 수 있고 비싸지 않아서 좋긴 좋은데, 문제는 자리 경쟁이 심했다. 낮에 가면 괜찮았지만, 저녁 7시부터 아침 9시까지 무료이기 때문에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올 무렵에는 오후에 가면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이 곳에 주차를 하지 못할 때는 친정집 앞에 그냥 바싹 대는 수밖에 없었다. 주차난민이 따로 없었다. 매일 밤 불안했다. 


<문제3> 어린이집

기존에 다니던 어린이집을 11월까지 다니기로 했기 때문에, 12월부터는 친정집에서 남편 회사까지 매일 등하원을 해야했다. 

남편은 탄력근무를 신청해서 아이들 셋을 데리고 10시까지 출근을 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는 첫 일주일간은 나도 같이 출근을 해서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아이들을 데리고 왔고, 그 이후에는 오후 4~5시까지 가서 아이들을 차로 데리고 왔다. 

하루는 차에 엔진 비상등이 켜져서 정비소에 갔다 오느라고 남편은 아이 셋을 데리고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기도 했다. (오늘 길은 내가 데리고 왔는데, 감사하게도 사람들은 우리에게 참 친절했다.)


어린이집 등하원길을 한 시간씩 두시간을 길에서 소비하고, 퇴근시간이 겹쳐서 엄청 막히기도 하고, 아이들 셋이 차에서 난리라 (차에서 장난치고 물건을 던지고 때리고 울고 뭐 달라고 찡찡거리고) 나는 가만히 있으라고 소리를 지르다 못해 짜증과 우울의 극치를 경험했다.

-----------------

이사가서 얼마나 좋으려고 이러나? 남편이 말했다.

이사갈 이 집이 우리랑 안 맞는 게 아닐까?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집을 찾아볼까도 생각해 봤다. 안그래도 우리가 너무 급하게 계약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던 참이었다. 우리 옆에 준공되는 집은 코너라 빛이 더 잘 들어와서 더 좋아보였기 때문에... 알아봤더니 월세에 방이 두개이고, 무엇보다 준공이 더 늦었다.

그래도 우리집만한 집이 없었다. 초등학교를 산책로로 걸어갈 수 있는 공원 바로 옆!!라인이 아닌 다른 집이라면 우리는 이사할 이유가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도 하나님이 이 집에 대한 생각을 고쳐주신 게 아닐까 싶다. 다른 집에 대한 아쉬움도 깨끗하게 사라지고, 이 집이 가장 좋은 우리 집일 수밖에 없게 생각하도록 만들어 주신 느낌이다.


그냥 집은 이 집으로 하되, 한 달동안 이렇게 된 상황에 대해 보상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보상 문제도 여러 우여곡절이 었었지만, 어쨌든 집주인에게 우리의 상황을 설명하고, 남편이 집주인에게 보상금을 먼저 제시해달라고 이야기해서 원만하게 해결되었다.

나는 보관이사를 하면서 이사를 두번하는 비용이 너무 아까웠는데, 덕분에 이사 비용의 반이 해결되었다.


한 달 동안 나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친정집 옥탑방에서 살았다. 나는 은근히 친정 엄마와 부딪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사실 내가 뭘 가릴 처지도 아니었다. 엄마의 그늘 아래서 나는 집안일을 거의 안 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엄마아빠도 아이들이 북적대는 걸 은근히 좋아하신 것 같다. 수민이는 할아버지가 용돈을 주신다고 해서 일주일 사이에 구구단을 다 외웠다. 

친정 부모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살았을까! 생각하기도 싫다. 비빌 언덕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또 10월 중순부터 운전을 시작한 나는, 좁은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주차를 했고, 직장어린이집으로 옮긴 이후로는 올림픽대로와 남부순환로를 오가며 운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이사를 나오기 전에는 집 주차장에 한번에 주차를 못하고 버벅거리던 내가 (뒤에 차가 오면 어쩔 수 없이 동네 한 바퀴를 돌기도 했) 지금은 비좁은 골목길에서 혼자 일자주차도 잘 한다. 

