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들어 수민이가 많이 의젖해졌었다.
삼년은 엄마가 키우라더니 정말 삼년이 지나니 이제 해 뜰날이 오는 건가!
가끔 떼를 쓰긴 하지만 시간이 짧고, 설명하면 알아듣는다.
내가 뭐라고 하면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네. 알겠어요."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하고,
밖에 나갔다오면 스스로 손도 혼자 씻고, 퇴근한 아빠에게 "아빠, 옷 벗고 손 씻어야지!" 잔소리부터 한다.
특히 한 가지 놀라운 변화는, 예전에는 "엄마 쉬! 쉬!" 하면 수현이 젖을 물리다가도 얼른 뛰어가 수민이를 화장실에 데려가기 바빴는데 요즘에는 혼자 할 수 있게 된 거다. 지금은 혼자 화장실에 가서 바지를 내리고 문 앞에 있는 쉬 통을 들고 쉬를 한 다음, 쉬통을 변기에 버리고, 계단을 밟고 세면대에서 쉬통을 헹궈 놓기까지 한다.
잠 잘 시간이 되면 예전에는 안 잔다고 울고 찡찡댔을 텐데, 이제는 수현이를 재우려고 누우면 자기도 잔다며 혼자 불을 다 끄고 들어와 눕는다. 여기에 자기가 어질러 놓은 장난감과 책들을 정리해 놓기까지... "정리해야겠다" 하면서...
(감동..ㅠㅠ)
어린이집에서도 너무 잘 한다고 칭찬받고, 요즘 나는 스스로 수민이를 참 잘 키웠다며 셀프 칭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의젖하던 수민이가 통제불능이 되었다.
지난 주말에는 오랜만에 시댁에 가서, 소정이 누나, 수환이 형아랑 자전거도 타고 너무 재밌게 잘 놀았다. (형님네 가족도 최근 어머니댁 근처로 이사옴)
잘 노는 건 좋은데, 시댁에가면 수민이는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나의 통제와 잔소리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형 누나랑 침대에서 춤추면서 뛰다가 떨어져 쌍코피 터짐.. ㅋ
잔소리를 하는 경우는 이런 경우다. 과자를 먹거나, 밥을 제때 먹어야 한다거나, 티비를 보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너무나 당연한 이 잔소리가 수민이도 여기서는 자기 편을 들어줄 사람이 많다는 걸 아는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남편은 한 번씩 풀어주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고, 나도 뭐 괜찮겠지 했다. 사실 나도 잔소리 안 하고 그냥 두면 편하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풀어준 다음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참 힘들다.
아토피 떄문에 매일 목욕을 해야 되는데, 씻으려고 할 때마다 안 씻는다고 소리지르며 우는 바람에 4일째 목욕을 못 하고...
일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려고 하는데, 수민이는 안 간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결국 수민이를 두고 가면 아버님이 월요일 오전에 데려다 주신다고 해서 그냥 왔다.
엄마 없이 잘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잘 시간이 되니 엄마를 찾으며 신발신고 엘레베이터 앞에 가서 우는 바람에 결국 밤 12시에 남편이 인천으로 수민이를 데리러 가는 상황 발생.. ㅋ
통제불능의 상태는 특히 집에 돌아와서 더 심해진다.
월요일 아침에는 어린이집에 안 간다는 걸 겨우 달래서 나가려는데, 큰 장난감을 가지고 가겠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안된다고 실랑이를 하다가 나한테 꿀밤을 두대나 맞았다. 진짜 화 안내고 잘 살았는데... ㅠㅠ
그래도 울어서 수현이를 안고 현관에서 기다렸다. "다 울면 나와." 그제서야 울면서 간다고 나온다. 서로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어린이집 골목에 다 왔는데, 마이쭈를 사러 가겠다며 어린이집을 안 간다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골목 끝까지 나와서 데리고 가려는데, 발버둥을 치고 운다. 안되겠어서 슈퍼가서 마이쭈를 사러 가기로 했는데, 또 이럴 때는 돈도 없다. 마이쭈를 사기위해 은행에 가서 출금을 하고.. 손에 마이쭈가 쥐어지니 수민이 하는 소리가 "마이쭈 사니까 기분이 좋잖아. 이제 어린이집 가도 좋잖아." 한다.
