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보은에 가기 전 주말에 장을 보러 차를 타고 이마트에 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마트는 주말 휴일이었고 다른 마트로 가려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오는데, 차가 이상했다.
엑셀이 고장이 나서 차가 앞으로 안 나간다. 그나마 드라이브 모드에 놓고 지하주차장을 올라가는데, 우리 차 때문에 숙식간에 뒤에 차가 꽉 막혀버렸다. 나오기 전에 공간이 있어서 잠깐 멈춰서 뒷차들을 먼저 보냈다.
그런데 겨우 밖으로 나왔더니 이번에는 차가 아예 움직이질 않는다. 시동을 껐다가 켜보면서 기다리는데 반응이 없다. 어쩔 수 없이 견인차를 불렀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 차 옆에 있던 과일가게에서 과일이나 사려고 했는데, 과일가게 할머니가 말했다. 여기에 차 대놓고 있으면 과일이 다 썩는다고... 남편은 과일 사려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그러면 도로옆에서 과일 팔면 안돼지.. 안그래도 차 때문에 짜증이 나던 참에 갑자기 화가 났다.
오늘 왜 이렇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지? 마트는 헛걸음하고 차는 고장나고.. 날은 덥고 길 가에서 뭐하는 걸까..
그렇게 차 안에서 짜증을 내고 있는데, 갑자기 다행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우리가 장을 봤으면 그 짐을 다 어떻게 했을까. 마트가 문이 닫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나. 그러고보니 며칠 후에 보은에 가기로 했는데, 고속도로에서 이렇게 차가 멈춰버리지 않은 것도 천만다행이다. 얼마나 위험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짜증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감사가 넘친다.
....
그 날의 깨달음을 뒤로 하고...
요즘 너무 몸이 피곤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피곤할까. 두 아들 키우다보면 생기는 피곤함이겠거니.. 정말 한의원에 가서 보약이라도 지어먹을까 했다. 그러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약국에서 사온 임신테스트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오긴 했는데, 마음이 괜히 더 초조해졌다. 집에서 테스트를 하고는 그 자리에서 계속 지켜봤다. 두 줄이 그어져야 임신인데, 첫 번째줄이 희미하게 통과된 것 같다. 그럼 그렇지... 말도 안되지... 하고 일어섰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 설마하고 다시 확인해 보니 이거.. 두 줄 같다. 놀라서 두 손에 들고 계속 뚫어지게 지켜봤다. 그런데 점점 선명해 지는 두 줄.. 부정할 수 없는 두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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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너무 화가 났다. 남편에게 그렇게 수술을 하라고 했는데 한 귀로 흘리더니 결국 이렇게 됐구나. 전화를 해도 안 받아서 폭탄 문자를 마구 날리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분노로 울면서 화를 냈다. 절대 안 낳는다며... 내가 다시는 산부인과 의자에 안 앉으려고 했는데.. 안 낳는다면 수술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너무 화가 났다. 정말 이 때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정말 통제가 안 되었던 것 같다. 셋째라니..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얼마나 울었는지.. 퉁퉁 부은 눈으로 애들을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좀 진정이 되는 것 같다.
도저히 애들 밥해먹일 정신이 없어서 애들 데리고 친정집으로 가는 중에 수민이에게 물었다.
"수민아, 수현이 말고 또 동생이 생기면 어떨거 같애?"
"좋을 것 같애."
"그런데 엄마가 수민이랑 수현이랑 애기랑 밥먹이고 재우고 하면 너무 힘들꺼 같은데 어떻게 하지?"
"그러면~ 한 명은 할머니 집에 가 있으면 되잖아~. 집에는 두 명만 있으면 되잖아~"
그 한 명이 니가 될 수도 있단다... ㅋ 이 날 따라 예뻐보이는 아이들을 보니 한편으로 또 애기가 생기면 얼마나 이쁠까 싶은 마음이 슬며시 든다.
친정집에 갔더니, 엄마가 대뜸 "너 큰일났지!?" 하신다. 이서방이 먼저 전화해서 나 응원좀 해달라고 했다며..
아빠한테는 "어떻게 해야되요?" 물어봤더니. "어떻게 해. 이미 결정된 건데." 하신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다. 확실히 안 낳을꺼면 미리 조심했어야 했고, 결정된 일이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거다. 휴.... 그래도 셋 키울 생각하면 눈 앞이 깜깜하다. 어떻게 해야되나...
집에서 임신테스트는 금요일(9/6)에 했고, 월요일(9/9)에는 산부인과에 가서 확인했다. 벌써 6주차라고.. 다음주면 심장이 뛸꺼라고 했다. 의사선생님 왈.. "이렇게 많이 낳아도 되요?" ㅋ 그러게 말이에요...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마음으로 엽산을 받으러 보건소에 갔다가 혈액검사도 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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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는 사람들마다 낳지 말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생겼으니 기쁜 마음으로 키우라고 한다. 나도 낳긴 낳아야 된다고 하루만에 생각은 바뀌긴 했지만, 세 아이들 키울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고 무거웠다. 내 인생은 이대로 애들만 키우다가 끝날 것 같고, 이제야 조금 자유로워 졌는데 다시 다가올 2년의 암흑기를 생각하니 정말 너무 걱정이 된다.
그래도 시간이 지날 수록 기쁜 마음이 들고, 걱정하고 원망하는 마음보다 감사한 마음이 더 커진다.
항상 딸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에 딸이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두 오빠들이 보디가드처럼 지켜줄 것 같고, 이쁜 딸 하나만 더 있으면 가족이 완성될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물론 딸일 때의 경우지만.. 지금은 내가 좋은 상상만 하련다. 뭐, 아들이어도 뭐.... ㅋㅋ둘째를 낳았을 때가 수민이만 있었을 때보다 심적으로는 훨씬 수월했고, 이제 나도 어느정도 육아에 눈을 떴으니 셋은 거저 키울 수 있을 꺼라고 믿는다. (그렇게 믿고 싶다)
이제 한글을 술술 읽는 똑똑한 수민이와 성격좋고 잘생긴 수현이.. 그리고 셋째는 어떨까? 기대도 된다.
이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바뀌는데 10일이 걸렸다.