너무 자신감이 충만한 나머지, 밤에 후진하다가 전봇대에 부딪혀 차 뒷면을 찌그러뜨린 게 뼈아픈 실수지만, 그래도 남의 차를 긁는 일이 생기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오히려 전봇대가 나한테 약을 준 것 같아서 고맙다. 


이제 이사한 지 3주차, 아직 추워서 밖에서 많이 놀지는 못했지만 우리 모두 새로운 집을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집 창문에서 찍은 사진!- "이걸 위해서 왔다!"



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6. 12. 17. 10:19

우리 동네(지금은 아니지만) 나의 단골 커피숍에서는 미술품 전시와 판매를 함께 했다. 

여름에는 커피숍과 같은 건물에 있던 미술학원의 아이들 작품을 전시했는데, 내가 미술학원에 대해 갖고 있던 나의 고정관념과 많이 달랐다. 하나하나의 작품들이 모두 재밌고 개성이 있었다. 무엇보다 이 곳은 아이들의 작품이 모두 달랐다. 


왼쪽 아래는 아이들이 자기만의 이야기와 그림으로 만든 동화책~

 인상깊었던 곤충 만들기

협동작품으로 만들었다는 환상의 섬~ 


나는 이 아이들 작품만 보고는 우리 아이들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특히, 형에게 늘 스스로를 비교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감성적이고 예민한 수현이와 그림을 그리거나 표현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수민이 둘다 미술학원에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있던 터였다. 

일단은 수현이만 보내고 싶었는데 (수민이는 태권도를 다니니)  수민이가 이 미술학원에 다니는 어린이집 친구 둘이 재밌게 무언가를 만드는 사진을 보고는 본인도 다니겠다고 졸랐다. 


원장님과 상담을 받아보았더니 내가 느꼈던 것 처럼 획일화된 미술학원과는 달랐다. 

특이한 점은 한 반이 최대 4명으로 소규모로 진행이 되고,  (수민이네 반은 세 명, 수현이네 반은 네 명)

1년에 네 학기로 나뉘어 학기 별로 주제를 정해서 운영된다는 것. 


9~11월 마침 새 학기가 시작되었고, 우리 이사 예정일 전에 끝나는 일정이라 바로 그 주부터 시작했다.  


<식재료 탐색 후 과일/채소 얼굴 만들기-수현>



<상자로 우리 집 만들기-수현>



<내가 상상하는 자동차 아이디어 스케치 후 만들어 보기-수민>


<우주를 그려보고, 로케트 만들기 -수민>


<우드락으로 도장을 만들어 거북이 등딱지 표현하기 -수현>


<정글의 소리를 들으며 친구들과 탐험지도를 그려보고, 나만의 뱀을 만들어 보물찾기 놀이> 


<친구들과 구슬길 만들기-수민>

선생님 feedback : 

"수민이는 이번 시간에 친구들과 협동하는 구슬길을 만들었답니다. 아이디어스케치 단계에서 치훈이와 같이 고민을 하면서 여러 트랙이 있는 재미있는 구슬길을 그려냈답니다. 박스를 색칠하는 과정에서는 붓도 써보고 손도 써보면서 여러모로 다양한 기법을 스스로 찾아내어 실행하였답니다. 구슬을 굴리면서 뭐가 더 필요한지 고민도 해보고, 친구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선뜻나서서 해주는 수민의 배려심이 잘보였던 수업이었답니다"


<도시소리를 들어보며 다양한 재료로 나의 길 만들기-수현>

선생님 feedback: 

"수현이는 다양한재료를 탐구하면서 내가 다니는 길을 찬찬히 기억해내며 도입부에 들려준 도시소리를 연상하며 도화지에 수현이만에 재미있는 길이 완성되었답니다. 