이왕 늦은김에 가는 길에 있던 병원에서 건강검진도 받았더니 벌써 점심시간이 됐다. 천천히 걸어오는 수민이를 횡단보도에서 기다리면서 빨리 오라고 했더니, "가고 있잖아. 지금 걸어가고 있거든?!" 한다... 꼬박꼬박 말대꾸 하는게 더 얄밉다.ㅋ
그런데 또 수민이가 갑자기 소정이 누나 어디에 갔냐고 묻더니 자기도 지금 학교 가겠다고 길에서 울기 시작. 어린이집에 안 가겠다고 떼쓰기 시작... 동네가 떠나가게 운다. 정말 우는 애를 억지로 끌고 갔는데, 선생님을 보자 더 악을 쓰고 운다. 2층까지 같이 올라갔다가 우는 걸 어쩌지 못하고 또 그 모습이 짠해서 그냥 데리고 올까 하다가 말았다.
아... 하루 아침이 이렇게 길다니...
다음 날도 전쟁이었다. 한 번 마이쭈를 사줬더니 오늘 또 마이쭈를 사겠다고 운다. 어린이집에 안 간다며 버티는데 엄마 혼자 간다며 저만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도 요지부동이다. 차도 다니고 위험해서 가서 또 달래고.. 골목길에서 실랑이를 30분 간 하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옆에 있는 세탁소에 수현이를 맡기고, 수민이를 들쳐업고 어린이집으로 뛰었다...
이렇게 수민이랑 전쟁을 치르고 나면 하루종일 마음이 무겁고 지친다.
이대로 살 수 없어서 어떻게든 한 번 잡으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바로 저녁에 또 터졌다.
애들데리고 친정에 갔는데, 티비를 계속 보겠다고 떼를 쓰고 운다. 방으로 데리고 가서 문을 닫았다. 그래도 때리진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에 나오는 것처럼 다리로 수민이 몸을 제압하고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설명했다. 악을 쓰고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고, 내 몸을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에는 미안해요.. 말 잘들을께요.. 한다. 그리고 나와서는 할머니가 테레비 볼 차례라며 순서를 기다린다.
지난 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시댁에 가서 방임상태로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갑자기 나를 때리는 버릇이 생겼었는데, 내 안경을 후려쳐서 안경이 날라가기도 했다. 그 때 몸을 제압하고 혼냈더니 한참을 악을 쓰고 울다가 "죄...송... 합...니...다..." 한다. 순간 마음이 얼마나 아프던지.. 죄송합니다는 한번도 안 가르쳐 줬는데 어디서 배운건지...
그래도 그 때 한번 혼이 나고 나서는 다시 착한 수민이가 됐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이런 순간이 몇 번이고 찾아온다.
그럴 때 확실하게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라고 가르쳐줘야 그런 행동이 반복되지 않는다. 확실한 건 한 번 허용하면 두번째, 그 이후부터는 서로 더 힘들어 진다. 가장 중요한 건 엄마가 분노하지 말아야 된다는 거.. 아이가 엄마의 분노의 희생양이 되면 안된다는 거...
지난 번에 남편이 날 도와주지 않는 것에 대한 나의 분노 때문에 아이들이 힘들었을 걸 생각하면 답은 나온다.
"STOP AND THINK" (수민이가 보던 만화 <슈퍼와이>에서 나온 해결방법.. ㅋㅋ )
물론 알고있지만 쉽지는 않다.
나의 이런 마음을 수민이가 언제쯤 이해할 수 있을까.
5월에 10일정도 시댁에 수민이, 수현이를 맡겨야 할 일이 있는데 그 때는 어떻게 해야할 지...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