덥고 차가운 목욕탕을 잘 표현해주었으며, 거북이 친구를 나의 작품에 더함으로 한층 더 재미있는 길이 되었으며, 크레파스로 거북이가 사는 환경을 조성해준점이 인상 깊었고, 부드러운 천의 촉감으로 거북이가 살고있는 바다의 이름을 부드러운 바다라고 칭해준 점이 참 기억에 남습니다^^ 글씨가 적힌 리본끈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연상시켜 '중국' 이라는 나라 또한 만들낸점이 훌륭했답니다.

그외에도 기찻길 및 표지판등 주어진 재료를 이용하여 수현이가 바라보고 생각하는 세상이 멋지게 표현되었답니다."


<보호색을 띄고 있는 자료사진들을 보고, 수민이는 부엉이를 선택해 부엉이와 망토 만들기-수민>



<방패와 검을 만들어 보고, 탐험놀이-수민>


<사랑하는 대상(호랑이!)을 위한 케이크를 그려보고 실제로 만들기-수현>


<내가 살고싶은 나라-수민>


선생님 feedback:

수민이는 이번수업시간에 내가 만들고싶은 나라라던가 살고싶은 나라에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는과정에서는 용암이 아래에 흐르고 착한사람과 나쁜사람이 싸워 착한사람이 이기는 세상을 그렸습니다.

이어 수민이의 착한사람과 나쁜사람이 싸워가는 세상을 클레이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클레이의 여러가지 색을 이용하여 착한사람이 나쁜사람을 물리치러 가는 길 즉 '용사의 길'을 표현한 점이 너무 인상깊었으며, 수민이의 작품중 갈색종이컵이 붙어있었는데 빨간클레이로 나의 모습을 만들어내어 갈색종이컵이 텐트라 힘들면 이곳에와서 쉬어도 된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작품내에 불어넣어줬습니다.

마지막에 수민이가 만든 길의 끝에 마치 포탈처럼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동그란 원을 만들어주었는데 이는 곳

최종보스한테로 가는길이라는 얘기를 덧붙임으로써 훨씬 더 멋진 수민이만의 클레이 세상이 완성된것같습니다.


<도자기 찰흙으로 만들고 싶은 것(오토바이)을 만들어 보고, 가마에서 구워낸 작품 확인-수현>


<도자기 찰흙으로 만든 수민이의 개구리 컵-수민>


<흙으로 재밌는 세상 만들기-수현>


선생님 feedback:

이번 흙 놀이 수업에서 수현이가 생각하는 재밌는 세상들을 꾸려나가 보았습니다. 

수현이가 지난시간 도자기 수업에서 물을 많이 묻혀 묽어진 흙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많이 힘들었는지

"이번엔 물 안 묻힐거예요!" 이러는 모습에 너무 사랑스럽고 지난 시간에 힘든 와중에 열심히 한 모습이 더더욱 대견해 보였습니다^^ 넓은 작업 공간에서 지렁이 굴이 있는 지렁이 섬으로 시작한 수연이는 다리를 이어주기도 하고, 친구들이 만든 응가 나무에 열매를 맺어주면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마늘 다지기 기구를 이용하며 날아다니는 파스타와 듬성 등섬 수풀을 만들고 넓은 공간에 자유롭게 활동함에 즐겁게 수업하였습니다.


<나무를 만들고 단풍잎을 물감에 물들여서 붙여보기-수현>


<비오는 날 물감과 크레파스로 그림그리기- 수현>


<카멜레온의 보호색 표현하기- 수민>


수현이는 처음 미술학원 가던 날에는 자신이 잘 못할 것 같다며 자신감이 없더니, 나중에는 미술학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수업을 한 다음날에는 선생님이 사진과 장문의 피드백을 카톡으로 보내주셨는데, 이런 부분도 참 좋았다. 


다만 두 아이들이 미술학원에 다니면서 나의 스케줄은 바쁘고 복잡해졌다. 

수민이가 미술학원가는 화요일에는 태권도를 한 시간 당겨 3시반 타임으로 보내야 했는데, 그 시간에는 태권도장에서 픽업이 안되서 내가 직접 데려다 줘야했다. 3시10분에 수민이를 데리고 태권도에 데려다주고, 4시 반에 수민이와 수민이 친구를 미술학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어린이집으로 가서 수현, 수빈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미술학원이 끝나는 7시에는 친구 엄마나 형이 수민이를 데려다 주었는데, 가끔 동생들을 집에 두고 내가 뛰어갔다 올 때도 있었다. 

수현이가 미술학원에 가는 목요일에는 3시10분에 미술학원에 데려다주고, 4시반에 다시 미술학원으로 데리러 갔다가 5시 전에 수빈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갔다. 


내가 설마, 벌써 애들 학원 픽업하느라 이렇게 바빠질 줄이야... 

마음 한 구석으로 비판하고 있던 헬리콥터맘이 된 기분이다. 특히 사교육을 지양하자던 내가 어느새 아이들 사교육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시키고 있다니 내 마음에 양 극단이 교차했다. 이상과 현실이 부딪히는 느낌.


사실 싼 편이 아닌 학원비 두 명 분 삼개월치를 한꺼번에 내야했기 때문에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좋다고 생각하니 비용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영어유치원을 반대하는데, 그 곳에 아이들을 보내는 엄마들도 나의 마음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는가. 아이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 때문이다. 


이번 일로 한 가지 느낀 것은 사교육에 노출되지 않겠다는 나의 결심과 실제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조건 사교육을 반대하는 것보다 중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준은 아이들이 좋아해서 다니는 건지, 아니면 부모의 의지로 억지로 다니게 하는지가 될 것이다.  

하지만 학원비이나 등,하원의 어려움 외에도 미술학원은 나에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수민이가 미술학원을 같이 다니는 두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길래 한 번 초대하게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그 날 이후로 미술학원 끝나고 두 친구들이 우리집으로 오는 것이 코스가 되었다. 수민이 친구들은 미술학원보다 끝나고 우리 집에 오는 것을 더 좋아하고 기대하게 되었다.


처음엔 아이들끼리 잘 노니 좋고, 밥 먹이는 건 어차피 밥상 차리는 거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남편도 항상 늦을 때라 저녁 9시 반쯤 가는 것도 괜찮았지만... 

하루는 수민이에게 샤워를 하는 날이라고 했는데, 친구들도 하겠다고 해서 하루에 남자 아이들 다섯을 씻긴 적도 있었다. 아이들 다섯이 발가벗고 뛰어다니는데, 그 모습이 가관이었다. ㅋㅋ 밥도 은근히 신경써서 차려야 하고, 아이들 놀거리도 제공해줘야하고, 간식도 챙겨줘야 하고 점차 마음의 짐이 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사가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ㅠ


그래도 수업 자체는 참 좋았다. 어쨌든 이래저래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었다. 
이사하는 곳에도 이런 미술학원이 있으면 보내고 싶지만,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일상 >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민이의 강렬한 입학 신고식  (2) 2017.03.04
나의 연구대상 수민이  (2) 2017.03.04
수민이의 태권도 1년... (국기원에 가다)  (4) 2016.12.03
독신주의자 이수민  (2) 2016.09.26
아빠와의 관계  (0) 2016.07.17
Posted by kimberly
일상/육아2016. 12. 3. 01:25

수민이가 태권도를 다닌 지 1년 하고도 4달이 지났다. 

처음 수민이는 어린이집의 같은 반 친구와 다녔는데, 그 친구는 몇 달 뒤에 그만두었다. 그런데도 수민이는 아는 사람 하나 없이 혼자서 참 잘 다녔다. 


학부모 참관수업 (2016년 6월)


몇몇 조그만 사건들은 있었다. 

친구가 자기 손을 손톱으로 꾹 눌렀다며 속상해하던 일도 있었고,

한 번은 태권도 시작 전에 초등학생 형에게 "야"라고 잘못 말했는데, 상대방 아이가 왜 형한테 '야'라고 하냐고 따지자 수민이는 순간적으로 안 했다고 했다가 거짓말쟁이로 몰렸다고 했다. 그 형과 친구에게 말로 공격당하고 (돼지가 등장하는 어떤 말이었는데 잊어버림), 그래서 구석에서 혼자 쪼그려 앉아 울었다던 이야기... ㅋ (관장님은 아이들 픽업에서 돌아오시는 중이라 못 보신 듯) 

이 일이 있던 날, 집에 돌아와 내 품에 안겨 울었다. 이 일은 수민이에게 상처였는지, 이제 태권도를 안 가겠다고하더니, 그 이후로는 자연스럽게 풀어져서 또 잘 다녔다. 


이런 일들이 초반에는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다툼에 대한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 맛있는 것도 나눠먹고, 형들이 게임이나 바둑하는 걸 구경하면서 친해진 것 같다. 바둑 두는 걸 등 너머 배워오더니 이제는 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바둑도 둔다. 소풍도 매 달 꼭 신청을 해서 신나게 놀다온다. 


태권도 소풍~

(놀이기구 재밌었다고 하더니 혼자 얼었음)


수민이가 여섯 살이던 작년 어느 날에는, 하원할 때 태권도 차량을 놓쳐서 혼자 집을 찾아온 적도 있다. 도장에서 형들이 게임하는 걸 구경하다 늦게 내려왔더니 태권도 차가 없어서 혼자 집까지 걸어왔다고... 씩씩하게 집에 와서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그 자리에서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나 짠하면서도 다행이었던 사건이었지만... 무엇보다 혼자 집에 찾아왔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그 뒤로 나와 길이 엊갈려서 허겁지겁 달려왔을 때도 혼자 태연하게 집에 용변을 보고 있었고,

가끔 친정집에 동생들을 먼저 데려다 주고 수민이를 데리러 오는 길이 늦었을 때는 혼자 집에 들어와 손 씻고, 발 닦고, 옷도 갈아입고, TV를 보고 있다. 이렇게 하라고 (그러면 TV를 볼 수 있다고ㅋㅋ) 미리 일러 주긴 했지만 너무나 기특하다. 내가 없으면 더 잘하는 것 같다.


태권도를 다니면서 (의도치 않게) 수민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신체 능력도 좋아지다보니 자신감이 많이 커졌다. 

예를 들면 어린이집 같은 반에 친구를 신체적으로 공격하는 일이 많은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어린이집 상담시간에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그 아이와 싸울 수 있는 아이는 21명 아이들 중에 수민이밖에 없다고 하셨다. 어디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다.


이사를 간다고 했더니, '이렇게 좋은 태권도가 어디에 있냐며' 어린이집에 대한 애착보다 태권도 때문에 이사를 가기 싫어할 정도...

그런데, 수민이가 태권도와 멀어지는 한 가지 사건이 생겼다. 이유는 국기원!


빨간띠 이후에는 국기원에 가서 승급심사를 통과해야 품띠를 딸 수 있다. 문제는 품띠를 따려면 1장부터 8장까지 모두 외워야 한다는 것. 내 눈에는 너무 복잡해 보이는 이 동작들을 7살 아이가 정확하게 외워야 한다고?  

띠를 따기 위해 태권도에 다니는 것이 아닌데 이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승급심사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사가 결정되고 생각해보니, 새로운 태권도장에 가게 되면 공인 인증된 품띠가 있어야 될 것 같았다. 1년 넘게 태권도를 배웠는데, 새로운 태권도장에서 흰띠가 될 수는 없다!

지난 7월에 신청을 했는데 수민이가 부담이 컸는지 미루고 싶다고 했다. 관장님은 할 수 있다고 시켜보자고 했지만, 내가 억지로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관장님한테는 내가 너무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것처럼 비춰졌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 때 나는 아이를 존중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뒤가 문제였다. 

보통 3개월마다 한번씩 국기원에 가고, 국기원에 갈 친구들은 한 달 전에 신청을 받는데, 수민이는 3개월 전에 신청한 셈이라 관장님이 수민이를 유독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신 것 같다. 틀리면 혼을 자주 내고 엄하게 가르치신 듯... 이번에는 잘해서 꼭 통과하자고 하는 마음이셨겠지만, 수민이는 정말 많이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그 사이에 국기원의 승급심사를 하는 주체가 바뀌어서 심사가 까다로와질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토요일에 품새특강을 하는 걸 가서 보면 한 동작 한 동작 까다롭게 훈련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승급심사 날이 가까워질수록... 품새를 하는 화, 목요일에는 (특히 관장님이 수업하시는 목요일에는) 전 날 밤부터 태권도에 가기 싫다며 울었다. 잘 못해도 괜찮다고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다. 한 번은 어린이집에서 태권도 가기 전에 태권도에 가기 싫다고 너무 운다고 선생님이 놀라서 전화를 한 적도 있다. 그 날은 결국 태권도에 안 가기도.


이렇게까지 품띠를 따야하나? 

여기가 갈등의 포인트였다. 관장님 말씀대로 푸시를 해야하나? 그냥 또 순순히 취소를 해줘야 하나?

여러 날의 고민 끝에... 해보기로 했다. 


삼개월 동안 수민이는 토요일마다 품새특강도 갔고, 이제 품새도 거의 완성됐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미 한 번 안 하겠다고 해서 들어줬는데 이런 상황이 다시 반복되다 보면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쉽게 포기하는 것이 습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힘들게 노력해서 얻는 성취에 대해서 느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10월 16일, 대망의 심사 날!!


(좀 좋은 카메라 가지고 가서 찍었으면 좋으련만. 흔들리고 너무 작고...ㅋ)

이 날 심사로 선택된 품새 1장... 8장까지 힘들게 외웠는데 1장.. ㅋ

(대련 심사하러 이동 중)

대련을 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두 번 찬 사람한테 관장님이 체크 20점을 준다고 했는데,

상품에 눈이 먼 수민이는 필사적으로 두번을 차는 데 성공했다. 


작년과 비교하면 얼마나 의젓해졌는가!

불과 1년 전의 꼬마 수민이.. ㅋㅋ (2005년 8월)


이번에 나는 육아에서 중심을 잡는 경험을 한 것 같다. 

아이의 말을 들어줘야 하나, 아니면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밀어붙여야 하나? 양 극단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 탔다. 어떻게 해야하나? 한번 경험으로 결론을 낼 수는 없지만 일단은 아쉬움이 덜 남는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수민이 말대로 국기원을 안 가고 이번에도 포기했으면 너무 아쉬웠을 것 같다. 시도해 보지도 않고 실패한 기어으로 남았을 듯. 품띠를 받은 수민이도 자긍심이 대단하다.


그리고 태권도 1장부터 8장까지의 연속시범은 수민이의 최고 장기가 되었다. 이제 각이 딱 잡혔다. ㅎㅎ

(잊어버리기 전에 동영상으로 찍어놔야겠다)



(코엑스에 놀러갔다가 공짜로 찍어준 잡지 표지!)

'일상 > 육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연구대상 수민이  (2) 2017.03.04
참 좋았던 미술학원  (4) 2016.12.17
독신주의자 이수민  (2) 2016.09.26
아빠와의 관계  (0) 2016.07.17
너무 다른 세 아이들 (7, 5, 3세)  (2) 2016.06.18
Posted by kimber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